새로운 시작

코로나 19로 온 세상이 난리다. 나 개인의 삶도 난리였다.
꽤 큰일을 치르고, 7월 1일이 되었다.
때마침 새벽에 눈이 떠졌고, 뭐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끄적여본다. ㅎ


2주 전 공식적으로 해고 통지를 받고, 어제 北京衣念科技 사무실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정확히 4년 반 동안이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다.

북경에서 보낸 지난 4년이 시도와 실패의 반복이었지만, 특히 지난 3개월은 정말 새로운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매일을 보냈다. 청산하기로 한 회사에서 남아 있는 동료들과 뭐라도 해보려고 했었고, 동료들의 이후의 삶을 위해 매각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도 해 봤었고, 200개가 넘는 이력서를 돌리며 취업의 문을 두드렸었고, 새로운 사업 준비도 해 봤었다(시작도 하기 전에 망했다 ㅋ).

2015년 12월 31일에 북경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던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어쩌다(?) 중국에서 살아 볼 기회가 생겼고, 그때는 ‘한번 살아보고 재미있으면 쭉 있고, 재미없으면 다시 한국 돌아가야지~‘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에서인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안되면 돌아가지 뭐~‘라는 생각이었고, 덕분에 꽤 묵직한 일들도 적은 부담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곤 했었다. 줄곧 4년을 그런 마음으로 살다가, 이번에 회사가 망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중국에 버텨보기로 “결심"을 하게 됐다.
그래! 끝까지 버텨보자!

중국에서 4년 반을 보내면서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중국에 끝까지 버티면서, 후발 주자들에게 길을 터주자.

중국 생활을 하면서 의아했던 게, (난 다른 분야는 1도 모르니, IT 부분만 얘기한다면) 개발자 개개인의 역량은 한국 개발자들이 훨씬 뛰어난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서비스의 결과물을 보면 중국의 수준이 월등히 높다. 왜 그럴까…? 처음엔 단순하게 한국 회사들이 실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개개인의 실력은 뛰어난데, 회사에 모여서 만들어내는 것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면, 그냥 회사가 실력이 없어서인 건가…? 그럼 왜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더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나? 물론 몇 가지로 답을 내리긴 어렵겠지만, 한가지 얘기할 수 있는 건, 중국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땅덩어리가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이 큰 땅덩어리 위에서 아주 역동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아주 약삭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사이즈가 워낙 커서 누구도 중국 시장을 다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먹을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한다). 그냥 ‘자신의 나와바리를 만들어보자, 조금 넓혀보자’ 수준인 거지… 중국 이커머스를 리딩하고 있는 회사는 알리바바지만, 알리비바 혼자 절대 다 못 한다. 알리바바와 함께 상생하는 엄청나게 많은 회사가 있다.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는 회사는 텐센트지만, 텐센트 혼자 절대 다 못 한다. 텐센트와 함께 상생하는 엄청나게 많은 회사가 있다. 성/도시마다 그 지역을 끌고 가는 은행, 백화점, 쇼핑센터, 각종 서비스 회사가 있고, 이들은 그냥 그 안에서 자기 나와바리를 유지해갈 뿐이지 절대 중국을 다 먹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못한다). 그래서인지, 뜻을 가지고 뛰어들면 마음이 맞는 사람이 모이고 거기서 자신의 나와바리를 만들 수 있다. 이 많은 사람이 중국 땅 어디선가 자신의 나와바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수많은 사람이 상생하는 곳이 중국인 것 같다.

유행을 탈 필요도 없고,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남의 밥그릇 못 뺏어와서 안달할 필요도 없고, 몇 가지 공식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내 스타일대로 밀고 나가다 보면 뜻이 맞는 사람이 생기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긴다. 일이 만들어지고 고객이 생기고 돈이 움직인다. 사업이 만들어지는 거다.

아ㅡ 이런 큰 땅덩어리 자체가 부러웠고, 우리 한국 사람들도 이 바닥 위에서 함께 뒹굴어 보도록 길을 터주고 싶다. 내가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길을 터주진 못하겠지만, 단 몇 사람에게라도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회사가 망했다.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한국에 있는 모기업에서는 우리 회사를 청산하기로 했고, 그동안 애착을 가지고 해왔던 일들은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회사 내 정치싸움의 여파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계속 지난 시간을 피드백 해보니, 내가 잘못한 것도 분명히 있었다. 내 책임도 컸다.

그중 하나는, 중국을 잘 몰랐다는 것이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일하고는 있었지만, 한국에서 쌓은 경험, 한국인의 사고방식 그대로였다. 여전히 나에게도 은연중에 ‘그래도 아직은 한국이 좀 낫지 않아?‘라는 생각이 있었었나 보다. 어쨌건 중국 스타일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내 식대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했었다.

얼마 전 중국 패션 리테일 영역에서 엄청난 확장을 하고 있는 伯俊(보쥔)이라는 회사 CTO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사업에 대한 큰 그림, 기술의 방향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1등 기업들을 흉내 내지도 않고,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IT의 흐름(?) 같은 것들도 따라 할 생각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씩 확장을 해나가고 있었다.
중국 IT의 삼국지라고 얘기하는 BAT(Baidu, Alibaba, Tencent)가 판을 깔아주고, 그 위에서 각자 자리를 잡아나가는.. 경쟁인 듯, 협력인 듯, 상생인 듯. 뭐라고 딱 구분이 안 되지만 어찌 됐건 중국이라는 큰 나라 안에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구직 과정에서 어느 한 회사 담당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미 중국의 기술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데, 우리가 왜 한국인을 뽑아야 하죠?”
과거 선배들은, 한국에서의 성공 모델을 중국으로 가져와서 두 번째 잭팟을 터뜨리는 방식이었다면, 이젠 이런 방식은 끝났다. 이제 한국은 중국인의 안중에도 없다.

중국 스타일이란 게 나도 잘 모른다. 뭔진 모르지만, 그 안으로 파고들어 가보자! 앞으로 3년, 또는 5년 동안은 중국인들 틈에서만 뒹굴면서, 아직은 뭔지 모르는 그 스타일이 내 몸에도 젖어 들도록 해 보자.

오늘부터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다. 구직 과정 중에 아주 재미나게 일하는 스타트업 한군데를 찾았고, 그 회사에 합류하고 싶어서 엄청나게 들이댔었다. 날 뽑을 생각이 전혀 없는 회사 대표를 만나, 지금 준비하고 있는 서비스의 기획서를 보며 얘기를 나눴고, 그 다음 날, 그 기획서를 보고 대충의 설계문서를 그려서 보냈다. 우선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을 받고, 그리고 매일 코드를 작성해서 PR을 보냈다. 서버 정보도 받아서, 배포까지 해서, 동작하는 초기 버전을 만들어버렸다.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심지어 나를 뽑을 생각도 없는데 ㅋ
결국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방식이다.

이렇게, 중국 바닥에서, 내 스타일대로,
살아남아 보자!
중국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