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어떻게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가

몇몇 소수의 모습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근데, 소수가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교회 공동체 속에서 자라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꽤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멤돌고 있었던 생각이다.
감정을 빼낸 상태의 글을 이제야 공유해 본다.

교회는 어떻게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가?

교회의 바운더리

교회에서 금기시되는 말이 있다. 그 말을 꺼내거나, 모두가 동의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혼난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로 혼나게 되면 억울한 마음이 들고 기분이 나쁘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물론 그런 강압적인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문제겠지만,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그런 이해가 되지 않는 혼냄은 곧 떨쳐버릴 수 있었고, 그것 자체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진 않았었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의 혼냄은 좀 다르다. 이해가 안 되더라도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다시는 그런 말(생각)을 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만든다. 그리고 진짜로 그런 말(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면, 신앙생활에 내 생각은 없어진다. 아니, 내 생각이 있긴 하지만, 그 생각은 교회가 제시하는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의 생각이다. (과연 그게 내 생각일까…?) 즉 교회가 쳐 준 일정한 바운더리 안에서의 생각만 허락되고 그 바깥의 생각은 허용되지 않는다.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교회 문화 안에서, 자신의 가치판단보다는 내가 따르는 누군가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나 자신이 되어간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더라. 생각보다 복잡하더라. 지금까지 배워왔던 교회에서의 가르침만으론 이 세상을 해석해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더라.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고 하지만,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세상 속에서 겪는 많은 일을 지금까지 교회에서 다루던 주제만으로 해석하기엔 너무나 복잡미묘하고 혼란스럽다. 어떠한 삶이 올바른 삶인지 치열하게 찾고 실행하고 돌아보고 해야 하지만(묵상, 기도, 예배) 우린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그런 경험(훈련, 연습)을 못 해봤다. 그냥 편하게 생각해버린다.
세상의 삶. 그리고, 교회의 삶.

선데이 크리스천

신앙에 여러 고비가 있다.
첫 번째 고비를 고3이라 얘기한다. 그때 많은 크리스천 학생들이 교회가 아닌 학원으로 발을 돌린다.
두 번째 고비는 대학 때다.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교회에 별로 가고 싶지가 않다. 그리고 이제 머리도 커져서 교회의 가르침에 동의가 되지도 않는다.
세 번째 고비는 사회초년생. 고3과 대학 시절의 고비를 잘 넘기고 신앙을 잘 지켜왔는데, 직장에 가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나 자신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일하면서 화도 내고 선배들의 못된 버릇들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고, 다른 업체 사람이나 비정규직 사람들에게 갑질도 하게 되고, 소소한 눈속임과 비리에도 익숙해지고, 나 편하기 위해 후배에게(또는 다른 팀에게) 일을 떠넘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성과를 슬쩍 가져오기도 하고, 진실을 감추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거짓말도 하게 된다. 내가 속한 단체(회사)가 분명히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어쨌건 나도 거기에 가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괜찮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배우고 또 당해왔으니까. 뭔가 찝찝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매일 받아내야 하는 버거운 업무량에 허덕이며 생각, 성찰, 묵상의 끈을 놓아버린다. 매일 새벽기도를 가고 QT를 하지만, 그 영향력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까진 닿지 않는다. 일할 때는 나를 잠시 하나님과 떼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진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고비를 넘겨왔었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지!’

그렇게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어간다. 이런 크리스천에겐 설령 대통령의 자리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선데이 크리스천이다. 세상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 번째 고비는 ‘세상 속의 크리스천으로 사느냐?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사느냐?’ 이고 또 상당수가 이 세 번째 고비에서 넘어진다. 이 세 번째 고비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 내내 이어진다.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교회에서의 삶과 직장 내에서의 삶이 분리되어버리고 만다. 교회에는 유독 여성 성도분들이 많다. 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비율상 이 세 번째 고비를 직면해야 하는 사람이 남자가 많아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면 어불성설일까?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신앙 안에서 고민하고 토론하며 나만의 생각들을 정립시켜가야 하는데,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 오히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으니, 그게 잘 되나?

독재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가 보여준 모습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 수준은 세계가 놀랄 만큼 앞서있었다.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지만, 그런데도 그 외의 시간 동안에는 생각하고 토론하는 연습을 많이 했었나 보다. 단, 교회 안의 멤버들은 제외.
친구들끼리 모여 스스럼없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때론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이런 것이 고민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토론하는 연습이라 생각한다. 근데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일수록 이런 거 잘 안 하더라. 교회에서 배워 왔던 여러 이유로 이런 상황을 점잖게 외면해 버리더라.. 교회 생활에 착실했던 우리들은 그 어디서도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다. 점점 내 생각은 없어져 간다. 내 머릿속에 있는 그 생각들이 정말 내 생각일까? 수십 년간 지속해서 학습된 그것들이 내 생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 내에서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던 우리는, 이 세상을 내 생각으로 해석할 능력을 배우지 못했다. 누군가가 정해준 대로 생각을 해야 했었다. 내가 따르고 좋아하는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버린다.

이 정도면 권력이고 독재다. 권력을 손에 쥐게 되면 사람이 변한다. 목사라도. 권력을 손에 넣은 대형교회 목사들을 보면 독재자나 다름없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은 내가 따르는 사람이 독재자인지 아닌지 분별할 능력을 잃고 그냥 추종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성폭행, 목회 세습 등 무서운 죄로 이어진다. 대형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만한 크기의 권력이 아니어서 그렇지, 그들이 소유한 그 조그마한 세상 속에서 그를 거스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친한 동년배 목사님과 얘기 나누다 보면 종종 이런 대화를 할 때가 있다. 교회의 문제를 자신도 알고 있지만, 그 목사님들의 대답은 이렇다: “담임 목사님, 선배 목사님들이 그렇게 얘기하는데 어떻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나?”
아ㅡ 요즘은 나이 많은 회사 오너들도 어린 친구들과 말 좀 섞어 보려고 90년/00년대 생들에 관해 공부하고 낮은 자세로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행여나 꼰대 같은 모습은 아닐까 노심초사 걱정하면서 어린 친구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목사님들 사회는 아니란걸 뻔히 알면서도 윗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는 토를 달면 안 되는 곳이다.
2020년에, 이런 폐쇄적인 집단이 또 있을까?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교회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사람의 성향은 다양하다. 전통과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고, 그것보다 전통에 반기를 들며 새 시대를 열어가는 것에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상관없이, 전자를 보수라 하고 후자를 진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를 정치 활동과 지나치게 연관을 지음으로써 그 의미가 많이 오염되어 버렸다. ㅠㅠ) 보수와 진보는 모두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없는 유익한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짐으로써 세상은 균형 있게 발전한다. 뿌리 깊은 유교 사회인 조선 시대에도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존재했었고, 이를 적절하게 잘 다스린 임금이 있었을 때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사람은 누구든 보수적일 수도 있고 진보적일 수도 있고, 두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어느 경우에는 전통과 관습을 고집하지만, 또 어느 경우에는 변혁에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관점으로 ‘교회’라는 사회를 한번 바라보자.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교회의 전통과 관습을 별 거리낌 없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보수)이 ‘우등생’으로 인식되고 그들은 점점 교회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런 것이 때론 불편한 그 반대의 사람(진보)은 ‘개구쟁이’로 인식된다. 어릴 때는 교회 내에서 우등생 친구나 개구쟁이 친구나 다 별 거리낌 없이 잘 어울리지만, 시간이 갈수록 개구쟁이 친구들은 점점 교회의 중심에서 멀어져간다. 교회 우등생 친구들과의 우정은 계속 유지해갈지라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 우정은 교회 바깥에만 있다. 어렸을 때 같이 크리스마스 준비하며, 수련회 가며, 밤새 같이 게임을 하며 놀던 그런 우정은 추억이 되어 버리고, 교회 바깥에서나 그 우정을 가끔 확인하곤 한다. 점점 교회의 중심으로 들어간 교회 우등생들은 그 생활이 너무 좋다. 교회가 너무 편하고 공동체가 너무 사랑스럽다. 그러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신학교를 간다. 자연스레 신학교에는 대부분 교회 우등생들이 모이고, 왕년에 교회 우등생이었던 사람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

아…. 처음에는 아니었겠지만, 교회는 점점 이 세상에서 가장 획일화된 단체가 되어 버렸다. 형제가 서로 연합해야 한다고 했는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형제’에 끼워주지 않는다. 이미 같은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에게 ‘연합’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공동체는 ‘연합’하지 않아도 별문제가 안 생긴다. 아무도 수용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질 뿐이다.

교회 커뮤니티

‘교회’라는 말에는 2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성경에서 얘기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바로 그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형성된 커뮤니티다.

어느 모임이든 사람이 모이면 그 구성원들만의 문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것처럼 교회 내에서도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성경/신앙과는 별개다. 그냥 사람이 모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구성원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아왔는데, 성인이 된 지금 그 가르침들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그것이 꼭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진 않더라.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어른들의 훈시와 선배들의 인생 조언, 그리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 된 도리.. 이런 것들이 뒤섞여있다. 이런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어서 이게 성경의 가르침인지 목사님/선생님의 개인적인 조언인지 구분이 안 된다. 더더군다나 목사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100% 일치시키는 한국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그냥 이 모든 것을 퉁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아ㅡ 그냥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는 말이 성경 말씀과 뒤섞여 나오면서 그것까지도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하는 bible이 되어 버린다.

이런 집단의 위험성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이 이런 집단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왜? 이들은 선동하기가 너무 쉽거든.
자신의 바운더리가 무너지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하는 그들에게 그 바운더리만 지켜주면 그들은 모든 것을 바친다.

최근 교회의 모습을 보면, 이제 세상을 보는 감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 70여 년 전 빨갱이 프레임으로 반대 세력을 처단하던 그 촌스럽고 단순하고 무식한 방식이 여전히 이 집단 안에서는 먹히고 있고, 이미 판단력을 상실한 그들은, 그들 머릿속에 넣어주는 생각들을 의심 없이 믿어버린다. 그것은 하나의 신념처럼 작용해서,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비장감이 돌 정도다.


이제는, 제발, 거기서 나오자!
교회를 떠나자는 말이 아니다.
교회 커뮤니티 내에 church member들이 만들어 놓은 그 바운더리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