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여름 수련회 - 요셉

2025 여름 수련회 - 요셉

주님의교회 청소년부 여름 수련회
2025년 7월 18일 ~ 20일
가평 어피어 연수원

요셉의 꿈

어느 날 요셉은 꿈을 꾼다.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단에 절하고, 해와 달과 별이 요셉에게 절한다.

이런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거잖아. 그래봤자 그냥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정도잖아. 하늘을 날거나 슈퍼맨이 되거나 영웅이 되어서 악당을 무찌르는 그런 꿈은 다들 꾸는 거잖아. 누구나 자면서 꿀 수 있는 이런 사소한 꿈이 하나님의 계시일 리가…

요셉은 진짜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말도 안 되는 꿈을 떠벌리고 다닌다. 이런 생각 없는 녀석이 있나. 그걸로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고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간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그래도 요셉은 그 꿈을 간직해나간다.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한 꿈이라고.
그런 꿈은 누구나 꾸는 거잖아.

꿈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꼬여버린 요셉. 그 꿈을 얼마나 곱씹었을까?
‘왜 그런 입방정을 떨었을까….’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 꿈이 뭐길래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을까.’
매일 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억울함에, 간절함에, 후회스러운 마음에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았을까?

“하나님, 도대체 그 꿈이 뭐였나요?”
요셉이 매일 했던 기도는 바로 꿈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게 무슨 꿈이었는지 알려달라고 처절하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그 작은 꿈을, 누구나 자다가 꿀 수 있는 꿈을, 자신의 삶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은 그 꿈을 붙잡고 요셉은 매일 기도했을 것이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하고 떡 굽는 관원의 꿈을 해석하고 바로의 꿈을 해석한다. 그에게 그건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매일 하던 거였다.

요셉이 잘한 것. 마음속에서 시작된 작은 꿈을 진짜로 믿었고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꿈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원하는 삶이 있다. 이미 꿈이 주어졌다. 그 꿈이 커져 나가길 바란다.

"
넌 깊은 바닷속에서 유유자적하는 고래야. 바다의 최강자 고래. 너 안에 엄청난 것이 있어 그걸 드러내 보자.
넌 길들여지지 않은 준마야. 세상에 길들지 않고 맘껏 달렸으면 좋겠어.
넌 천연색의 빛깔을 내는 강아지야. 너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색깔을 귀여운 강아지처럼 드러내고 있어.
"

나의 역할은 이 아이들 속에 있는 보석을 드러내서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는 것이다.

꿈은 작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배 시간에 혼자 조용히 했던 기도. 선생님 얘기 들으면서 혼자 한 다짐. 나만의 수줍은 상상. 그 마음을 잘 간직하세요. 까먹지만 않으면 그 꿈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어요. 아무도 내 꿈을 빼앗지 못해요. 내가 버리지만 않는다면 내 꿈은 끝까지 내 것이에요.

작은 마음을 키워가세요. 글로 써보고 사람들에게 얘기도 해보고 작은 시도와 실패를 해 보세요. 그런 과정을 통해 꿈이 선명해집니다. 선명해진 꿈은 나에게 각인되고 은은하게 내 삶을 이끌어갈 거예요. 나의 작은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나를 움직이게 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꿈에 조금씩 다가가게 해 줄 거예요. 그런 삶은 정말 정말 신이 난답니다.

꿈은 나를 지켜줍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길을 가게 합니다. 그래서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죠.

요셉의 형통

요셉의 삶은 형통했단다. 형들이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렸는데도, 그 삶은 형통이란다. 믿음을 지킨 대가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는데도, 그 삶은 형통이란다.

형통은 의기양양하게 탄탄대로를 달리는 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다. 가슴 철렁한 위기의 순간을 지나가지만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불안함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하심을 맛보며 그 길을 기뻐하며 가는 것이다.

마지막 날 새벽, 비 오는 소리가 무섭게 들린다. 그러다 정전이 되었다. 물도 안 나온다. 통신도 두절이다. 강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한 명씩 우산을 씌우고 숙소로 데려왔다. 숙소로 가는 비탈길에 빗물이 급류처럼 쏟아진다. 복도 전등에 공급되는 비상 전력도 한두 시간이면 끝날 거란다. 수련회 마지막 날 밤샘은 국룰인데 아이들은 강제 취침을 당했다. 아이들을 다 재웠는데도 선생님들은 잘 수 없다. 현관에 모여 무섭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굉음에 모두가 얼어버렸다. 누군가가 “산이 우는 소리”라 표현했다. 그 소리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후레쉬를 사방에 비춰봤지만 온통 암흑이다. 그러다 비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새소리가 들려왔고 이제 비는 그치겠다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산사태가 났단다. 깜깜한 새벽에 우리가 들은 그 소리는 산이 무저져 내리는 소리였다. 우리가 있는 수련원 양쪽에서 산사태가 일어났고 도로가 완전히 박살 났다. 먼저 산 아래 큰길까지 갔다 온 병욱쌤과 부장쌤이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직접 찍어온 사진을 봐도 믿기지 않았다. 이어서 목사님과 몇몇 선생님이 다시 상황을 살피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고 나도 함께했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다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길을 살피면서 갔다. 조심히 내려가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길 마지막 부분에 땅이 움푹 패이고 급류가 내려오고 있었는데, 거긴 많이 위험해 보였다. 물속으로 지나가는데 종아리에 주먹만 한 돌멩이가 막 부딪혔다. 어린아이들은 넘어질 정도의 물살이다.

모두가 처음 겪는 재난 상황이다. 우리 교사들은 무서워할 여유가 없었다. 150명의 아이를 모두 데리고 나가야 했다. 오직 그 생각만으로 놀랄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사랑의 힘이 두려움을 이겼고 두려움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자연의 포효 앞에 철저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나약한 한 사람이었지만, 연약하므로 모두가 더 간절히 기도하며 움직였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을까요?”
“선생님들이 침착하면 아이들도 괜찮을 거예요.”

모든 선생님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아이들을 깨워서 차분히 설명하고 짐 정리를 시키고 식당으로 집결시켰다. 수련원에 둘 짐은 한곳에 모으고 가벼운 복장으로 내려갈 준비를 시켰다. 수영장 옆에는 간이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 명이라도 놓치면 안 돼서 꼼꼼하게 인원 체크를 하며 15명씩 내려갈 조를 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한 조에 선생님 두 분씩 배치했다. 우리는 가능한 것을 했고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하셨다.

아래 큰길로 내려가서 버스 탈 때까지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는데 소방 구조대 차가 들어온다.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구조대 대장의 답변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였다. 이 구조대는 서울에서 지원을 나온 것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란다. 중앙 통제를 받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본부의 명령이 있어야 한단다. 하지만 전화는 터지지 않는다. 어차피 도로가 막힌 상황. 길이 막힌 구조대원들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다 같이 수련원에 올라가면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200명은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산 아래로 내려왔다. 물살이 굉장히 쎄서 건널 수 없는 지점에는 구조대원분들이 사다리를 놔 주셨고 직접 물속에 들어가서 한명 한명 안전하게 손을 잡고 넘겨주셨다.

아이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다. 지난 3일동안 같이 먹고 마시며,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놀며,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며 짓던 그 표정이다. 아이들도 이 모든 상황을 함께하며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이 자리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있었다.

바깥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서 직접 겪는 것은 다르다.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서 밖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지만,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은 애가 타겠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평안하다.

둘째날 저녁 예배때 목사님이 하신 말씀 - ‘운 좋은 놈 위에 있는 게 은혜받은 사람’이란다. 은혜받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요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나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면 무너진다. 천하무적인 사람도 감당하지 못할 상황을 만나면 주저앉고 만다. 산이 무너져 내리는 천재지변을 힘으로 막아낼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은혜받은 사람은 요동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에 어떤 곳에서도 평안하다.

요셉의 형통.
우리도 그것을 경험했다.

함께함

아이들을 무사히 집에 보냈다. 하지만 아직 수련회는 끝나지 않았다. 수련원에 두고 온 짐을 찾아와야 한다. 길이 복구되는데 3주 정도 예상했는데 하루 만에 길이 열렸다. 중장비 차로 토사물을 걷어내고 망가진 아스팔트를 고르게 만들어 겨우 차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선생님 한 분이 트럭을 몰고 가서 200개의 캐리어를 다 가져오셨다. 이럴 수가. 나머지 선생님들이 수련원으로 가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단체 짐을 다 가지고 왔다. 월요일 밤에 정리를 끝내고 헤어지면서 다들 외쳤다.
“수련회 끄~~~읕!”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으면 참 좋겠지만, 삶이 그렇게만 흘러가면 어딘가 허전하다. 그래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이다. 기쁨과 즐거움 사이에 분노와 슬픔도 있다. 이런 굴곡을 함께 하면서 비로소 삶이 만들어진다. 당황스럽고 놀랄만한 상황이었지만 그 시간을 함께했다.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