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자라기
지난주 처음으로 상담을 했다. 사춘기에 들어서는 지안이와 잘 지내보려고 브리또님을 찾아갔다.
잘 지내고 있다고, 사이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잘하고 있는 건지. 앞으로 긴 청소년기를 보내게 될 텐데, 이대로 가도 될련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청소년 아빠 역할을 해내려면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냥 행복했을거라 생각했던 지안이의 어린 시절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직 의사 표현을 할 방법을 찾기도 전에 중국에 와서 중국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어쩌면, 지안이 눈에는 아빠가 미덥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어눌하고 투박한 중국어를 툭툭 뱉어내는 무례한 아빠의 방식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었겠다. 나의 생존 방식과 지안이가 느껴야 할 안정감이 달랐을 수도 있었겠다.
지안이가 태어나기 전 로망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면 2년 정도 학교를 안 보내고 같이 세계 일주를 하고 싶었다. 당연히 지안이도 그걸 좋아할꺼라 생각했다. 아기 지안이를 키우며 어쩌면 지안이는 그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역시나 그랬다. 그녀는 백패킹 보단 호캉스다.
지안이는 나와 다르다. 아무리 나를 빼닮았다 해도 나와 다르다. 웃음 코드가 비슷하고 나의 어린 시절과 판박이 같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나만 했을 것 같은 장난을,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똑같이 하는 걸 보며 ‘역시 내 딸’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지안이는 나와 다르다. 세상에 하나뿐인 이 아이에게 나를 대입시켜선 안 된다.
내 생각이 지안이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4살의 지안이를 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싶었는데 지안이는 6살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익숙해질 만하니 어느새 5학년이다. 5학년 아이를 이해하려고 해보니 이제 6학년. 내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금의 지안이를 봐야 하는데 기억 속의 지안이를 본다.
이 아이는 계속 변해간다. 여전히 개구쟁이처럼 장난칠 때도 많지만 이제 10대다. 일주일이 다르게 커가던 갓난아기 때의 모습을 기억한다. 이 아이는 여전히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 이 아이와 함께 살아가려면 나도 함께 자라야 한다.
“고학년으로 대해주면 좋겠어.”
이번 여행에서 지안이가 했던 말이다. 역시나 같은 요구를 한다. 이 아이는, 이미, 내 생각보다 훨씬 큰 사람으로 자라있다.
그래도 이 아이는 부모의 서툼을 받아들이고 또다시 기회를 준다. 초짜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서운한 게 있어도 또 다가와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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