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3. 울란바토르에서의 생각들
첸케르를 떠나오는 버스 안. 우리 셋은 아무 말이 없다. 각자가 만난 몽골이 가슴안에서 꿈틀거린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
첸케르를 떠나며
마을에 머무는 내내 아프리카 여행이 오버랩 됐다. 벌써 16년이나 지난 이야기인데, 아직도 마치 지난달에 갔다 온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만큼 강렬했다. 재미와 모험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깊이 마음을 나누며 우정을 만들었다. 그곳의 기억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살아있게 한 건 사람이고, 마음을 나누는 경험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마음을 더 깊이 나누게 된다. 어젯밤 Базаррагчаа(바트라)가 집에 가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16년 전 Amadou가 생각났다. 마음을 열어 환대해 줬던 첸케르의 가족과 이웃들을 보며 세네갈의 생루이스 해안 마을이 생각났다.
말이 술술 통하는 여행보다 이런 만남이 더 찐한 이유는 뭘까? 첫날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던 시간이 떠오른다. 게르 안을 메우던 어색한 공기, 입은 옴짝달싹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따뜻했다. 시간이 흐르며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서로의 표정과 눈빛, 제스처와 상황을 살핀다. 상대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따라 하며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우리의 마음을 표현해 갔다. 농도 깊은 한마디 한마디가 오간다. 단어 하나에 큰마음이 실려있다. 그래서 더 깊이 나누나 보다. 16년 전 세네갈에서 경험했던 걸 여기서 또 경험했다.
계획을 내려놓고 공간을 비우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나타나 그 자리를 채운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으로 여행은 더 풍성해진다. 많이 걷고 애를 쓰고 상처가 나고 땀범벅에 불편한 잠자리. 그만하고 싶을 정도로 고된 시간. 이런 게 찐할수록 여운은 오래간다. 어쩌다 몇 번이 아니라 모든 여행이 이랬다면, 이건 공식이다. 그 법칙을 믿고 이번 여행도 그렇게 시작했다. 이번에도 게르의 중심 자리를 내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내어 준 이들과 깊은 마음을 나누었다. 헤어질 땐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번 여행도 오래갈 것 같다.
30대를 보내며 “유목민으로 살아가기”를 나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유목민, 유목민…. 글만으로 이들의 방식을 알 수 없겠지. 그 삶을 함께 살아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게르 3채를 직접 옮기고 양털을 깎고 야크를 몰았다. 말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내고 내장을 들어내고 각을 뜨고 고기를 잘라내 함께 먹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잠을 자며 가족처럼 지냈다. 잠시나마 유목민 퍼포먼스를 한거다.
현대 유목민은 차도 있고 오토바이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다. 한 시간 정도 차를 몰고 나가면 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아이들은 기숙학교에 다니다가 방학 때면 집에 와 일손을 거든다. 이들은 한국의 여느 여고생과 다름없다. 예쁘게 화장하고 멋을 내며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농구, 배구를 배워 경기도 나간다. 하지만 이들도 집에 오면 영락없는 유목민이 된다. 화로에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고 멀리까지 나가서 물을 길어온다. 말을 타고 나가서 야크 무리를 데려오고 좁은 게르에서 가족과 살갗을 부대끼며 함께 생활한다. 도시의 삶을 모르는 게 아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방학이 되면 집으로 와 유목민이 된다.
둘 다를 수용한다. 도시의 삶과 유목민의 삶. 상황에 맞게 그 상황 안으로 완전히 녹아든다. 이게 진짜 자연스러움이다.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연(세상)에 녹아들기. 하지만 돌아갈 곳, 정체성은 잊지 않는다.
울란바토르의 밤
일곱 시간 반이 걸려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나가서 울란바토르의 밤을 즐겼다. 우린 서로 몽골에 대한 마음을 나눴다.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눴다.
다음 날은 시내를 걸었다. 우린 평소와 달리 말이 적었다. 대화는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다. 정리 안 된 무언가가 엉켜 있다. 뒤엉킨 생각을 짚어보며 계속 걸었다. 모호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 조각난 채로 머릿속에서 돌아다닌다.
유목민은 철 따라 이동한다. 그때마다 집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다.
나의 거주지를 완전히 분해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쌓아 올린다.
해체하고 이동하고 다시 조립한다.
평생을 이렇게 산다.
3일 동안 매일 게르를 해체하고 이동해서 새로 세워 올렸다.
세번째 할 때는 익숙해지더라.
유목민으로 살아가기. 그건 해체하고 조립하는 삶이다.
여행은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 보는 것이다. 엉뚱한 행동, 바보 같은 생각도 허용된다. 여행은 여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상한 생각이 나를 해체한다. 그래서 이전처럼 살 수 없다. 이전의 나는 없어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여행 이후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다 분해되어 버려서 다시 쌓아 올리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니, 그냥 이렇게 엉성한 채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 더 해체해 보자. 더 망가뜨려 보자. 굳어있던 나를 완전히 부숴버리자.
이 여운을 오래 간직하자. 여행의 경험을 오랫동안 우려먹자. 질릴 때까지 생각하고 곱씹고 얘기하며 나를 바닥까지 해체해 보자. 그 상태로 살아가며 천천히 다시 조립해 나가자.
할까 말까
떠나기 전, ‘유목민 퍼포먼스’라는 표현을 썼다. 뭘 흉내 낸 걸까. 뭘 체험한 걸까. 막상 함께 살아보니,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찐한 마음을 나눴고 친구가 되었다.
이걸 추억으로만 남길 것인가, 진짜로 이어갈 것인가.
이들을 다시 만나러 올까.
계속 연락할까.
첸케르 학교에서 뭔가를 해볼까.
매년 찾아올까.
겨울 게르에도 도전해볼까.
할까 말까 할 땐 하라고 했는데.
20대에 여행을 다니며 세상의 변화를 꿈꿨다. 그땐 막연했다. 더 어른이 되면 하면 된다고 미뤘다. 이젠 아니다. ‘이다음’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한다. 큰 결정은 가볍게, 작은 결정은 무겁게.
Бямбаа(변밝)이 왔어
인천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몽골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셋은 입국 게이트 앞에서 몇 안 되는 아는 몽골어를 내뱉으며 소리를 질렀다. 화면 속 표정이 너무 환하다. 대화랄 것도 없이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다. 그저 좋은가 보다. 가장 수줍게 있던 어머니가 카메라 앞으로 바싹 와서 제일 적극적으로 말을 건넨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가슴안에서 뭔가가 벅차오른다. 이 사람들, 우리가 그렇게 좋은가. 그저 얼굴을 보며 싱글벙글한다. 내 마음도 녹아내렸다. 더 이상 재지 말자, 이것저것 따지지 말자. 그냥 가자!
이제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간다. 입국장을 나가기 직전, 일상으로 돌아가기 직전. 이 유목민 가족들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묵직한 메세지를 던진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나요?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사세요!”
우린 이것저것 잴 것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겨울에 보자고 말했다. 겨울 게르도 궁금하다고.
다시 몽골에 간다면, 울란바토르에서 곧장 이 가족에게 갈 테다. 그냥 이들 게르에 찾아 들어갈 테다.
”센베노. Бямбаа(변밝)이 왔어!”
이렇게 소리 지르며 이들을 와락 끌어안아 버릴 테다. 짐을 던져놓고 뜨뜻한 수태차 한잔 달라고 말할 테다. 그러곤 그들의 침대에 벌러덩 누워 뒹굴어 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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