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2. 유목민의 삶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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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오프로드를 한 시간가량 달려 유목민 마을로 들어갔다.
이때만 해도, 이 가족과 이렇게까지 정이 들 줄은 몰랐다.

손님에서 가족으로

아하Ах가 오토바이로 앞장선다. 우린 차로 뒤를 따랐다. 초원을 가로지르고 개울을 건너고 침엽수 사이를 헤쳤다. 그 끝에서 닷새를 함께 지낼 가족을 만났다. 각자 가족을 이룬 세 형제가 한 마을에 모여 살고 있었다.

처음엔 멀뚱멀뚱.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들도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눈은 초롱초롱한데 입은 옴짝달싹. 하지만 그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린 금세 우리만의 대화법을 찾았다. ‘원카드’ 게임을 하고, ‘공공칠빵’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한국 놀이를 가르치고 그들의 놀이를 배웠다. 기타와 핸드드럼을 가르쳐주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밀가루를 빚고 양고기를 잘라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마늘, 김치도 나눠 먹었다.

세 자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줬다. 지유, 지혜, 지민. 그들도 우리에게 몽골 이름을 지어준다. Батаа, Болдоо. 내 이름은 Бямбаа(변밝)이다. 우린 그들을 한국 이름으로 불렀고 그들은 우리를 몽골 이름으로 불렀다. 사촌 동생들에게도 지희, 지윤, 지후, 지현, 지영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자기들끼리 한국 이름을 부르며 재밌어한다.

함께 일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장작을 패고 양 우리를 만들었다. 게르를 3채나 옮겼고 야크 몰이도 같이 했다. 제기 하나로, 요요 하나로 한참을 놀았다. 별거 아닌 대화인데 웃음이 넘친다.

처음 이틀은 창고 게르에서 지내다가 셋째 날부터는 지유네 게르에 들어가 함께 잤다. 진짜 가족이 되었다.

행복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야?”
지유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란다. 지혜와 지민이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항상 가족과 딱 붙어서 생활하는 이들은 매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다섯 식구가 생활하는 지유네 게르에는 2개의 침대가 있다. 아빠 엄마 막내 셋이서 한 침대, 두 자매가 한 침대를 사용한다. 살갗이 닿을 만큼 가깝다. 침대에 누우면 서로 눈이 마주친다. 밤마다 그 자세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그 속닥거림이 듣기 좋다.

대부분에게 가족은 그냥 주어진다. 아기 때는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무엇이 이들의 순수함을 지키고 있을까. 대자연일까.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게르일까.

여기가 천국인가

몽골의 여름밤은 늦게 찾아온다. 저녁 9시가 넘어도 환하다. 해 질 무렵, 서쪽으로 멀어지는 태양은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그 빛깔은 넓게 퍼진 구름에도 스며든다. 푸른 초원도 그 빛깔을 받아 노오란 빛을 튕겨낸다. 저 멀리서는 집으로 돌아오는 야크 무리가 보인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의 모습도 이랬을까.

게르 주변으로 기타 소리가 퍼져나간다. Болдоо가 지유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있다. 내가 핸드 드럼으로 아프리카 리듬을 연주하자 Батаа랑 꼬마 아이들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그러다 다 같이 모여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초원을 뛰어다닌다.
천국이 이런 모습일까.

“이 기타가 너에게 음악을 선물했으면 좋겠어.”
Болдоо가 지유에게 기타를 선물했다. 지유의 눈은 더 반짝인다. 첫 연습곡은 ‘물 댄 동산’이다.

주님 너를 항상 인도하시리. 메마른 땅에서도 너를 만족시키리.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마르지 않는 샘 같으리.

이 가족의 삶이 물 댄 동산 같기를. 이들이 야크와 양과 말의 목자이듯, 하나님이 이들의 목자가 되어주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요

셋째 날 아침. 어제 정하기로는, 오늘은 우리 게르를 옮기는 날이었다. 우리 한국 여행자들은 오버해서 이사 준비를 했다. 전날 밤 짐을 다 싸 놓았고 새벽 일찍 짐을 게르 밖으로 빼놓았다. 그리고 게르 철거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너무 느긋하다. 오늘 이삿날 아니야?

뜬금없이, 양털을 깎으러 가잖다.
”오늘이 이삿날 아닌가요? 오늘이 아니면 언제 가나요?"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요.”

때로는 계획이 우리를 가둔다. 이들은 달력이 아니라 오늘을, 지금을 산다. 게르 밖에 빼둔 짐이 머쓱하다.
어제의 내일이 이삿날이었다면, 오늘은 양털 깎는 날이다.

양 400마리가 빽빽이 들어찬 우리로 들어갔다. 밀리터리 무늬 옷을 입었더니, 양들은 그걸 풀인 줄 알고 물어뜯는다. 한 마리씩 끌어와 가위로 털을 깎아야 한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났다.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때 Батаа가 뛰어들어 양 한 마리를 잡아 들고 나왔다. 우리의 머뭇거림을 뚫어줬다. 앞발 둘 사이에 뒷발 하나를 끼워 줄로 단단히 묶고, 양을 옆으로 뉘인다. 가위를 들고 조심조심 털을 잘라낸다. 냄새도 지저분함도 잊고, 양의 살갗에만 신경을 모은다.

몽골 가족들

지유(Оюун-Эрдэнэ). 경찰이 꿈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 주었다. 우리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 가족에게 전달한다. 사진 속 지유는 영락없는 열여섯 고등학생이다. 잔뜩 멋 부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춘다. 그러다 집에 오면 말을 타고 달리면서 야크를 몰고 화로에 불을 지펴 요리한다. 도시와 초원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멋진 친구다.

지혜(Оюунтунгалаг). 열넷.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처음엔 수줍음이 많아 보였는데 지내다 보니 장난기가 가득했다. 조용히 웃다가도 게임을 시작하면 누구보다 진지해진다. 타오르는 승부욕에 슬쩍 놀리는 재미도 있다. 동생을 은근히 챙기는 걸 보면, 속이 따뜻한 아이다.

지민(Отгонцэцэг). 일곱 살 막둥이. 잘 웃는다. 누가 조금만 챙겨줘도 그렇게 좋아한다. 언니들 노는 데엔 늘 끼고 싶어 한다. 하루에도 옷을 몇 번씩 갈아입는다. 벌써 제 스타일이 뚜렷하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막둥이티가 폴폴 난다.

아버지(Ээж-Буяндэлгэр). 형제들의 맏이이자 리더다. 길들지 않은 말을 제압하고 안장도 없이 훌쩍 뛰어올라 내달리는 모습에 반해버렸다. 동생들이 한 일을 뒤에서 묵묵히 받쳐준다. 겉은 무뚝뚝해도 속은 여리다. 정도, 눈물도 많다.

어머니(Аав-Ням-Оцор). 손이 잠시도 쉬지 않는다. 새벽부터 나가 야크 젖을 짜고 물을 끓이고 장작을 패고 끝없이 먹을거리를 내어준다. 우리가 불편하진 않은지 말없이 살핀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둘째 삼촌. 자상한 아빠다. 안장도 없이 말의 맨 등에 단번에 올라타, 가파른 산비탈을 거침없이 내달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그의 아내. 내가 가져간 핸드 드럼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연주해 버린다. 영어가 조금 통해 대화가 한결 수월했다. 유쾌한 눈웃음이 자꾸 생각난다.

막내삼촌. 셋 중 가장 무쇠 같고 인상도 제일 우락부락하다. 그런데 그 얼굴에서 정이 뚝뚝 떨어진다. 우리가 떠나자마자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도 이 친구다.

지희. 지민이와 동갑이다. 늘 지민이 손을 꼭 잡고 다닌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개울에서 물을 튀기며 논다. 개울 위에 얹어 놓은 통나무 다리에 걸터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윤. 몽골 이름은 솔롱고, 무지개라는 뜻이다. 우리 딸 지안이와 동갑이라 더 정이 갔다.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내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이런 포즈 저런 포즈를 주문하며 나를 찍어줬다. 꼭 사진작가처럼.

이 가족이 많이 그립다.

이별

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를 환대했다. 그들도, 우리도 마음이 녹아내렸다. 떠나는 날에야 정이 이만큼 깊어졌다는 걸 알았다.

마지막 저녁, 다 함께 데쓰(deel, 몽골 전통 의상)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미리 써놓은 편지를 가족들 앞에서 읽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고 아버지는 감정에 복받쳐 게르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우리가 입고 있던 데쓰는 선물로 받았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할 수 있을까. 우린 한국에서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인사라며 큰절을 올렸다. 막내 삼촌은 집에 가지를 못하고 한참 동안 게르 밖에서 서성였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에, 표정에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이튿날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렸다. 게르에서 처음 듣는 알람 소리다. 어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야크 젖을 짜러 갔고, 나가면서 지유를 깨웠다. 아버지도 일찍 일어나 옷을 입으신다. 지유는 말없이 일어나 고기를 썰고 밀가루를 반죽한다. 우리도 일어나 짐을 꾸렸다. 게르 안에는 마지막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많이 먹으라고 한다. 한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진짜 마지막이구나.

작은 차에 일곱이 끼어 탔다. 한 시간을 달려 첸케르에 닿았다. 버스 도착까지는 삼십 분이 남았다. 우리 얼굴에도, 그들 얼굴에도 아쉬움이 묻어난다. 꼭 다시 보자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지만 이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다. 한숨만 푹푹 쉬었다.

버스가 왔다. 우리는 찐하게 포옹했다. 짐을 싣고 또 한 번 포옹했다. 모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렇게까지 아쉬울 줄은 몰랐다.

버스 창으로 손을 흔들며 지유네 가족과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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