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기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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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기민함

몽골의 유목민들.
아침에 눈을 뜨면 야크 젖을 짜러 나간다. 그리곤 말, 염소, 양, 야크 떼를 목초지에 풀어 놓는다. 수많은 가축이 있지만 주인은 자기 식구를 알아본다. 때에 맞춰 양털을 깎아주기도 하고 움직임이 불편한 녀석들은 따로 골라내 특별 관리를 한다. 집 안에서는 쉴 새 없이 먹을 것을 만든다. 야크 젖을 끓이고 젓고 말려서 버터, 우유, 차, 과자를 만든다. 가끔은 무리 중 한 마리를 잡는다.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덜어내고 각을 뜬다. 똥과 피만 바닥에 쏟고 나머지는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모든 부위는 음식이 되고, 옷이 되고, 생활 도구가 되어 유목민의 삶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 외의 시간엔 양 우리를 보수하거나 장작을 팬다.

이들은 계절에 따라 움직인다. 여름엔 여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겨울이 되면 겨울나기 좋은 곳으로 이동한다. 풀이 있는 곳, 물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들이 사는 게르의 천장은 열려있다. 그들과 하늘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면서도 뻥 뚫린 천장 위의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보며 잠이 든다. 그 옛날에도 이들은 이렇게 살았을 것 같다. 아무런 변화 없이 똑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사는 세상은 AI가 깊숙이 침투했다. 일주일 정도만 눈을 돌렸다 와도 판도가 바뀌어 있다. 이 분야의 탑 클래스 엔지니어들도 이런 말을 한다.
“요즘, 처음으로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조급하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다. 얼마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100년 전에도, 500년 전에도 같은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유목민과 비교된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유목민이야말로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구름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을 민감하게 포착한다. 달력에 적어놓은 계획이 아니라 오늘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을 향해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그것으로 오늘 할 일을 결정한다. 비가 오거나, 햇빛이 나거나, 바람이 불거나. 그것에 따라 삶의 방식을 바꾼다. 가축을 더 멀리 풀어놓기도 하고, 얼른 우리 안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공기의 변화를 느끼며 이동 시기를 결정한다. 어제와 똑같이 보내는 날이 없다. 변화에 예민하게 촉수를 세우고, 거기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유목민이다.

우리 정주민의 삶은 어떤가. 태풍이 불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40도에 육박하는 햇볕이 내리쬐든 똑같은 삶을 이어간다. 월화수목금 나름의 스케줄에 맞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는다. 서너 평 남짓한 반경 안에서 사부작사부작 하루를 보낸다. 다들 나름의 계획이 있다. 하지만 자연의 변화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자신의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인다. 주말에는 나들이를 가거나, 종교 활동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한다. 여름에는 휴가를 가기도 하겠지. 승진을 하고, 이사를 하고, 자녀 교육을 시키고. 이 모든 것은 자연과 상관없이 움직인다. 세상의 변화보다 내 머릿속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이 얼마나 정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삶인가.

도시 안에서 유목민으로 살기를 꿈꾼다

내 삶의 터전은 도시다. 게르가 아니라 아파트에 살고 초원이 아닌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유목민으로 살아가기’로 나의 정체성을 세운 게 5년 전. 계속해서 도시에서 유목민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찾고 있다. 지난 몽골 여행도 그 질문 위에 있었다. 유목민 가족과 함께 보낸 5일을 떠올리며 그들의 기민함을 다시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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