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도에서의 생각들

마음의 준비

2019.02.03 인천공항에서 환승 대기 중

어제 저녁부터 머리가 아팠다. 체했나 보다.
한솔이가 나를 보더니 얼굴이 완전 노랗단다. 너무 신경을 많이 쓴 게 아니냔다.
아니라고 했지만, 한솔이는 몸이 다 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신경을 많이 썼었나 보다. 2019년이 시작되면서 아웃리치와 고등부 총무 일이 많이 부담이 됐었나보다. 신경써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아플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는 것은 없고, 오히려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하려다 번아웃되고, 체하고, 얼굴은 노랗게 변해버린 채 아픈 머리를 잡고 누워버린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서 꽤 잘된 일들도 많았다. 내가 못 하는 일에 부딪혔을 때, 열심히 애쓰고 노력해서 잘 해낸 일도 있다. 근데 그렇게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 차이는 뭘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 경계는 뭘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 사실 이건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배웠던 것 아닌가? 열심히 준비하되, 실제 여행지에 가서는 내가 준비한 것은 다 버리고(참고만 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움직이는 것.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주셨었다. 여행하면서 배웠던 그것을 실제 삶으로 가져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나보다.

만약, 그 부담이,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그런 거라면, 그건 무시해도 될 것 같다. 정말 진짜로 나의 부족한 모습에 신경쓰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무시해도 될 것 같다. 나의 미숙한 모습을 신경쓰고 있다는 말은, 적어도 본질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에겐 내 모습이 보일 리가 없다.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때, 내 모습이 어떠하든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에 내 모습은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를 통해 일하여 주옵소서”
어제 아웃리치 출발 예배 때 하나님께서 양정권 전도사님을 통해 주신 말씀이다.
그리고, 오늘 인천공항에서 혼자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또 한 번 주신 말씀이다.
어쩌면, 이번 아웃리치를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게 이게 아닐까?

하나님. 나를 통해 일하여 주옵소서.
나를 통하여 일하시려면, 나의 모습을 사용하실 것이다. 나의 부족한 모습을…
사람의 부족한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던 일이 얼마나 많았었나? 사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렇지 않았었나? 근데 왜 나는 내가 잘하려고 애썼을까?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깨끗한 그릇. 사실 이것이 내가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는 내가 정말 못하는 것들을 애써서 준비하려고 했었다. 하나님은 빼고…
그냥, 23명 전체를 잘 돌봐주고,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자.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도하자.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을 더 사랑해주는 것. 하나님을 더 알게 하는 것.
지쳐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면 풍성하고 은혜 넘치는 시간이 될까?

함께 가려고 했던 가족은 한국에 두고, 아웃리치 팀 23명을 돌보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상황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의 훈련을 거부하지 말자. 그 훈련의 시간을 잘 통과하자.

북경에서 마나도까지의 이동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북경 출발할 때 짐 검사 할 때부터 난리였고, 자카르타에서 마나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23개의 큰 캐리어에 참 많은 것들을 담아 갔다. 그 23개의 짐은 모두 인도네시아를 위한 짐이었다.

여행은 매번 그랬던 것 같다.
항상 내가 가져간 짐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온다.
남에게 주려고 담아놓은 사랑의 크기.
그것을 아무 대가 없이 풀어놓았을 때, 생각지도 못한 대가가 나에게 돌아온다.
이번 아웃리치는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같은 마음

셋째 날 나눔 시간.
희서의 나눔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관데, 이런 사랑을 받는 것인지…’

우리를 위해 준비했던 초등학교 아이들의 공연.
그냥, 그 마음이 전해졌다.
우리가 그 아이들을 향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할 때, 우리의 마음도 그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왜냐면, 마음은 통하니까.

처음 본 그 아이들에게서 희한하게도 사랑이 느껴졌고, 그들 또한 처음 본 우리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아웃리치를 위해 늘 기도하던 기도 제목 중 하나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했고, 우리는 축복의 통로, 사랑의 통로가 되었다.

희서가 눈물 흘리고 울먹이며 했던 나눔. 그 마음을 알기에 내 눈에도 눈물이 고여 들었다.

눈물

난 눈물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이 나올때가 종종 있다.
내 눈에서 언제 눈물이 나올까?
예배시간 종종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그걸 꼭 “은혜받았다"라고만 표현하기엔 뭔가 좀 부족하다.

다른 무언가에 가려져 있던, 내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진심을 알았을 때.
그 진심을 내 입으로 고백했을 때.
그때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놀면서) 환하게 웃는 미영이를 보며 눈물이 나왔었다. 아~ 저게 미영이의 진심이구나.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라고 말해줄 때.
그리고 I need you more, more than yesterday 라고 고백할 때.
너희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 좋다라고 말할 때.
그때 눈물이 나왔다.

모두 진심을 고백하던 순간이었다.

그림이 주는 메세지

둘째 날 해 질 무렵, 한 발 떨어져서 완성되어가는 벽화를 봤다.
해 질 무렵, 출렁이는 바다 옆에서 점점 완성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그림.
아ㅡ 작년 우간다에서도 이 느낌이었다.
양손에 페인트를 들고 걸어오면서 봤던, 그 큰 벽을 메꾸고 있던, 예수님이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콜링하고 계셨던 그 그림.
이번에도 같은 기분이었다.

이 시간에 산책하러 공원에 나온 그 사람들도 이 그림을 보겠지? 아직 완성되기 전인데도 사람들이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그 그림을 사람이 가운데 서면 양옆으로 날개가 보이도록 해서, 포토존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양쪽 날개 아래에 Savior Jesus 구세주 예수라고 적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며 사진을 찍을 텐데, 그 사진엔 구세주 예수라고 적혀있다.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구세주 예수가 적혀져 있는 사진을 찍어가겠지?
혜인이 말처럼, 이 그림들을 통해 **“이곳 마나도는 하나님의 땅이다”**라고 선포하시는 것 같았다.

아쉬움

류호선 선생님과 함께 하는 벽화 아웃리치는, 엄청 빡쎄게 달리다가 정해진 사역이 마무리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좋아질 때쯤, 2~3일만 이것을 더 누리고 가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그 아쉬움을 꾹 눌러두고 돌아와 버린다. 그래서 그 아쉬움에 또 다음 아웃리치를 가게 만든다 => 희서의 말. 동의.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다들 참 좋다고 말한다.
도대체 왜?
왜 그런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이건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것 ≈ 사람이 주는 것.
그것은 사람이 주는 것이기에 이유를 알 수 있고 조종도 가능하고 한계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받은 것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실 잘 모르겠다. 왜 좋은지…

왜 좋은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 낼 수도 없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His Time을 기다릴 뿐이다. 따라갈 뿐이다.
그 하나님과 함께할 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주는 기쁨을 따라 사는 삶보다 더 신나고 재밌는 삶이 아닐까?

His Time

박수진 선교사님께서, 지금까지의 사역을 단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His Time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하셨다.
마치, 나는 돈 잘벌고 잘나가는 아들이고, 하나님은 나이 많고 힘없는 늙은 아버지 인 것 처럼, “하나님! 여기서 이렇게 하세요!“라고 명령하는 것 처럼 사역을 할 때가 있었는데,
긴 시간 사역을 하며 His Time을 배워갔다고 하셨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진행이 되어 간다고.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이번 아웃리치도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나라고 느끼는 순간

서로가 같은 마음임을 확인하는 순간. 같은 상황 속에서, 같은 일을 했고, 같은 것을 느끼는 그 순간. 그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각자의 마음을 나눔으로써 그것이 확인된다.

나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그저 하나 되어 함께 했을 때. “좋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딱히 다른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마음이 가슴속에 차오른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님, 한 하나님과 함께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수열이 아버지와의 만남

수열이 아버지는 공항까지 버스를 대절해서 나오셨다.
밥과 과일과 물, 음료까지 준비해서.
Taman Mini로 데려가 주셨고, 기념품을 사기 위해 쇼핑센터도 데려가 주셨고, 다시 공항까지 데려다주셨다.
아무 대가도 없이 이 모든 것을 해 주셨다.

그냥 감사히 받았다.
수열이 아버지는 정말 아무 대가 없이 베풀어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감사히 받고 나도 또 이렇게 베풀자.

처음의 목적 vs. 실제로 얻은 것

처음의 목적 vs. 실제로 얻은 것
이 두 가지는 대부분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대부분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세상일은 우리의 계획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계획과 노력에, 내가 하지 않은 그 무언가가 더 있다.
그것을 “하나님의 도우심” 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하나님이 함께하셨을 때, 우리의 계획과 노력 이상이 작용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는 처음의 목적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항상.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우리의 노력과 계획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래서 그로인해 얻게 되는 것도 당연히 이해가 안 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시간에 환하게 웃게 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래서 힘들었던 시간이 또 해보고 싶은 추억이 된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선택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 그로 인해 얻게 된 새로운 것.
그것을 취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저 주어진 그 기쁨을 받아들이고 누리기.
아니면, 처음의 목적 달성만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거부)하기.

마음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진다.
그리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지라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엔 분명 처음의 목적 이외에 더 얻는(주시는) 것이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나의 처음의 목적보다 더 클 것이므로.

그렇게 살자.

에필로그

2019.02.28

마나도를 떠나온 지 3주가 다 되어간다. 다들 좋았었나 보다. 같이 갔었던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아웃리치 대학부 방에서는 아직도 그때의 사진들이 올라오고, 그때를 회상한다. 마나도에서 전해오는 김영란 선교사님의 메세지도 봤다.

모두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고생 많았고 조금 더 화장실 쓰는거도 편하게 해줄 걸 생각하며 부족했던 일이 생각나며 불평없이 잘 사역하고 가준 아이들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준비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직도 남겨놓으신 김치와 멸치 먹으며 다녀가신 흔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공원은 사진 찍는 명품 장소로 재탄생되었고 시장님 댁도 오고가는 사람들이 넘 좋아하고 즐겁게 보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메시지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망고스틴은 딱 계신던 기간에만 있다가 없어졌습니다. 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이 사다줄 걸 하는 생각도 하고 지나니 더잘해주지 못해 아쉽습니다. 아이들이 눈에 선합니다. 이삭이는 공관 경비 아저씨가 보고 싶다고 영어도 잘하고 귀엽다고.. 경비아저씨랑도 어느틈에 말도하고 친하게 지내다 갔나봅니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란 선교사님 -

준비 기간부터 치면 꽤 긴 시간이었다. 10월 중순부터 미술캠프 준비로 모였었고, 11월부터는 매주 화요일마다 대학생 친구들과 사도행전을 읽고 나눔을 했었다. 달력을 만들어 팔고, 예배시간 특송도 몇 번 했었다. 한중 미술대전이란 큰 행사도 치러냈다. 그리고 마나도에서 보낸 일주일.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2월까지는, 그냥 아웃리치 기억만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강렬한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 동역하자”**라는 마음의 자세인 것 같다. 하나님과 동역하기는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1)나 혼자 하거나, 2)하나님 혼자 하도록 하거나. 늘 이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나의 최선이 늘 엇갈렸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만히 바라보며 따라만 가던가, 아니면 나 혼자 애쓰며 밀고 나가고 하나님껜 그냥 필요한 도움만 청하던가. 1)하나님의 인도하심. 2)나의 최선. 이 두 가지는 함께 가야 하는데, 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하나님과의 동역.
그렇다. 하나님과 나는 서로 동역하는 관계면 좋겠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역은, 인류 역사에서도 딱 두 번뿐이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천지창조. 두 번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그 외에는 늘 하나님은 함께 할 사람을 찾으셨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을 때 세상은 변해갔다.

아웃리치를 시작할 때.
하나님 없이, 나 혼자 힘으로 애쓰면서 끌고 가려고 했을 때 나는 진이 다 빠져버렸고 아파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작은 그렇게 무식하게 했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며,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큰 그림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렇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이 모든 것에 순종하며 내가 해야 할 것을 했고. 그리고, 참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이 값진 배움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하나님을 더 알게 되어서 좋고, 사람들을 더 알게 되어서 좋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었던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를 마음에 품게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더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내 진짜 모습이 많이 가려져 왔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덮고 있던 껍데기들을 조금씩 벗어내는 것 같다. 이렇게 매일매일 살다 보면 나의 진짜 모습이 좀 더 많이 드러나겠지? 하나님을 닮아 있는 나의 진짜 모습. 그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서, 그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