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라이프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살갗을 간질이는 밤공기가 좋다. 벌써 가을이다. 올해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었나. 세르티앙주는 『공부하는 삶』에서 “진리는 거리에서 외치며, 우리가 등을 돌릴 때도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는다”고 했다. 쉴 새 없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진리의 메시지를 잡아채 사유하고 글로 남겨 사유를 행동으로 이어가는 재미. 이 리듬을 다 살리고 싶다. 몰아서 한번 써보자.

익스트림 라이프

5년 전에도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었다. 지금도 그때만큼이나 익스트림하다. 외적인 환경이 휘몰아치는 만큼 내면을 지켜내려는 싸움 또한 치열하다. 일을 만들어내는 게 내 역할이라면, 그야말로 다이나믹했다.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될 것처럼 뛰어들지만 성사되는 건 극소수다. 스타트업 성공률이 3%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더라. 그 3%의 구멍을 향해 계속 들이대는 게 나의 일상이다. (이걸 도전이라 표현하지 않는 건, ‘도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왠지 세련돼 보여서. 내가 하는 일은 세련됨보단 처절함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도전’이라는 단어는 피했다.)

그렇게 겨우 만들어낸 프로젝트가, 매주 지방까지 내려가며 몸을 갈아 넣었던 프로젝트가 날아갔다. 어느 날 갑자기 철수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봤다. 아래는 짐 싸서 KTX 타고 올라오며 끄적인 글:

‘이걸로 올해 먹거리 다 세팅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하나님은 내가 편한 꼴을 못 보시네 ㅋㅋ 하긴, 가장 나다울 때는 생존 본능이 치솟을 땐데. 한동안 너무 편안했다. 불안함 속에 있지만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참된 평안을 누려야 하는데. 사실 그동안 절박함도 없었고 너무 편했다. 다시 불안함 속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곧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뛰어다녔다. 경력도 포트폴리오도 없는 코딱지만 한 회사 타이틀 가지고 말도 안 되는 곳에 들이밀고 다닌다. 그 과정에 많은 도움의 손길을 느낀다. 세밀하게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한다. “이건 정말 하나님이 꽂아주신 거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회가 주어졌다. 영천 프로젝트가 빠그라지고 한 달도 채 안되어 더 좋은 기회가 생긴 거다.

하나님의 개입

어느덧 마흔 중반. 나에게도 그저 하고 싶은 대로만 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혈기가 치솟았던 청년 때도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 어른의 신앙을 가져야 할 때.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무나 짜임새 있게, 빡빡하게만 돌아가던 내 일상을 보며. ‘이런 삶에는 하나님도 들어올 수 없겠네’라고 중얼거렸다. 이런 빡빡한 삶을 비워내고 싶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아웃리치를 신청했다. 갑자기 일을 멈추면 큰일 날 것 같지만, 그래도 시간을 한번 비워보자. 2주 동안 휴가를 쓰고 우간다로 갔다. 그때부터 어른으로서의 신앙생활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이 갔었던 대학생 친구들이 매주 집으로 놀러 오고 고등부 교사도 시작하고 교회 커뮤니티에도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공동체의 맛을 봤다.

그때 나를 움직이게 한 건, 내 삶에 하나님을 개입시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러기 위해 빡빡하게만 돌아가던 삶을 덩어리로 비워냈고 그 공간에 하나님이 들어오셨다. 그 하나님은 여전히 내 삶에 개입하신다.

내가 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놓으면,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다.

데드라인

매일이 데드라인이다. 오늘의 결과로 내일이 달라진다. 간신히 오늘 미팅을 넘기고 나면 또 3시간 뒤의 미팅이 나를 옥죄어 온다. 바로 초점을 그쪽으로 돌리고 새로운 데드라인을 설정한다. 실력도, 효율성도, 우아한것도, 일 잘하는 것도, 똑똑한 것도. 다 관심 없다. 내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해서 데드라인, 죽음의 선을 넘길 뿐이다.

내가 가진 달란트

코드스텝을 시작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또 한 가지가 있다.

2021년에 첫 번째 회사 하이데어를 창업했고 이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살려보려고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6개월이 지났을 때 돈이 바닥났고,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경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던 그 시절, 월급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말 살벌한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전 회사 선배가 고생 그만하고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나도 살아야 했기에, 10년 만에 첫 번째 회사에 재입사를 했다. 좀 편안해지나 싶더니 또 회사를 차린 거다.

이 좋은 회사를 왜 나가려고 하는지, 뭐가 힘든 건지 묻는다.
”너무 쉬워서요. 긴장감 하나 없는 그 삶이 힘들었어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란트가 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엄청난 달변가도 있다. 누구는 외국어에 능통하고 전략 기획을 기똥차게 잘하는 사람도 있다. 불안함을 견디는 것, 막막한 상황에도 뛰어드는 것, 그때의 긴장감을 감내하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휘몰아치는 상황에도 일상의 향유를 지켜내는 것. 이런 것도 재능이라 한다면, 그게 나의 달란트다. 힘들게 수고하지 않아도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사는 삶은 단조로웠다. 나의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 회사를 시작했는데, 현실은 더 냉혹했다. 공들여 만들어가던 일이 다 어그러진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drop 되고 계약은 취소되고. 찝찝하고 지저분하고 애매한 상태가 계속된다. 아내한테 이런 얘길 했더니 내가 신나 보인단다.

최근 2달 정도, 유난히 휘몰아치는 시간이었다. 2년 전 그때는 참 따뜻했었구나 싶을 만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살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데 2년 전 그때와 같은 얘기를 한다. 신나 보인다고.

이게 나의 재능이 맞나보다. 땅속에 묻어뒀던 나의 달란트를 꺼내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는 소진되지 않는다. 나를 갉아먹는 게 아니라 더욱 나를 나로 만들어간다.

AI, AGI, 미래

AI니, AGI니. 다들 어설픈 말로 미래를 점쳐보지만 그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함을 증폭시킬 뿐이다. 그래서, 점점 더 미래에 떠들썩하다.

이것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 몰아칠 변화가 꽤 클 것 같다. 그건 말 그대로 ‘변화’다. 더 나아지는 게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갈 뿐이다. 세상이 유토피아가 되진 않을 거라는 얘기. 어떤 모습으로 바뀌든 문제는 남아 있을 테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일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이다. 난 그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갈 뿐이다.

Dead line을 지킬 방법을, 모든 걸 동원에서 지금을 살 뿐이다.

사업을 배운다는 것

창업을 결심한 여러 요소가 있다. 이 큰 결정을 어찌 한두 가지 생각으로 했을까.

Y Combinator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사업을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사업이다.”라고 했다. 기업가 정신 같은 거 배울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냥 기업가가 되라고. 사업은 책으로, 강연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창업을 하겠다고 하자 여러 선배가 말렸다. 한 선배는 자기가 울타리가 되어 줄 테니, 자기 회사에서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며 사업을 좀 배우다가 자신이 서면 시작해 보라고 했다.

사업은 사업을 하고 있어야 배울 수 있다. 사업은 생존이기 때문에. 링 위에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진짜 생존해 낼 때 생존력이 생기는 것이다.

야생 학습

그래서 사업의 다른 말은 야생이다. 나의 공부도 야생 학습이다. 실전에서 배우는 공부가 재밌다. 그러기 위해 내 환경을 야생으로 만든다. 삶의 터전을 야생으로 만드는 방법은 절박함이다.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내가 가진 모든 걸 총동원한다. 그렇게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겨우 살아남고 혼자 숨을 고르며 그때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렇게 배운 건 뼈에 새겨진다.

길 위의 신학

장로교, 칼빈, 침례교… 여러 종파가 있다. 하나님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만큼 그것을 따르는 다양한 사람이 있었을 테고, 그렇게 많은 교리/교파가 생겨났겠지. 그렇게 본다면 난 내 신앙을 보행의 신학, 길 위의 신학으로 정의해본다.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를 쓴 찰스 포스터, 《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를 쓴 요르그 리거.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욕쟁이 예수》를 쓴 박총 목사님. 이 거장들의 신학을 이어가고 싶다.

어제도 나의 신앙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눴다. 주변부로, 가볍게, 늘 걸으며 내가 아는 작은 말씀을 몸에 새기고, 그 작은 걸음으로 걸어가며 살아가는 삶. 길 위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생동감이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들 나처럼 미쳐있다. 그래서 굳이 설명하려,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함께 즐기고 공감하고 응원해 줄 뿐이다.

익스트림 라이프

2020년에 내 삶의 방식을 이렇게 정했다. 익스트림한 삶이 재밌다. 여전히 익스트림하다.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