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라이프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넘쳐난다.
두서없는 그대로 써내려가 본다. ㅋㅋ

다행이다

얼마 전 결혼 10주년이었다. 매해가 다이나믹 했지만, 특히 지난 일 년은 정말 다이나믹 했다.
출근하면서 이적의 “다행이다"를 듣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 내가 이적처럼 불러주지는 못하지만, 아내한테 노래를 보내주며,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정말 다행이다.

성장

엊그제 퇴근하는데, 같은 팀 한 친구랑 우연히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처음 같이 일해보는, 중국말 엄청 어눌한 외국인이랑 20여 분 가량을 걸어가야 했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였던지(ㅋ) 그 친구가 이렇게 물어보더라.

“몇 년을 일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되니? 실력을 늘리는 너만의 방법이 있니? github 같은 데서 여러 오픈소스들 참여도 해보고 그러니?”

나의 대답은.
그런 거 보다, 매일 퇴근하면서 오늘 나의 일을 쭉 돌아보며 피드백을 해 보라고 했다. 오늘 작성한 코드를 머릿속으로 이렇게 리뷰해 보라고 했다.

  • 오늘 내가 작성한 코드는 가장 좋은 코드였나? 더 잘 작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오늘 내가 내린 그 결정이 가장 좋은 결정이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딴 데서 엉뚱한(?) 장난감 같은 거(toy project) 만들지 말고, 오늘 내가 한 일을 돌아보며 더 좋은 코드, 더 좋은 방법을 계속 고민하라고 했다. 나도 매일 그렇게 한다고.

사람들은 저 높은 곳으로 껑충 뛰어 올라가고 싶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신기루일 뿐이다. 절대 잡히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 걸 잡으려고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있을까?

한 발 한 발 조금씩 거기에 가까이 가려고 하는 **현재진행형의 상태**가 있을 뿐이다.

프레임워크, 개발 표준. 이런 건 필요 없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직을 제의 받았을 때, 꽤 난감한 요구사항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입사 후 2주가 지난 어느 회의시간. 이렇게 얘기했다.

“나의 목표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다들 황당해 한다. 그걸 해 달라고 나를 불렀는데, 그걸 하지 않겠다니.

2006년 첫 회사에서 했던 일 중 하나가, 사내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한 개발 표준을 만들어, 어떤 개발자가 오더라도 쉽게 코드를 찍어낼 수 있도록 하는 거였다. 몇 년 해 보고 느꼈다. 아ㅡ 이건 해선 안 되는 일이구나. 이유는

  1. 특정 사내 프레임워크에만 길들여진 개발자는 성장할 수 없다.
  2. 특정 사내 프레임워크로만 개발하는 회사는 변화할 수 없다.

결국, 개발하는 개발자에게도, 그걸로 개발하게 하는 회사에도 마이너스다.

그 발언이 있은 후, 며칠 동안 프레임워크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합의 한 지점은, 어쨌건 “개발자 개개인과 회사에 도움이 되는 뭔가를 하겠다"였다.

어쩌면, 이건 나의 직업윤리 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 정했다. ㅋㅋ)

  • 사람에게, 회사에, 이 세상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을 하자.
  • 개개인이 좀 더 자신의 삶을 진지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
  • 회사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 더 많아지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하자.

세상은 발전하는가?

최근 일 년, 혼자 생각/묵상/기도/독서/사색/etc. 이런 걸 할 시간이 많았었다.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 하나

“세상은 발전하는가?”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세상은 발전하지 않는다“였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세상의 발전"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했다. 나의 정의는 이러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이 좀 더 살기 좋아지는 것”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나니, 세상은 발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늘 잘 먹고 잘 살았다. 이들만 생각한다면 세상은 지금 상태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인데… 세상이 발전한다면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이들의 삶이 점점 나아져야 할 텐데. 아ㅡ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럼, 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이미 난, 생계유지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의식주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되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이상, 다른 뭔가를 위해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이 세상을 더 발전하게 하는 게 아니라면, 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는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여전히 고민 중이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고민만 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삶을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실제 삶이 더 나은 삶으로 바뀌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어떤 연관성인지 맥락이 없어 보이지만, 그 중 한 가지는, 프레임워크/개발표준 따위는 만들지 않는 거다. ㅋㅋ
(글로 적기엔 좀 귀찮은 ㅋㅋ 나만의 맥락이 있긴 하다. 어째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나중에 만나서 ㅋㅋ)

시기심이 뭐지?

주일 오후마다 교회에서 남선교회 어르신 분들이랑 모임을 한다. “왜 일하는가?” 책을 한 챕터씩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어제의 주제는 “시기심"이었다.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시기심이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리는지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직장 내에서 시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과 그것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 머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돌아가면서 시기심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난 별로 할 얘기가 없더라. 그래서 모임을 그냥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어느 분께서 내 생각도 들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했다.

난 시기심이란 게 잘 안 생긴다.
나보다 잘하는 동료를 보면 정말 멋있어 보이고, 응원해주고 싶다.
내가 내린 결정에 반박하고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기분이 좋고 짜릿하다. 이유는,

  1. ‘내가 몰랐던 부분이 있구나.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있었구나.‘를 알게 된다
  2. 이 친구는 정말 자기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그냥 시간만 떼우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구나.

예전 어느 날, 난 왜 시기심이 잘 안 생길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때 스스로 생각한 이유는, 난 정말 “내가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ㅋㅋ 내가 이미 꽤 괜찮은 사람인데, 남과 비교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나처럼 괜찮은 사람,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어렸을 적, 난 자존감이 그다지 높지 않았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됐고, 나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방법은 다를 수 있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소중함을 알아가면 좋겠다.

뭔가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세상.
좀 어지러울 순 있겠지만 ㅋㅋ 그게 이 자연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중국어 공부

회사에서 점심 먹고 나면 매일 하는게 있다. 산책하며 중국어 동화책을 소리를 내 읽는 것이다. 회사에 한 친구가 자기 아들 동화책을 가져와서, 매일 나한테 읽기 연습을 시킨다. 매일 읽으면 나아질 거라고. 거기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어서, 점심 먹고 나면 3~4명이 같이 산책하며 내가 중국어 동화책 읽는 것을 도와준다. 발음도 교정해주고, 내가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면 온몸으로 표현하며 그 단어를 설명해준다. (근데 문제는 내가 금방 까먹는다는 거…)

난 세상에서, 정말, 중국어 공부가 젤 하기 싫다 ㅠㅠ 남들이 하는 여러 유명한(?) 공부방법들을 한 번씩 다 해봤는데, 문제는 내가 그걸 너무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ㅡ,.ㅡ;; 그래서 난 중국어만 할 수 있는 상황에 나를 던져 넣어버리는 방법을 택했는데, 지난 회사도 그렇고, 이번 회사도, 사무실에 외국인은 나 한 명 뿐이다. 조선족도 없어서, 사무실에 들어오면 그냥 중국말만 웅성웅성 들린다.

처음에는 그날 읽은 동화책을 복습도 하고, 모르는 글자를 노트에 옮겨 적어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역시 작심삼일. (3일도 못했음 ㅋㅋ) 그냥 점심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그 시간에 그냥 놀면서 하는 걸로 끝내기로 했다.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애써 하지는 말자.

내 삶으로 녹아들지 않는다면 지속할 수 없다. 천천히 느리게 하더라도, 혹 안되더라도, 내 삶으로 녹여들인 것만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내 삶이 되어 버리면, 조금씩 변하게 되어 있다.

일주일 주기로 살아가기

우리 딸 지안이가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다. 정말 말 그대로 쑥쑥 자라고 있다. 키와 생각과 지혜가 쑥쑥 자라난다.

모든 갓난아기가 그렇듯,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매일 달라 보인다는 것은 좀 오버인 것 같고(ㅎㅎ), 나의 기억을 돌아보면, 지안이가 커 가는 과정은 일주일 정도의 텀으로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문득 일주일 전을 떠올려보면, 일주일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커 있는 걸 본다.

일주일 단위로 달라 보이게 성장해 가던 어린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된다. 그러면서 성장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어느새 성장을 멈춘다.

사람은 원래 계속 성장(변화) 할 수 있는 존재다. 나이가 들었다고 성장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계속 성장해 갈 수 있는 존재다.

나도 언제부턴가 일주일 주기로 살아가고 있다.

“일주일 전과 달라지자”

삶의 모든 부분에서 그렇게 하진 못하지만, 집중하고 있는 몇몇 부분에선, 가능하면 일주일 단위로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 작년부터 기타 연습을 시작했는데, 일주일이면 서툴렀던 곡을 좀 더 자연스럽게 칠 수 있다.
  • 위에서 말했듯, 새로운 회사에서 꽤 난감한 일을 부여받았는데. 회사는 계획을 요구하지만, 그런 거 다 집어치우고, 일주일 단위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한두 달 뒤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고 계획 따위를 세워?? ㅋㅋ 나 자신이 한두달 뒤에 어떻게 변해있을지도 모르는데… 세상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일어날 가장 확실한 한가지 변화가 있다면 바로 나 자신이다.)
  • 예전부터 만들어보고 싶었던 서비스가 있는데, 2월부터 밤마다 조금씩 코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역시 큰 그림,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냥 “일주일 단위로 변화를 만들자"라는 단순한 목표 한 가지만 가지고 매일 조금씩 진도를 나가고 있는데, 3달 동안의 결과가 나 스스로 놀라울 정도다 (조만간 공개합니다! ㅎㅎ)

일주일 뒤인 5월 24일엔, 난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겠지?

욥의 친구들 그리고 나

몇 해 전부터 매년 성경을 한 번씩 읽고 있다.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게 너무 많은데, 정신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거기에 휩쓸려가고 만다. 이런 혼란함 속에서 나를 지켜내기 위한 한가지로 매일 성경을 읽고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읽으니까 재밌는 거 한가지는, 매해 같은 시기에 같은 부분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매해 여름이 시작될 때쯤 “욥기"를 읽게 되는데, 2021년 초여름인 지금도 어김없이 욥기를 읽고 있다.

욥을 닮아가야 하지만, 성경을 읽고 나를 비춰보면, 욥 친구들의 모습에 더 가까운 나 자신을 본다. 고통 속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위로를 해 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나의 개똥철학을 자랑하며 오히려 더 상처를 주는 친구들. 결국, 욥은 소리치고 만다. 제발 좀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나를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프레임, 편견

중국은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모습을 가진 나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땅덩이가 넓고 사람 수도 많고 역사도 긴~ 만큼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근데,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 각양각색 중 하나하나의 모습을 모아보면, 적지 않은 무리가 된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중국의 모습에 대해 쉽게 오해할 수 있다.

“중국 사람은 …” 으로 시작하는 말 대부분은, 사실은 틀린 말이다.
“중국 사람은 …” 뒤에 어떤 문장을 붙이든, 중국엔 그런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정말 훨씬 많다.
근데 그런 사람들도 꽤 많아서, 얼핏 보면 정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보려고 결정한 것만 보인다. 중국에는 워낙 다양한 모습이 있으므로, 내가 어떤 모습을 보려고 한번 마음을 정하면, 정말 매일매일 그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 중국은, 그냥 자기가 정한 그 모습의 나라가 되고 만다.

내가 접했던 많은 중국 사람들은, 친절했고, 배려심도 많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주고, 늘 나를 위해줬었다.
또 내가 접했던 어떤 중국 사람들은, 불친절했고, 배려심도 없었고,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 것을 빼앗아가려고 했다.

프레임이란게 워낙 강력해서, 최근에 읽은 “바른 마음"이란 책의 문장을 빌려 말하면,

도덕 매트릭스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지만, 그것은 다른 매트릭스가 가진 논리(심지어 다른 매트릭스의 존재까지도)를 못 보게 하는 면이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 이상의 도덕적 진실이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데 무척이나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사회를 운영하는 정당한 틀도 하나 이상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 바른마음 p. 215

이 세상은 워낙 다양해서, 하나의 프레임을 갖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그의 모든 경험과 지식은 그 프레임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 어떤 책을 읽든, 그 프레임을 뒷받침할 근거가 되어 버린다. 그런 사람은 경험하면 할수록, 공부하면 할수록,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무시무시한 칼자루를 쥐는 꼴이 되고 만다.

세상은 넓고, 그 안에는 소우주(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넓고 깊으면 **작은 우주**라고 표현했을까?) 라고 불리는 70억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자.

오랜만에 간 클럽

지 지난주 결혼 후 처음으로 혼자서 클럽에 갔다. (아내가 허락해주었다!) 흑인 친구들 5명이 아프리카 소울 넘치는 음악을 연주하는 클럽이었다. 북경 난뤄구샹(南锣鼓巷)의 허름한 뒷골목에 미로 같은 길을 찾아가 보니, 여기가 입구가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허름한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문으로 들어가 2층 계단을 올라 또 다른 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감성 넘치는 허름하고 작은 클럽이 있었다. 오랜만에 뮤지션들 코앞에 서서 아프리카 소울 넘치는 음악을 들으며 즐기다 왔다.

어제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죄의 무서운 결과 중 하나가, “기쁨"을 “고통"으로 바꿔버린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청난 기쁨이 고통이 되어버렸고, 일하며 누릴 수 있는 거룩함과 존귀함과 기쁨이 고통이 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쁨과 풍성함이 되어야 할 사람과의 교제가 스트레스, 화의 원천이 되어 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수많은 기쁨이 “금욕” 또는 “중독"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어제 교회 모임에서 클럽에 갔다 왔다고 하니, 다들 의아해한다. 아니 그런 델 왜??? 우리 교회멤버들에겐, 좀 불경스러운(?)데 아닌가?

이 좋은 음악이 왜 금욕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렸을까?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는 주님이 오시는 날 완성된다고 했다.
우리 안에, 겨자씨만 한 작은 모습으로 이미 시작된 천국. 천국은 그 작은 씨앗이 자라서 공중의 온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되는 거라고 했다. 내 안의 작은 천국이 큰 나무처럼 점점 커져서 많은 사람이 깃들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 나의 삶의 영역에 천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게 시작이 아닐까? 죄의 결과로 고통으로 변해버린 그 영역을 다시 기쁨의 영역으로 변화시켜, 그것을 온전히 즐기고 누릴 수 있다면, 이 땅의 천국은 점점 커져가지 않을까?

출근길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사무실까지 가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처음에는 출근길이 너무 피곤했지만, 어느새 그 시간도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의 시간순삭 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울 때가 꽤 많다.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1 정도 들기도 하지만, 그냥 그렇게 보내는 게 나쁘지 않다.

때로는 내 머릿속 생각들을 혼자 소리내어 중얼중얼 거려본다. 옛날에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걸어가면 약간 미친 사람 같이 보였을 텐데, 귀에 이어폰 하나만 꽂고 있으면, 별로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출근길에 만나는 모든 사람은 중국사람이다. 중얼거리는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그냥 누구랑 통화하나 보다 생각하겠지 ㅋㅋ

내가 제일 자신 없어 하는게,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다. 난 준비 안 된 말은 못한다. 그것도 준비를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한다. 거의 외울 듯이. 그런 나의 약점을 알기에, 종종 일부러 나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기도 한다. 작년에는 12주에 걸쳐 매주 “책 읽어드립니다” 강연을 했었고, 교회에서도 아주 가끔 강의/간증/소개 비슷한 뭔가를 해야 할 상황이 되면, 피하지 않고 해본다. 출근길은 그런 것의 좋은 연습 장소다. 몇 번이고 해야 할 말을 반복해보면 입에 그것이 베이게 되고, 가장 자신 없어 하는 그 자리에서 나름 평온(?)하게 그 시간을 넘길 수 있게 된다.

앞으로 한 달 뒤쯤, 또 자신 없는 그걸 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반사적으로 드는 생각은, 대신해 줄 사람을 찾는 거였다.
“그래! OOO에게 해 달라고 부탁해보자!”
아내가 옆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냥 해~~ 뭘 얼마나 잘하려고! ㅋㅋ”
그 말을 듣고 그냥 하기로 했다.
순식간에 내 내면에서 일어난 생각을 까발려보면, 먼저 나 자신에게 “이 일은 내가 할 일인가?" 라고 질문을 했고, 그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것은 내 일이다!" 였다.

중요한 것은 ‘내 일인가? 아닌가?’이지, ‘잘하나? 못하나?‘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야 하고, 내 능력이 아무리 볼품없어도 그것이 내 일이라면 내가 해야 한다.
하자!

요즘엔 어딜 가든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그것도 꽤 좋은 안전장치다. 이 마스크 안에서 무얼 중얼거리든 알게 뭐야 ㅋㅋ 알아듣는 사람도 없는데.

그러다가 뭔지 모를 뭔가가 뭉클 올라와 눈가가 적셔지기도 하고, 유튜브 노래 영상 보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도 하고, 멍 때리며 걷기도 한다.

출퇴근 길은, 나름 빡세게 돌아가는 일과 속에서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세상의 변화

“세상의 변화"라고 하면, 옛날엔 이런 이미지를 떠올렸다.
능력이 아주 뛰어난 몇몇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사람들은 거기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

근데, 역사의 숱한 이야기를 보면, 이런 게 세상을 바꾸지 않더라. 이게 방법이었으면, 예수님도 그런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겠지. 예수님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리 촌구석에 오셔서, 평생을 하층민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살았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대부분의 사역은 갈릴리 동네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며, 세상을 변화를 다시 한 번 얘기해 본다면, “이 세상의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이 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이 작은 세상 속에서, 나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함께 바껴가는 것. 그게 세상이 변화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나의 세상은 바로 나의 사무실이고, 매일 8시간을 붙어 일하는 동료들이다. 이들이 정말 자신의 삶을 살고, 그 삶이 변해가면 좋겠다.

그렇게 세상이 바껴가면 좋겠다.

익스트림 라이프 Extreme Life

아슬아슬함, 조마조마함.
최근 나의 삶을 표현하는 단어다.
바보같이, 멀쩡한 비자를 실수로 날려버리고, (작년 7월, 중국 회사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내 손으로 내 비자를 취소해버렸다 ㅡ,.ㅡ;;) 그걸 다시 되돌려 놓는데 반년 가까이나 걸렸다. 매달 출입국관리소를 찾아가 불법체류자 신세를 간신히 넘기고 나면, 지안이 학교 문제, 회사 문제,,, 정말 중국에 살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여러 일이 많았었지만, 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하게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늘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곳은, 우리 가족이 있는 집뿐이다.

근데, 참 신기한 게, 이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상태가 익숙해졌다.
이 불안함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긴장감 넘치는 이 생활이 나름 재밌다.
긴장감 넘치고 불편한 이 상황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 같다.

작년 초 익스트림 프로그래밍Extreme Programming 책을 다시 읽으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이건 그냥 프로그래밍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지침서였다. 책 내용을 내 삶으로 가져와, 이렇게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었다.
위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 익스트림 라이프다.

앞으로도 익스트림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