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삶
이제야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잖아.
하이데어를 정리하며
하이데어는 2016년부터 대학교 선배와 얘기해 오던 서비스다. 북경에서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낼 때, 어차피 이렇게 살 거면 하고 싶은 거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에게 전화했다.
“이제 그만 얘기하고, 시작하자.”
다른 건 다 해도 창업은 못 할거라 생각했는데, 그때 난 더 잃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내 회사를 시작했다. 밤마다, 주말마다 몸을 갈아 넣어서 만들었다.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 제대로 팀을 꾸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삶까지 걸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세상. 학교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는 세상.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실험을 했고 하이데어는 세 번째 실험이었다.
그렇게 모든 걸 걸었는데, 올해 초 내 마음에 다른게 꿈틀거렸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친구들과 이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보자.’
나를 따르는 동료가 생겼다. 중졸, 고졸 친구들이다. 이들을 데리고 비즈니스 판에 뛰어들어볼 테다. 네 번째 실험이다.
내가 하이데어를 정리할 수 있을까? 하이데어는 나 그 자체인데. 오랫동안 끙끙거리며 이 문제를 놓고 기도원에 갔다 올까도 생각했었다. 두 달 전, 주일 예배 끝나고 1분 정도 짧게 기도하는 시간에 마음을 정리했다.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게 설마 돈 때문인가? 하이데어가 잘 돼서 엑시트(exit)를 하게 되면 내 지분만큼 큰 몫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그것에 대한 미련인가? 문제가 명확하면 해결책도 단순하다. 나를 움직이게 만든 하이데어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정리하자. 애매한 선택지를 하나님께 결정해 달라고 떠넘기기보다,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맞는 선택을 하는 건 내 몫이다. 기도는 그 결단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도움을 구하는 것. 그렇게 하이데어를 정리했다.
이랜드를 정리하며
작년 여름에 회사 돈이 바닥났다.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처음 해보는 영업 미팅, 화기애애한 분위기지만 살벌함이 느껴진다. 조급한 사람은 나다. 적당히 웃으며 얘기하다 인사하고 헤어지면 끝장이다. 어떻게든 다음 일감을 만들어내야 한다. 상대방으로부터 그 말을 끌어내기 위해 조심히 다음 말을 이어간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미팅하고 나왔는데,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힘겹게 계약을 따내고 선금이 들어오면 그걸로 직원들 월급을 내보냈다. 이렇게 따낸 일이 겨우 두 달짜리. 한달 한달을 이렇게 보냈다. 힘들었다. 내 상황을 아는 이전 회사 선배가 나를 불러줬고 그렇게 투잡 생활이 시작됐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달콤했다. 돈의 위력이란, 나를 아무것도 안 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렇게 정착해 버릴까 봐 두려웠다. 오아시스에서 쉬는 건 일 년으로 끝내자. 이 회사엔 올해까지만 출근하기로 했다.
“지금 시점에 퇴사를? 너 제정신이야?”
지금 바깥이 얼마나 차갑고 살벌한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안다. 그게 이유라면, 역시 해결책은 단순하다. 누구나 안정을 바라지만 그건 신기루 같은 거다. 잡히지 않는 안정을 잡으려고 허우적대지 말자.
진짜 살벌함
회사 이름을 ‘코드스텝’으로 지었다. 코드를 짜며(실행하며) 한발 한발 나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Taking small steps to solve big problems.‘이라는 모토로 야심 차게 시작했다. 근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얼어붙은 경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업계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몇십 억대 프로젝트는 몇천만 원 수준으로 축소되고 몇천만 원짜리는 몇백 수준이다. 몇 안 되는 프로젝트에 많은 기업이 들러붙는다. 그 일이 나에게까지 올 리가 없지.
지지난주는 많이 지치더라. 될 듯 말 듯. 제대로 집중해 보려고 다른 것들을 다 정리했는데, 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찝찝하고 지저분하고 애매한 상태가 계속된다. 공들여 만들어가던 일이 다 어그러진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drop 되고 계약은 취소되고. 내 월급에 직원들 월급까지 주려면 매달 2천만 원씩은 벌어야 하는데, 그 돈을 어디서 벌지? 프로젝트가 취소돼 버려서 11월부터는 할 일이 없다. 깜깜하고 막막하다.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었다면 그 기세를 몰아 나를 갈아 넣었겠지. 쌓아놓은 게 없으니 더 열심히 하려고 했겠지. 그렇게 내 힘으로 ‘내 회사’를 키우고 싶었겠지.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사람도 삐까뻔쩍한 왕국을 세우고 무너졌다. 정말 나를 위한 건 그럴싸한 회사가 아니다. 매순간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나를 위한 것이다.
절박하고 막막하고 불안한 상황을 견디자. 이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자. 주변을 둘러보고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즐기자.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 나가자. 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조급한 마음에, 불안한 마음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게 안 될 뿐이다. 기도는 잠잠히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거. 온갖 잡생각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거. 그래서 저 깊이 숨어 있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 하나님을 닮은 내 모습을 키워가는 거.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그 보석을 나의 중심으로 가져와서 키워가는 거. 그렇게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거다.
그렇게 다시 해보자!
다시 맑은 정신으로
2년 전, 북경을 떠나며 고등부 마지막 수련회 때 목사님께 나에게 한 시간만 달라고 했다.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의 다짐을 얘기했다. ‘유목민으로 살아가기’라는 제목으로 꿈을 얘기했다.
“우리 불안하게 살자. 그 불안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거야.”
사람들이 기도 제목을 물을 때마다 불안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안정감을 느끼며 사는 거라고 말했다. 나를 소개하는 문구에도 ‘도시 안에서 유목민으로 살기를 꿈꾼다’라고 썼다. 생각해 보니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이었다. 기도의 응답이고 꿈을 이룬 거다.
엊그제 청소년부 얘기를 하던 중에 혜진샘이 “내년에 많이 바쁠 예정이죠?“라고 물었다. 당연히 내년에 많이 바쁠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일년만에 끝장낼 것도 아니고 평생 이렇게 살 건데. 이게 내 삶이어야지. 일상이어야지. 아등바등한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 쓸데없이 바쁘지 말자.
“필요한 역할이 있으면 할게요. 능숙하게 척척 해낼 자신은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죠?”
사람들이 나에게 도전적이라고 한다. 이 나이에도 하고 싶은 걸 하냐고 의아해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도전이 아니다. 유별난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불안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정체성을 잃고 정착해 버릴까 봐 두려울 뿐이다. 그냥 유목민으로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