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이야기, 서로의 세상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해 뜨는 사진을 보내왔다.
그것을 본 나의 첫 생각. “어쩌라고” ㅋ
그 일출 사진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 사진을 보낸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는 해가 떠오르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을 테고, 그 마음을 함께 나누길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까지 사진에 담아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사진작가는 그걸 하는 사람인 것 같다.
피사체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봤던 그 순간의 느낌, 감정, 생각, 즉 그만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서 전달하는 것일 테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을 듣지 않는다. 이야기를 말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은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한 소재일 뿐이다. 그냥, 대화를 열어주는 문이다.
같은 것을 봐도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같은 시대에 같은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보는 세상은 다 제각각이다. 모두 각자의 주관적인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는 것. 그로 인해 나의 이야기가 바뀐다는 것. 그건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세상이므로.
다른 사람이 가져오는 그 세상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세상과 너무 다르다. 때론, 그 세상이 나에게 오는 게 불편하다. 그 세상 속으로 선뜻 들어가지지 않는다. 그건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매번 선거철을 보낼 때마다 이런 모습을 선명히 보게 된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기대와 확신이 강한 만큼 다른 사람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나의 주장을 펴 보지만 상대방은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겐 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상대의 이야기는 나에게 어색하다. 이미 내 머릿속에 형성되어 있던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 어차피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이미 형성되어있던 이야기가 중요한 거니까. 아무리 다른 이야기(세상)를 들려주어도, 나에게 익숙한 이야기(세상) 속에서 벗어나 다른 이야기(세상)를 듣기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아니, 다른 사람의 세상 속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두 세상이 만들어내는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날 때. 내 이야기가 바뀐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다.
한때, 중독된 듯 여행에 빠져서 여기저기 다 가보고 싶어 하다가, 어느 여행지를 떠나면서 불쑥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ㅡ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그땐 왜 그런 마음이 들었었는지 몰랐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의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여행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여행의 그 경험을 일상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이 세상은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거의 모든 곳에 갈 수 있는 시대다. 직접 가지 않더라도, 원하는 곳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무한한 곳이다. 70억이 넘는 독자적인 세상이 있으므로.
서로의 이야기, 서로의 세상
아ㅡ 이 세상은 얼마나 넓은 곳일까?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때, 이 세상은 얼마나 풍성한 곳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