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009

저자 정보

니코스 카잔차키스. 1883년 크레타에서 태어났다. 내가 1982년생이니 나와 99살 차이다.

당시 크레타는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다. 카잔차키스는 기독교인 박해와 독립전쟁을 겪으며, 그리고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며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켰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여행은 그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유와 여행, 뭔가 어울린다.

베르그송과 니체 그리고 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1917년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를 만난다. 그가 추구해왔던 사상을 그대로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야생인 같은 느낌이었을까? 그는 조르바와 탄광 사업을 했고 그때를 회고하며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다.

1947년부터 아홉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톨스토이, 도스토엡스키에 비견될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내용 요약

어느 항구 도시에서 항해를 떠나는 친구로부터 <책벌레>라고 놀림(?) 받던 한 남자는 새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는 그곳에서 조르바를 만나고 그 둘은 크레타 섬으로 가서 탄광 사업을 시작한다. 조르바는 그 남자를 ‘두목’이라 부르는데, 두목과 조르바가 함께 지내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크레타 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얽힌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조르바와 두목의 대화, 행동, 생각에 포커스가 가 있다. 스토리 보다 조르바라는 인물을, 그 인물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소감

‘조르바는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 주어진 세상을 충분히 누리며 사는 사람. 눈에 보이는 세상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든.
지독하게 현실을 사는 사람. 그래서 과거에 얽메이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눈 앞의 것에 집중한다(도자기 만드는데 거슬린다고 새끼 손가락을 잘라버리다니. ㅎㄷㄷ). 그래서 오늘의 실패도 받아들이고 그 조차도 즐길 수 있다.
자유로운 사람. 사람이 정한 경계(문화, 국가, 종교,,,)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사람.

그렇다고 그는 옳은 사람일까? 따라야 할 롤모델인가?
그가 추구하는 것은 멋있어 보이고 매력적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하지만 조르바와 같은 모습이고 싶지는 않다. 가장 자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상하다. 그를 닮고 싶지만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를 닮아서 나로 살고 싶게 만든다.

조르바는 종종 두목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이 읽은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습디까?”
정말 궁금해서 물었을까? 이런 것은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걸까? 책 속에 파묻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걸까?

‘삼다(三多)‘에서 지난 책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다채롭게 살고 싶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유쾌하게. 열심히 책을 보되 책 속으로 도망가지 않기. 책이 아닌 현실에서 살기. 책이 들려준 이야기를 현실에서 실험/증명해보기. 현실을 놓치지 않는 방법: 이웃.’
두목은 조르바를 통해 책 속에 파묻히지 않는 방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잖아요. 생각을 실행하는 것.” (103)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한테 꽂혔던 문장이다. (다음번에 읽을땐 또 어떤 문장에 꽂힐지..)
‘책에서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우리네 가슴이 뛰는 까닭은 이전에 몰랐던 사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내 안에 지니고 있거나 적어도 내 영혼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기에 흥분하는 것이다’
—「읽기의 말들」 57page

지금의 나와 연결지어졌기에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겠지. 작년 12월,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난 왜 갑자기 한국행을 결정했을까? 때론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그 당시엔 진짜 이유를 모른다. 그냥 그때의 ‘구실’일 뿐이다.
‘생각을 실행하는 것’ - 이게 진짜 이유에 좀 더 가까운 말인 것 같다.
생각한 것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맞아! 그걸 하려고 온거지!”
나도 조르바처럼 춤을 추고 싶었다.
두목과 조르바는, 그래서 마지막에 케이블/도르래가 무너졌을때도 춤을 출 수 있었을까?

조르바는 자주 춤을 춘다. 춤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나중에, 상태가 좀 좋을 때 춤으로 보여 드리지요’ — 139page)
우연히 만난 러시아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아 하루종일 춤으로 대화를 했단다. (⇒ 이런건 어떻게 하는 거지?)
때론 구체적인 묘사보다,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더 정확할때가 있다. ‘내가 봤던 것을 너에게도 보여줄께’가 아니라 ‘내가 느꼈던 것을 너도 느끼게 해줄께’ 이런 의사소통.
그래서 춤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걸까?

춤이란 것은 묘하다. 행복함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 춤을 즐기기가 부담스럽다. 나는 그게 어렵다. 남을 의식해서 그런걸까? 춤을 추려고 엉거주춤 하는 모습이 너무 이상하다. 그렇다고 배워서 추는 춤은 춤 같지가 않다. 흉내내는 것 같다. 덜 자유해서 그런건가?

아ㅡ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세네갈 St. Louis 마을을 여행할때. 그 동네 친구들은 모두 프랑스어밖에 못했다. 나랑 말이 통할리가 없다. 나한테 젬베를 가르쳐준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날 밤 그 친구가 공연하는 클럽에 가서 밤새도록 춤추며 놀았다. 함께 춤추며 그 시골마을 친구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젬베 선생 친구랑은 완전히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13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안부를 묻는다. (구글 번역기 도움으로 ㅎㅎ) 이거 쓰다가 생각난 춤 친구다.

조르바의 계획이 완전히 박살났을때, 그 둘은 양고기와 빵과 술을 먹으며 춤을 춘다.
두목이 조르바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
두목은 매번 함께 춤추기를 거부했다. 그의 자유로움을 보고만 있었다. 이 장면에서는 동경하던 조르바와 같이 춤을 춘다. 자신도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둘은 함께 춤을 추며 더 깊은 대화를 했을 것 같다. 춤으로.

조르바가 21세기를 살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조르바의 조롱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야생은 어디를 향해 있었을까?
이 책이 쓰여진지 한세기가 지났고, 그때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세상은 변했는데, 지금은 이 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가 조르바를 만났었더라면 그와 함께 했을까? 미치광이 같은 그에게 빠져들었을까? 탄광 사업이 완전히 박살났을때 그와 같이 춤을 추었을까?

대답하지 못할 여러 질문을 남긴다.
아무래도 이 책은 여러번 만나게 될 것 같다.

반짝이는 구절

  •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22)

  • 매일 밤 조르바는 나를 그리스, 불가리아, 콘스탄티노플 구석구석으로 데려다준다. 나는 눈을 감고 본다 (77)

  •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77)

  •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을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92)

  • 그자들은 그 비참한 상태가 편한 거에요. 그대로 놔두고 아무 소리 하지 말아요. (93)

  •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잖아요. 생각을 실행하는 것.”
    …(중략)…
    “갈탄은, 남의 일 꼬치꼬치 캐묻기 좋아하는 촌놈들에게 들려줄 핑계지요. 이런 핑계가 있어야 촌놈들은 우리를 근사한 청부업자쯤으로 보고 인사랍시고 토마토를 던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게 아닌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조르바?”
    조르바는 넋이 나가 버린 사람 같았다. 그는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런 엄청난 행복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확신이 든 모양이다. 내게로 확 다가들어 어깨를 붙잡았다.
    “춤추시겠소? 춤춥시다!” (103)

  • 나는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한동안 — 아니면 영원히? — 집어치우고 행동하는 삶 속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했다네. (132)

  •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쩌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릴까요? 언제면 눈을 떠서 볼 수 있을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만물 — 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 — 을 안을 수 있을까요? 두목,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이 읽은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습디까? (138)

  •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149)
    (책을 선택하는게 타락이다…?)

  • 나는 일에 몸을 빼앗기면,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 잔뜩 긴장하여 이게 돌이 되고 석탄이 되고 산투르가 되어 버린단 말입니다. 두목이 갑자기 내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돌아봐야죠? 그럼 꼭 부러져 버릴 것 같다는 말입니다. (162)

  •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보고 있으려니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쩌면 저렇게 쾌활하고도 단순하게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 그의 몸과 영혼은 얼마나 조화로운 하나를 이루고 있는지! 또 여자와 빵과 물과 고기와 잠 등 모든 것은 그의 몸과 너무도 행복하게 결합하여 저 조르바를 이루고 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194)

  •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199)

  • 이 원시인은 삶의 껍질 — 논리와 도덕과 정직성 — 을 간단히 깨고 삶의 본질 속으로 곧장 들어가 버렸다. (222)

  • 나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내가 찾던 광맥은 바로 이것이구나! 더 무엇이 필요하랴… (261)

  • 조르바! 이리 와보세요! 춤 좀 가르쳐 주세요! (414)

  • 자, 젊은 양반, 당신이 춤도 출 줄 알고 내 언어를 배웠으니, 이제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415)

  • 외적으로는 참패했을지라도 내적으로는 승리자일 때 우리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낀다.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