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오랜만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셋이 식사를 했다. 결혼한 이후로는 늘 아내와 동행했고 자녀가 생기고 나서는 항상 손녀에게 관심이 먼저 갔다. 이렇게 엄마 아빠랑 식사한 게 몇 년 만인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하이데어 이야기가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창업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용케도 버티고 있다. 돈은 이미 바닥이 났지만 겨우 월급 날짜에 맞추어 돈벌이가 생긴다. 딱 한두 달 치 일이 생겼다가 돈이 바닥나고, 또 다음 월급날이 다가오기 며칠 전에 작은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계약금이 들어온다. 그러면 또 한 달 겨우 버티는 거다. 나는 그걸 ‘만나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부모님은 내 이야기를 이어받아, 개척 교회를 하시며 아슬아슬하게 목회를 해 오셨던 과거 이야기를 꺼내신다. 부모님의 과거 이야기와 지금의 내 이야기에 묘한 교차점이 생겨난다.

그러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성공한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처음에는 다 힘들었다고 하더라. 고생없이 어떻게 성공을 하겠노?”
나의 대답이다.
“하이데어는 이미 성공한 서비스예요. 지금도 하이데어를 통해 자기 삶을 찾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하이데어를 시작한 이유였고, 이미 그런 가치를 주고 있어요. 내가 계속 하이데어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이 그 가치를 경험하게 하고 싶어서예요.”

성공이란 말이 어색하다. 그러고 보니 난 ‘성공’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 들어봤어?”
없었단다. 그리고 이어서 얘기한다.

“여보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사람도 없을 거야.”

인정한다. 나라고 삶이 고단하고 비루하지 않을 리 없겠지만, 이미 이룬 성공은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다.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이미 이룬 성공을 넓혀가는 삶이다. 성공이 목표였던 적이 없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2007년에 동유럽 여행을 갔었다. 비엔나에서 ‘비엔나로즈’라는 민박집에 이틀간 묶었었는데, 그때 주인분과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분으로부터 온 메일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재휴는 주변 사람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 난 그런 삶은 이미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
그 메일을 보고 생각했다.

‘난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이미 성공했는데 그걸 목표로 삼을 이유가 없다. 그 후로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없어졌다. 더 이상 성공이 목표가 아니었다.

“우리 꼭 성공하자” 이런 말을 종종 한다. 도대체 뭘 하자는 말일까? 돈을 많이 벌자는 말인가? 여유로운 삶을 살자는 건가? 행복하게 살자는 건가? 다 좋다. 어색한 건 저 말이 풍기는 뉘앙스다. 비장해 보인다. 너무 멀리 있는 지점을 바라보는 것 같다. 희망 고문 같다. 오늘 힘듦을 입 닥치고 참아내야 하는 것 같다.

무엇을 성공이라고 하는 걸까?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나온다.

성공(成功): 「명사」 목적하는 바를 이룸

목적하는바. 그것이 내 안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너무 멀리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밤하늘의 별처럼 각자의 성공이 빛나고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