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모습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버지는 앞서 걷는 사람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엄마 손을 잡고 옆으로 늘어져서 걸었고 아버지는 서너 발 앞에 있었다. 걸음걸이도 빨랐다. 작년 10월 아버지는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이제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신다. 세월이 많이 지났구나.
아버지는 경주 관광공사에서 노조 지부장을 하셨다. 앞장서서 운동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지금 시대에 노동 운동을 한다는 건 목숨을 바치는 거구나. 어차피 목숨을 바칠 거라면 하나님께 바치자.’
바로 사표를 쓰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나중에야 알았다. 세 아이의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간다는 게 흔치 않다는 것을. 이제 막 신학교에 들어간 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그 상황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한다는 것도. 아버지의 목회 시작은 말 그대로 야성이었다. 삼십 대 중반, 대부분 사람은 어릴 적 꿈을 추억으로 묻어두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갈 때 아버지의 꿈은 이때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교회를 개척하셨다. 부모는 공장에 나가고 공사판에 널브러진 폐기물 더미 속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모아 선교원을 시작했다. 교회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놀이방이 되었고 노동자들이 모여 숨 쉬는 곳이 되었다. 3~4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대전으로 이사했다.
언젠가 아버지께 물었다. 그때 왜 대전으로 갔느냐고. 힘들게 개척한 교회에서 쭉 목회하는 게 쉽지 않냐고. 아버지는 보통 개척하고 나면 ‘내 교회’라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래서 떠난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대전에 자리 잡은 지 일 년도 채 안 되어 경남 하동으로 갔다. 언젠가 또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때 왜 하동으로 갔느냐고. 아버지는 교회에 목회자가 없어서 간다고 하셨다. 내가 다녔던 시골 학교는 전교생이 100명 정도였는데 개학하고 학교에 가니 몇 명 빼고 전부 여름성경학교 티셔츠를 입고 왔다. 40대 초반의 아버지는 가장 열정 넘치게 목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다음 주 이사 간다.”
난 친구들과 이제 가까워져서 우정을 쌓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은 경주로 이사했다.
또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목회하기 어려운 교회여서 간다고 하셨다. 아버지에게 가장 전투적인 목회지가 아니었나 싶다. 동네 유지의 자리를 교회에서도 유지하려고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로들과 싸워가며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기적같이 서울의 한 교회와 연결이 되어 부족한 건축비가 채워졌다. 완공 날짜를 맞추기 위해 전 교인이 공사에 참여해 벽돌과 시멘트를 날랐다. 중학생이었던 나도 함께했다. 아버지는 교회를 건축하면서 하나님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장을 기증하셨다. 연고도 없이 아버지의 신장을 기증받은 분의 남편은 감사의 마음으로 자기 신장을 내어놓았다. 그렇게 장기기증 릴레이가 이어져 7명의 몸이 고쳐졌다. ‘사랑의 장기기증 릴레이’라는 제목으로 TV에도 나오고 대통령의 화환도 받았다. 그렇게 몸을 바친 교회를 떠나 경북 성주로 갔다.
아버지는 성주에 있는 교회에서 뜻밖의 은퇴를 당하셨다. 아버지는 주차빌딩에서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했다. 30년이 넘게 목사, 사모로 살아온 두 분은 자리에 개의치 않고 삶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안동에서 선물처럼 다시 목회 자리가 주어졌다. 그곳에서 마지막 목회를 하고 2022년 4월에 은퇴하셨다. 목회 자리에서 내려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30대 중반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가지 않는 시골 변두리 마을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마지막 모습도 여전히 그러했다.
우리는 ‘한결같은’, ‘변함없는’ 같은 말보다 ‘성장’, ‘발전’이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지고 커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건 한 쪽 부분을 떼 다른 쪽에 갖다 붙이는 제로섬의 싸움은 아닐까? 이런 시대에 처음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오신 아버지의 한결같은 삶이 자랑스럽다.
이제 은퇴하시고 영천 시골마을에서 지내시는 아버지를 보며,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은퇴하자. 더 가지지도 말고 더 높아지지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살다가 물러나자.
어릴때 늘 앞서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 뒷모습을 따라가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내 삶도 값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