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번째 생일

아침부터 카톡에 반가운 이름이 뜬다. 어느새 대학교 졸업을 앞둔, 북경에서 함께 고등부 생활을 했던 친구다. 이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생일 축하 메세지가 전달된다. 당연히 카톡이 알려줘서였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보고 연락을 주는 이들이 고맙다. 생일을 핑계로 오랜만에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언제나 나의 글을 기대하는 은근한 팬’이라는 혜진쌤의 문자에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블로그를 보니 마지막 글이 지난 여름이다. 한동안 글이 멈췄다. 사유도 멈췄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짤막한 글의 농도가 1이라면 블로그는 10이다. 10배의 에너지가 든다는 말. 한 글자 한 글자 뽑아내는 수고가 사유를 가동하고 내면을 캐낸다. 여행이다. 배낭을 메고 세상을 떠돌아다녔던 20대 때, 평생 여행자로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찾은 게 내면의 여행이었다. 나 한 사람의 내면이 이 세상 전체만큼이나 거대하니까. 글쓰기를 멈추었다는 건 사유의 중단이고 여행의 그침이다.

오늘 《연금술사》를 꺼내 앞 몇 장을 읽다가 다시 마음이 꿈틀거렸다. 옆에 있던 지안이에게 말했다.
“지안아, 이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더 이상 못 읽겠어.”
언제나처럼 지안이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너무 좋아서 책장을 덮었다. 읽기를 멈추고 여행자 장재휴를 떠올렸다.
다시 가동하자.

오늘 또 한 살을 먹었다. 한 살씩 먹어가며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의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더라. 그 시절의 나는 그대로 거기 있다. 거기에 새로운 내가 얹히는 거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는 쌓여간다. 난 이미 40대가 되었지만 17살, 20살, 26살, 30살의 장재휴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어릴 때의 내가 여전히 살아서 지금의 나와 함께 살아간다.

어릴 때의 나는 예전의 노래, 만화책, 영화, 추억을 떠올려 주며 나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때의 다짐을 상기시키면서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다음에,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라는 말머리를 붙여서 했던 말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더는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선생 역할을 한다. 어린 친구들에게 꼰대 같은 말이 하고 싶어질 때면, 그 얘기를 고등학생 장재휴에게 먼저 해본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ㅡ 그냥 입을 다문다. 이럴 때 어린 시절의 나는 상담자다.

UN에서 새로운 나이 기준을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난 아직 청년이다. 지안이에게 이 얘길 하니까
“아빠, 이런 얘길 한다는 것 자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거야.”
역시나 시큰둥하다.

이 표가 공감이 되는 게, 이제야 내가 중년처럼 느껴진다. 서른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을 때 별 감흥이 없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가사가 와닿는다. 그 시절보다 10년 정도 늦춰진 건가? 어쨌든 UN이 선을 그어줬다. 아직 청년이라고. 이제 중년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는데, 한해 더 청년으로 살아도 된다고 한다. 청년으로 사는 마지막 일 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세상에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겸손. 그것에 도전할 수 있는 대범함.
2026년을 시작하며 이렇다 할 목표를 찾지 못했는데, 얼마 전 《정통》을 읽으며 이 문장을 발견했다. 이런 중년을 준비하자. 세상에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겸손그것에 도전할 수 있는 대범함. 역설이다. 세상의 경이로움 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주눅들어선 안된다. 기준 없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세상에 도전장을 내미는 대범함이 있어야겠지만 그렇다고 기고만장해선 안 된다. 양 끝단을 넘나들며 나만의 오솔길을 만들어보자. 그 무대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다. 매일 마주하는 한 사람의 삶이 이 세상 전체만큼이나 크다는 생각으로 겸손하게 대하면서도,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대범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아내가 “어떤 생일이었어?“라고 묻는다. 일상의 순간을 찐하게 만끽한 하루라고 대답했다. 아침에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생일상을 함께 먹고 사랑하는 두 여인과 롯데리아, 아트박스, 투썸플레이스, 이렇게 장소를 옮겨가며 소소한 사치를 누렸다. 요즘 유행한다는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도 맛보고 부모님 모시고 장어를 구웠다. 모두가 잠든 밤, 혼자 조용히 글을 끄적인다.

내 삶에, 마흔다섯 살을 먹은 또 한 명의 장재휴가 보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