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안에서의 삶
지난 수요일에 에버랜드에 갔었다. 사파리 버스를 타고 호랑이, 사자, 곰들을 봤다. 그 가엾은 동물들은 버스 창 바로 앞에까지 와 개인기를 부리며 꼬맹이들의 입에서 환호성을 불러내 주었다.
사자 암수 한 쌍씩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암수가 같이 있는 게 사이가 좋아 보인다. 6~7쌍 정도 있어 보였는데, 모두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 평화로움이 슬펐다.
원래 사자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보통 수사자 하나에 암사자 여러 마리와 새끼들이 한 무리를 이룬다. 사냥은 암사자의 몫이고 수사자는 그냥 어슬렁거릴 뿐이다. 그럼 수사자의 역할은 뭔가? 놈팽이처럼 어슬렁거리다가 번식을 위해 정자만 제공해주면 되는 건가? 아니다. 수사자의 역할은, 다른 수사자로부터 무리를 지키는 것이다. 수사자는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목숨 건 사투를 벌이며 무리를 지켜내야 한다. 패배자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무리를 떠나야 한다. 그가 살아남는 방법은 또 다른 무리를 찾아 거기의 수사자 자리를 다시 빼앗는 것뿐이다. 한 무리 안에 두 마리의 수사자는 있을 수 없다. 한 공간에는 한 마리의 수사자만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밀림의 왕이라 하는 것이다.
에버랜드에서 본 호랑이, 사자, 곰. 이들의 삶이 이래선 안 된다. 자신의 세상에서 왕의 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호령하며 사는 게 이들의 삶일 텐데, 지금 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으며 사람들의 눈에 보기 좋은 배우 역할을 하고 있다. 침략자로부터 무리를 지켜내야 하는 스트레스도 필요 없다. 힘들게 사냥을 할 필요도 없다. 사육사들이 그들의 컨디션에 맞는 좋은 고기를 던져주고 필요한 운동을 시켜준다. 이토록 편안한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어제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쳤다. 전국 50여만 명의 고3 학생들이 일시에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는다. 그 능력은 이제 숫자로 부여된다. 그러면 그 점수에 대응되는 등급의 대학교에 진학을 하겠지. 이 점수가 대학으로, 직장으로, 삶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또 편안한 삶을 보장하길 바란다. 이제 좋은 배우 역할을 해 주기만 하면 좋은 고기를 먹으며 적당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토록 편안한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이토록 갑갑한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사자들에게 필요한 건 안락한 울타리나 잘 손질된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밀림이다. 그곳엔 배고픔과 위험이 있겠지만 거기서 맘껏 달릴 때 진짜 사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동물원이 아니길 바란다.
동물원은 점잖은 표현이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 세상을 감옥에 비유한다.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삶이 정녕 이러하단 말인가?
동물원이든 감옥이든 그 안락함에 젖어드는 것이 두렵다. 거기에 적응해 버릴까 봐 무섭다. 좀 부족하게 살자. 불안함도 견뎌보자. 차라리 불편하자. 어쩌면 그 불편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지도 모르니까.
“과연 우리는 자연에서 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디즈니랜드에서 살고 싶은 걸까?”
_ 티모시 C. 와인가드, 『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