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쫄깃한 불안함, 반가운 친구

# 버스킹을 하루 앞두고

오후에 소연샘한테 일대일 레슨을 받으러 갔다. 불안했나 보다.

새로운 것을 앞두고 드는 불안한 마음.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가슴이 쫄깃해 온다. 그래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이 감정과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이 녀석, 또 찾아왔네. 오히려 반갑다.

난 무슨 마음으로 버스킹을 한다고 했을까? 찬양 인도자 최세현 목사님도 오신다고 하고, 드러머 국지원 전도사님도 오신다고 하고. 음악으로 난다긴다하는 사람도 많이 지나갈 텐데. 난 무슨 생각으로 한다고 했을까?

자만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아직도 나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모르겠다.
왜 그래? 그냥 좋아서 시작한 거잖아.

젬베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자. 인도를 여행하다 젬베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를 찾아갔다. 그 소리의 정수를 보러 아프리카까지 갔다. 하나의 초점이 다른 모든 것을 잠재웠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작은 마음에 집중했을 때 가장 나다울 수 있었다. 다시 작은 마음에 초점을 맞추자.

오늘 뭐가 불안했을까? 국지원 전도사님이 중심 리듬을 잡아주는 드럼 느낌의 주법을 알려주셨다.
‘맞아! 이렇게 했어야지.’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근데 어색했다. 이미 팀 안에서 여러 번 연습하고 맞췄는데,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하려니 어색했다.
‘내일 잘할 수 있을까?’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이 나를 불안하게 했구나. 뽐내고 싶은 마음까진 아니더라도, 거기에 오가는 사람에게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움? 잘하고 싶은 마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다.

혼자서만 좋아하던 젬베를 들고 광장에 나간다.
정신 차리자. 나를 드러내러 가는 게 아니잖아. 우리의 역할은 예배의 자리를 만드는 거겠다. 멋들어지게 연주하러 가는 게 아니라, 그 광장에 예배하는 자리를 준비하는 거다. 함께 모인 사람이 하나 되어 찬양하는 소리에 내 소리가 묻혔으면 좋겠다. 차라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찬양하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면 좋겠다. 우리의 연주가 아니라, 함께 했던 예배만 기억되면 좋겠다.

이번 주 내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아이가 떠올랐다. 오천 명을 먹여야 하는 상황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은 바보 같은 아이. 그 아이의 행동은 뭐였을까? 그 아이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준 게 아니다. 오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자리를 시작한 거였다. 그냥 거기까지. 그 아이는 자기가 내어놓은 음식으로 오천 명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에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그건 아니지. 그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을 거다. 그저 내어놓은 거였다.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다. 그 아이의 역할은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기뻤을 것 같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 아이가 되자. 그저 내어놓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내려놓고, 그냥 내 모습으로 나가자. 그 상황 안으로 들어가자.
내일 세상에서 가장 신나게 즐겨야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가슴 쫄깃한 불안함. 이 기분 좋은 불안함은 설렘과 함께 온다. 불안함을 감내하고 용기내어 움직일 때 또 한발 성장한다. 그 설렘은 성장에 대한 설렘이다.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설렘, 불안함을 그대로 견뎌냈을 때 얻는 기쁨이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살아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