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의 여운

주님의교회 청소년부 수련회
2024년 7월 26일 ~ 28일
강화도 신덕수양관


내가 좋아하는 젬베로 내가 좋아하는 찬양을 한다. 가죽을 치며 나는 소리가 손바닥을 타고 몸 안으로 들어온다. 미세한 진동이 피부에 느껴지고 심장으로 전해진다. 소리는 손바닥의 타격감에서 시작된다. 손의 통증이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 통증이 좋다. 손바닥의 얼얼함이 은혜를 머금고 있는 느낌이다.

교회 열등생

난 교회 열등생이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랐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 옆에 있었는데 난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그걸 알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가슴 찡한 울림을 바랐고 천둥 같은 음성이 들리길 원했다. 눈물 콧물 쏟으며 나도 모르게 기도가 터져 나오는 장면을 기다렸다. 나에게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참석했던 수련회마다 이런 좌절은 계속되었다. 예배 때마다 뒤에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고 기도할 땐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일어서서 찬양하라고 할 때마다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로 대충 흉내 내며 그 시간을 때웠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그 방식을 규정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살았던, 살고 있는, 살게 될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지 않을까? 난 인격적인 만남이 비인격적으로 일어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눈높이에서 가장 인격적인 모습으로 내 옆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렇게 나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
‘아ㅡ 거기 계셨군요.’
그 하나님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오래 헤매었던 만큼, 기다렸던 만큼, 간절히 찾았던 만큼 나의 하나님은 뼈에 새겨졌다. 각인되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예배하는 시간이 참 좋다. 나의 하나님을 알기에, 내 상태와 상관없이 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딱딱한 말씀 안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한다. 작은 마음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듣기 위해 내 마음을 맑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가장 맑고 깨끗하고 선명한 상태일 때 하나님이 주시는 작은 마음이 크게 들린다. 명령처럼 다가온다. 그 작고도 거대한 명령에 반응해서 움직인다. 그런 삶이 즐겁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

사십 년이 넘도록 교회에 다녔다. 신앙이 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신앙이 자란다는 건 뭘까? 나이를 먹다 보니 아는 게 많아진다. 어디를 가도 숟가락 하나 얹을 상식과 경험이 쌓인다.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모든 것에 대해 조금은 재치 있는 말 한마디를 해낼 수 있는 기술만 연마하려는 현대인의 병을 얘기한다. 딱 내 모습이다. 여전히 나를 드러내고 싶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내 신앙이 자라고 있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장소가 있단다.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에서는 그런 장소를 ‘막이 얇은 곳’이라 표현했다. 나도 그런 곳에 서 있을 때가 있다. 하나님과 나를 가로막고 있는 막이란 게 있다면, 만약에 그런 게 있다고 해 본다면. 그 막이 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기쁘다는 말로도 뭔가 아쉽다. 그냥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게 그나마 근접한 표현이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건 어렵지 않다. 성경은 참 심플하게 얘기한다. 가난한 삶을 얘기하고, 낮은 자리로 가라고 하고,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한다. 쉬우면서도 어렵다. 가진 게 많아서, 아는 게 많아서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핑계만 늘어난다. 하나님 앞에서 구구절절 핑계 대고 있는 나를 보며 참 많이 울었었다.
“아ㅡ 난 왜 이렇게 핑계가 많을까? 그냥 닥치고 하자”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방법. 부족하게 사는 거다. 불안하게 사는 거다. 하나님이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삶을 사는 거다. 그게 축복이다. 여전히 신앙이 자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하나님과 가까이 있고 싶다.

은혜의 유효기간

수련회 때 받은 은혜는 언제까지 갈까. 돌아오는 버스 내릴 때까지, 아니면 집에 가서 엄마 아빠 만날 때까지? 한 일주일?

그런 줄 알았다. 수련회의 은혜는 일회성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 보니 이제 말할 수 있다. 은혜에 유효기간 같은 건 없다. 끝까지 내 안에 남아서 나를 이끈다. 은혜가 다 날아가 버린 것 같지만 저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어느 순간 신념 줄을 튕기며 나을 이끈다. 요즘에도 문득 생각난다. 18살 때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기도. 이게 내 마음인지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 모르고 했던 그 어설펐던 기도. 선택의 기로 앞에 설 때마다 청소년 시절의 내가 나타나 나에게 말한다.
“재휴야. 그때 했던 기도 생각나지? 이제 그렇게 살아야 할 때야.”
선생님의 얘기를 듣다가 수줍게 다짐했던 25년 전의 내가 생각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몰래 고백했던 30년 전의 내가 나타난다. 그 작은 아이는 큰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이끈다. 지금의 나를 지켜주고 있다. 이젠 감히 말할 수 있다. 은혜는 없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뜨겁게 고백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봤다. 그 기도가 쌓여서, 아이들의 맘속에 차곡차곡 쌓여서 앞으로 이들의 삶을 지키고 이끌 것이라 확신한다.

예배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받기 원하실까?
어릴 때의 예배가 부담스럽고 어색한 자리여서 그랬을까? 나에게 예배는 향유와 축제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자체로 기뻐하는 것. 나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그저 누리는 것.

난 젬베 소리가 좋다. 인도 여행을 하다 그 소리를 처음 들었고 이후 일정을 다 취소하고 거기 눌러앉아 젬베를 배웠다. 그다음 해엔 아프리카 음악의 정수를 보기 위해 세네갈로 갔다. 혼자 젬베를 메고 길거리 뮤지션들 찾아다니며 그들의 음악을 배우는 여행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기 위해,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뜨거운 나라를 돌아다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로 내가 좋아하는 찬양을 한다. 행복하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걸 까발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때가 젬베를 칠 때다.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가 젬베를 칠 때다. 가끔 천국에서 난 뭘 하고 있을까 상상을 해 보는데, 젬베 두드리며 찬양하는 모습이다.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걸까? 하나님을 위해 하는 걸까? 그런 고민조차 들지 않는다. 그 둘의 경계는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일 테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실수도 부끄럽지 않다. 그 모든 걸 뛰어넘어서, 그냥 하고 싶다.

이번에 처음으로 찬양팀으로 함께했다. 여호사밧 왕은 전쟁터 제일 선두에 찬양팀을 세웠다. 보통 선두에는 특공대를 투입한다. 가장 강력한 부대를 앞세워 적진을 초토화하고, 이어서 본대가 들어가는 게 전통적인 전투 방식이다. 여호사밧 왕은 그 자리에 찬양대를 세운다. 적군의 특공대 앞에선 이스라엘의 찬양대. 그들의 찬양은 어땠을까? 죽기를 각오한 찬양. 찬양하다 죽어도 좋을 만큼 기쁘게 찬양했을 것 같다. 살기 등등했을 적군의 특공대 앞에서 목숨을 건 마지막 찬양을 했을 테다. 오늘도 죽으러 간다. 자ㅡ 기쁘게 찬양하다 죽자. 그런 마음으로 찬양하지 않았을까?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 기쁨이다. 향유와 축제다. 젬베를 두드리며 하나님께 고백한다. 죽음 앞에서도 기쁘게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세상의 좁은 길을 즐거워하며 가겠습니다. 너무 비장하고 싶진 않다. 심각해지고 싶지도 않다. 유쾌하게 즐거워하며 적진으로 들어갈 테다. 다윗이 물매 들고 나갔다면, 난 젬베를 두드리며 나가련다.

선생님

GBS 시간. 하나님이 야곱에게 축복의 통로가 될 거라고 얘기하셨다(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 28:14). ‘축복의 통로’를 다른 말로 해석해 줬다.
“공부해서 남 주자"다. “돈 벌어서 남 주자"다.
나에게 복이 흘러 들어올 텐데 그게 나한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그대로 흘러 나가야 한다. 그게 축복의 통로다. 그런 삶을 원해?

아이들에게 나도 지키기 어려운 삶을 얘기했다.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아이들과 다른 게 있다면, 이런 가르침을 더 많이 들었다는 거. 치열한 삶의 현장에 더 가까이 있다는 거. 그래서 책임도 크다는 거. 삶의 현장에 더 가까이 있으면서 처절하게 다짐한다. 앞으로 이 삶을 살아갈 후배들 앞에서 그 삶을 보여주는 거다.
‘누가 이렇게 살 수 있나요?’
글쎄. 근데 성경엔 그런 삶을 사는 증인들이 구름같이 허다하다고 했다. 이미 허다한 증인이 있겠지만, 내가 그 수를 1 증가시킬 수 있다면 이 아이들이 바라볼 모델의 수도 1 만큼 많아지겠지. 내가 바라는 세상이다. 내가 있으므로 해서 이 세상이 1만큼이라도 좋아지는 것. 그 다짐을 아이들을 보며 한다. 그게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는 한 늘 이 부담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나를 지켜준다. 나를 이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나의 선생님이다.

함께 자라기.
난 그저 나이 든 학생일 뿐이다. 조금 앞에서 걸어가는 학생일 뿐이다.

부족함

그럼에도 부족하고 미흡한 점이 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것까지 사용하시고 은혜를 만들어가신다. 하지만 우리의 몫이 있다. 그것을 하자.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불편하고 껄끄럽고 힘들고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일 때 공기가 달라진다. 그런 모습에 공동체의 사랑을 느낀다. 아이들 안에서 이런 모습을 봤다.
‘마냥 어리기만 한 애들이 아니구나.’
배려하고 참고 서로 위로해 준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다. 관계의 밀도가 높아진다. 부족할 때 사랑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불편할 때 더 감사한다. 불안한 시간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러니 더 부족하자. 더 불편하자. 차라리 약해지자.

다음 세대

나도 예전엔 다음 세대라 불렸을 것이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그다음 세대를 본다. 우리 세대를 키워준 어른 세대가 있었다. 어느새 그 바통이 내 손에 넘어왔다. 당황스럽다.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아직 내 신앙 지키기도 버거운데. 그래서 더 간절하다. 어쩌면 우리 세대를 키워주신 어른들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선생님들도 지금의 나처럼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녹록지 않은 삶을 버티며 겨우겨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다음 세대를 길러야 할 책임이 지어졌겠지. 그래서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 했겠지. 제발 도와달라고. 그 기도에, 그 섬김에 우리 세대가 자라났겠지.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설 차례다. 이제 내가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자리에 세워졌다. 하나님도 참… 무모하기도 하시지. 뭘 믿고. 하나님의 방법은 이상하다. 세상의 강함 앞에 약한 자를 세우시는 게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거기에 한번 맡겨보자.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때까지 바통을 잡은 손에 힘을 빼지 말자.

책임이 부담이 되고 간절함으로 이어진다. 믿음은 이렇게 수천 년을 흘러왔나 보다. 한세대 한세대가 이렇게 믿음을 지켜왔고 이어져 왔나 보다. 믿음은 계속 흘러가겠지만 거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서야 한다. 내 몫을 감당하자.

마지막으로 우리 고3들.

어느새 서로 마음 쓰고 챙기고 있더라.
앞으로 서로 기도하고 힘이 되어주는 믿음의 친구로 자라가길 기도한다.
이 사진 오래 간직할 것 같다.
(우리 고3들 이야기는 쓸 말이 많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둔다. 벌써부터 눈물 흘리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