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의 생각

주님의교회 청소년부 몽골 단기 선교
2025년 7월 28일 ~ 8월 3일

시작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알람이 울렸다. 새벽 3:40이다.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은데 교회로 가야 한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비전홀로 갔다. 이미 도착한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부모님과 함께 나타났다. 자녀를 처음으로 ‘선교’의 이름으로 먼 곳으로 보내는 부모님들. 다 함께 빙 둘러서서 기도를 했다. 우린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시작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끝내고 아침을 먹은 후 비행기에 올랐다. 서해를 건너 중국을 지나 어느새 몽골에 도착했다. 선선한 바람, 파란 하늘, 맑은 공기, 탁 트인 시야. 여기가 몽골이구나. 선교사님을 만나 BIO318 수련원으로 왔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고작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서로 깔깔거리며 하나로 어우러진다. 같이 공터에 나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얼음땡"도 하고 공기놀이도 한다. 이런 아이들이었구나. 지친 아이들의 눈이 살아있다.

2025년 청소년부 몽골 단기 선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도착한 첫날. 이미 자정이 지났다.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가 참 길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게 있지. 목사님과 별을 보러 나왔다. 이미 몇몇 아이들이 누워서 별을 보고 있다.
“저 별똥별 4개나 봤어요.”
나도 그 옆에 누웠다.

너무 많은 별이 너무 많이 반짝인다. 한국의 하늘은 이 별을 담지 못한다. 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많은 것들이 들어서 버렸다.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더 가지려다 더 좋은 것을 놓쳐버렸다. 그걸 다시 찾아오려면 손에 든 것을 내려놓아야겠지?

좋은 것을 좋아하기

“왕은 악행을 하는 것을 역겨워하여야 한다. 공의로만 왕위가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은 공의로운 말을 하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하고, 올바른 말하기를 좋아하여야 한다.”
_잠언 16:12~13

진심으로 죄를 멀리하고, 진심으로 선을 좋아하고 싶다. 애쓰고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선한 것이 흘러나오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방 나라의 우상은 금과 은으로 된 것이며,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우상과 같이 되고 만다.”
_시편 115:4~8

이 시대에도 많은 우상이 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있는데 왜 아무것도 못 하는 우상에 마음을 빼앗길까? 좋은 것이 진짜로 좋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우상에 끌리니까, 그래서 나도?

좋은 것을 진짜로 좋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것을 사모하자. 하나님 더 알기를 바라고 힘써서 하나님 찾기를 원하고 그것을 따라가자.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진짜 좋은 것이다.

팀워크

우리의 계획이 완전히 비껴갔다.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다. 2시간을 생각하고 준비한 프로그램이 40분 만에 끝나버렸다. 남은 시간을 뭐로 채워야 하지? 즉석에서 회의가 이루어진다. 없던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실시간으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필요한 물품은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계획에 없던 프로그램으로 조별 활동, 레크레이션, 단체 활동이 풍성하게 채워진다. 즉석으로 진행한 사진 콘테스트와 조별 장기자랑. 아이들의 센스와 끼가 마음껏 발휘된다. 이미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진 선생님들은 이 상황을 즐기며 진행해 나갔다. 아이들에게 한국과 몽골이라는 국적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지휘 아래 우리는 계획한 것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들의 팀워크, 아이들의 팀워크, 하나님과의 팀워크. 좋다.

큐티 시간에 우리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나눴다. 지난 수련회때 일어났던 산사태, 그리고 이번 캠프 일정. 열심히 준비하지만, 그건 우리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엉성한 계획이다. 임기응변으로 사진 콘테스트를 했고, 선교사님이 갑자기 제안하신 조별 발표를 했다. 모닥불에 포크댄스까지. 이건 누가 한 건가? 하나님이 하셨나? 우리가 했나? 우리는 최선을 다해 움직였고,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이 채워주셨다. 우리가 가능한 것을 할 때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하신다.

하나님과의 팀워크다.

예배

몽골에 도착한 첫날 저녁. 이제 자고 일어나면 캠프가 시작된다. 찬양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음향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다. 피곤했던 나는 내심 아이들이 포기해 주길 바랐는데, 다들 연습을 해야겠단다. 억지로 내장 스피커가 달린 건반을 가져오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와 연습했다. 피곤한 아이들의 모습에 생기가 돈다.

선교 떠나기 직전 마지막 주에 찬양팀이 결성되었다. 앞에서 마이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싱어로 선다. 반주를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악기를 잡았다.
“한번 연습해서 해 볼게요.”
다들 큰 용기를 냈다. 첫날 부를 찬양은 4곡인데 건반을 치는 사람은 3명이다. 각자 한두 곡씩 맡아서 연습하기로 했다. 처음 연습하러 모인 날 비전홀에 들어오면서 하나같이 말한다.
“저 연습 별로 못했어요. 틀리면 어떡해요.”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얘들아, 지금부터 몽골 선교 끝날 때까지 ‘못한다’라는 말 금지어야. 우리 잘 못하는 거 다 알아. 나도 잘 못해. 그래도 해 보자.”

들판에서 5천 명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은 사람들이 허기진 것을 알고 먹을 것을 찾으신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는다. 그가 가진 전부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5천 명을 먹이신다. 이 기적은 누구를 위한 기적이었을까? 배부르게 먹은 5천 명일까? 그 어린아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적은 것을 많게 부풀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어서, 그래서 예수님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 테지. 어쩌면 그 기적은 그 어린아이를 위한 게 아니었을까?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에 함께할 사람을 초청하셨고 한 아이가 거기에 반응했다.

“가장 작은 것, 하지만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어드린 그 어린아이가 바로 우리야.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으로 몽골 아이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실 거야”
그렇게 첫 연습을 시작했다. 정말로 아이들은 그 후로 ‘못한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예배를 섬기는 자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실력, 기술로 하는 게 아니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 있는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그게 예배다. 이 아이들이 그 예배를 드렸다.

캠프를 다 끝내고, 한국에 돌아가서 드리는 첫 예배 찬양을 우리가 섬기자고 제안했다.
“몽골에서의 예배를 기억하자. 그리고 이 예배를 우리 삶으로 이어가자. 몽골에 두고 가지 말고 그것을 내 삶으로 가져가 이어가겠다는 다짐으로, 그 고백으로. 다음 주일 예배를 우리가 섬기자.”
아이들이 기겁을 한다. 지금까지 큰 용기를 냈는데, 한 번 더 용기를 내길 바란다.

몸에 새겨진 고백은 평생 갈 것이다. 이 아이들의 삶에 그 예배가 계속 이어질 바란다.

하나님의 모습

버스 타고 이동하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는다. 장난 속에 깃든 사랑을 알기에 그 또한 행복하다. 말 한마디에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고작 2박 3일 함께 했을 뿐인데. 함께 예배하고 놀고 장난치고 게임하고 그랬을 뿐인데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몽골 친구들과 헤어지는 시간, 아이들 눈가가 촉촉해진다.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우리 앞에 드러내시는 방법은 눈물인 걸까? 여기저기에 사랑이 피어있다.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다.

부족한 사람들이 만났는데 서로 에너지를 받는다. 나에게 없던 힘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상대방에게 없던 힘이 나에게 전해진다. 그저 함께했을 뿐인데 없던 사랑과 에너지게 생겨난다. 그건 어디서 생긴 것일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_요한일서 4:16

하나님은 어떻게 만나는 걸까?
그건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진지했고 재밌었고 유머러스했고 장난기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하나님을 만났다.

꿈이 많은 아이

꿈이 많은 아이를 만났다.
통역사가 되고 싶단다. 중국에 하나님을 전하고 싶단다. 생명공학자가 되고 싶단다. 대통령이 되고 싶단다. 몽골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고 싶단다. 로봇 공학을 하고 싶단다. 못 보고 못 듣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단다.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그 꿈은 복음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단다.
오랜만에, 꿈이 많은 아이를 봤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바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셔. 그래서 어떤 것을 통해서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어.”

불안함이 줄어들었단다. 나와의 대화가 요즘 해 왔던 기도의 응답인 것 같단다.

“꿈을 계속 이야기하자. 그럼 진짜로 그렇게 될 거야. 나도 기억하고 기도할게.”

마을 전도

직접 마을에 들어가 집을 방문하고 복음을 전했다. 계속 문전박대를 당했다. 또 다음 집 문을 두드렸다. 한 젊은 여자분이 나온다. 먼저 우리를 소개한 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집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문에 서서 얘기하잖다. 여자 혼자 사는 것 같은데, 나도 부담스럽다. 밖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서 얘기하자고 했다. 우리는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복음의 내용을 담은 영상과 책자를 보여드렸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삶이 변했는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님을 믿고 싶으세요?”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요.”
함께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마을 전도를 하고 온 경험을 나눴다. 복음을 전하러 간 우리는 그들의 넘치는 환대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복음을 전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봤고, 그것을 기쁨으로 나누었다. 더 전하지 못한 아쉬움, 더 깊이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복음을 전하는 것. 그건 빚을 갖는 것이다.

마지막 날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함. 더 많이 주지 못한 아쉬움. 이걸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이제 한국에 돌아가는데, 그냥 가슴에 담아놓을 뿐이다. 이 감사함과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겠지. 이 마음은 내 안에 빛이 되어 앞으로 살아가는 평생 반짝일 것이다. 우리가 봤던 그 하늘의 그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별 하나하나가 우리의 꿈이다. 우린 마음에 그 별 하나를 박아놓고 왔다.

오늘 큐티 말씀은 전도서 12장이었다. 우린 헛되고 헛된 세상을 살아간다. 그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창조주를 기억하라.”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모두의 질문이다.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창조주를 기억하며 산다는 것. 세상을 비추는 별을 하나씩 하나씩 박아가는 거라면 꽤 괜찮지 않을까?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 더 많이 주지 못한 아쉬움. 이런 게 별이 되어 반짝인다. 그런 별을 많이 만들어가자.

쓸데없는 재산을 모으려고 애쓰지 말고, 이런 별을 모으자.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곳간의 재산보다 영원히 반짝이는 빛이 훨씬 더 값지다. 곳간의 재산보다 하늘에 박아놓은 별을 보며 살아가면 좋겠다. 하늘에 별이 더 많아지길. 더 많이 더 밝게 반짝이길.

유목민으로 살아가기

30대를 끝내며, 지난 십여 년을 돌아보며. 앞으로 내 삶의 키워드를 “유목민"으로 정했었다.

유목민의 삶. 그건 불안함을 견디는 것이다.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삶이다. 변화를 제어하려 들기보다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널찍한 길을 뒤로 하고 좁은 길로 발걸음을 돌린다. 멈추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계속 움직인다. 언제든 떠나야 하기에 몸과 마음을 가볍게 유지한다. 재산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주변의 이벤트에 열려있고 다가오는 사람을 환대한다. 광대한 세상 앞에서 나의 초라함을 알지만, 나의 가능성 또한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한다.

유목민의 나라 몽골에서 유목민의 기운을 다시 얻어간다. 앞으로 몽골에 자주 와야겠다. 몽골에 한 번씩 와서 나의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굳혀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