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청소는 벌이 아니라 상

장재휴
고1 때 이야기다. 뭔가 잘못을 해서 벌을 받아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어떤 벌을 줘야 할지 반 아이들에게 결정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회의를 했고, 그 벌로 교실 청소를 하게 했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어이없는 말씀을 하셨다. “청소는 벌이 아니에요. 청소는 상이에요. 왜 청소를 벌로 줍니까?”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그러고 얼마 후에 칭찬받을 일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진짜로 그 친구에게 상으로 교실 청소를 하게 하셨다.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소중한 한 표

장재휴
처음 투표권이 주어졌을 때,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는 것보다, 그냥 성인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겼다는 것에 신기해하기만 했던 것 같다. 소중한 한 표라고 말을 하긴 하지만, 나의 한 표가 이 세상의 앞날에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선거 때마다 투표하긴 했지만 매번 헷갈렸다. 공약집을 읽어보면, 죄다 어려웠고 그 말이 그 말 같았다.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었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아주 하찮게, 가볍게 사용해 버렸었다.

마흔 번째 생일

장재휴
마흔 번째 생일이 막 지났다. 생일을 빌미로 오랜만에 연락해 온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친구랑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마흔이 되는 날이 오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었다!” ㅋ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느 한 시기를 끝마치고 다음 시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 삶 위에 새로운 삶이 얹혀져서 스펙트럼이 쭉 넓어지는 느낌이다. 난 이미 마흔이 되었지만, 17살, 20살, 26살, 30살의 장재휴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어서, 그때의 내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장재휴
지난주 월요일 줌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추도 예배를 드렸다. 설교는 아버지가 하셨고, 아모스 5장 24절 말씀이었다. 정의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설교의 주 내용은 할아버지의 삶의 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시며, 정의로운 삶을 선택해서 그렇게 살아가셨던 할아버지의 삶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한 번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삶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을 배우며 살자는 말씀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배움이 있다. 많은 부분이 있지만, “돈”에 대한 가치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다.

노력의 배신

장재휴
지난 주일 한 고등학생 아이가 불쑥 이런 얘길 했다. “쌤~! 노력이 나를 배신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그럴 수 있지. 근데 너 대단하다. 어떻게 이걸 벌써 깨달았어?” 노력은 종종 우리를 배신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일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 중에 나의 직접적인 노력으로 인해 얻은 부분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때론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이 얻기도 하고, 때론 열심히 했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돌아올 때도 있다.

살면서 만나는 벽 앞에서

장재휴
살면서 넘어야 할 벽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친구와의 경쟁이나 학교 시험 등 자잘한 벽들을 마주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다. 아마 대부분 이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큰 벽은 대학 입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벽을 넘고 난다고 해서 내 삶이 순조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 후 취업의 벽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게 되고, 그 벽을 넘고 나면 그동안 잘 넘겨왔던 벽은 사소해 보이게 만드는 또 다른 큰 벽을 마주하게 된다. 매번 나타나는 그 벽을 깨부수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사회적 압박 속에서, 도장 깨기와 같은 피곤한 삶이 이어진다.

작고 사소한 결정의 무게감

장재휴
나를 형성하는 것은, 매일 숱하게 마주하게 되는 순간의 작고 사소한 결정들이다. 그 결정들은 오롯이 나의 순간의 가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방금 내가 한 그 결정은 어디에 가치를 둔 결정이었나?’ 그리고 그런 결정(나의 가치를 확인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 쌓여서 나라는 사람이 형성되어간다. 일상의 사소하고 작은 결정에는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비교적 적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유행, 압박, 환상, 허황된 희망, 사회적 이슈,,, 이런 주변 것들에 휘둘릴 일 없이 오롯이 내 내면에서 판단이 내려지고 행동으로 나타난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

장재휴
얼마 전,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는 (늘 신선한 글로 내 생각을 틔워주셨던) 김재수 선배님의 이야기가 화두였다. 김재수 선배님은 <청소년 매일성경>에 칼럼을 기고해 왔는데, 지난달 성경의 “다섯 달란트 비유"를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입장에서 해석한 글을 실었다. 그 글에 대해, “주류에 어긋난 좌파식 성경 해석"이라는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청소년 매일성경>에서는 김재수 선배님의 연재를 중단했단다.(기사 보기) 성경 해석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담았다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설교시간에 이 얘기를 하면서 김재수 선배를 ‘악마, 마귀, 사탄’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