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새벽이다. 오늘도 1부 예배를 드리고 어린이 부서로 간다. 약간의 압박이 있다. 압박이 있으면서도 살짝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 꼬맹이들이 예배당에 들어오는 걸 보면 반갑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환하게 웃게 된다.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하다. 아이들한테 이런 감정이 생기다니..
귀찮은 존재,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어린아이들이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자주 봐서 그런가?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 자주 보는 꼬맹이들한테 늘 마음이 열렸던 건 아니다. 나의 의지가 있었나? 조금은.
오늘, 한국에 들어온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북경에서의 시간을 다시 회상해본다.
돌아보니 중국에 있으며 아래 3가지를 배운 것 같다.
생존법 사람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괜히 연말 분위기에, 지난 시간을 돌아볼 겸 각각에 대해 한편씩 글을 써 볼까 한다.
‘재미있으면 쭉 살고, 재미없으면 돌아가지 머’
처음에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중국 생활이 7년이나 이어질 줄이야…
2015년 12월에 중국에 왔다. 아내가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주재원 임기가 3년이니 재미없으면 임기만 딱 끝내고 돌아오면 될 테고, 재미있으면 그냥 내가 돈을 벌면서 거기서 쭉 살면 되겠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담임 선생님은 할아버지였고 대머리였다. 깡마르고 키가 컸었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그날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었을까? 하필 그날 난 준비물인 원고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원고지 없이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시더니 때리시다가 발길질을 하셨다. 나는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선생님은 나를 짓밟으며 소리를 지르셨다. “원고지 가져오라고, 원고지!”
대구에 살다가 대전으로 전학을 간 나는,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반에 친한 친구가 없었다. 반 아이들은 나를 “사투리”, “촌놈"이라고 놀렸다.
7월 중순쯤부터 개발팀에 합류한 고등학생 이야기다.
아ㅡ 자퇴를 했으니 고등학생이 아니지.
7월 초에 처음 줌으로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학교에서 개발을 배우게 되었고 코드를 짜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데, 학교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짜는 코드가 잘 짜는 코드인지 잘 모르겠단다. 실제 동작하는 것을 만들어보며 진짜로 사용되는 걸 만들어보고 싶단다. 하이데어 팀에 와서 나랑 같이 개발하며 배워보고 싶단다. 코드를 짜는 것을 넘어서, 개발하며 사는 삶을 배우고 싶단다.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 건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이게 맞는지.
“경력"을 쌓는다는 말도 구시대적인 말이다.
(지금의 그 일이 5년/10년후에도 남아있을지 어떻게 알고? ㅎㅎ)
“경험"을 쌓는다는 말이 좀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