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친구들과 함께한 일년

주일 새벽이다. 오늘도 1부 예배를 드리고 어린이 부서로 간다. 약간의 압박이 있다. 압박이 있으면서도 살짝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 꼬맹이들이 예배당에 들어오는 걸 보면 반갑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환하게 웃게 된다.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하다. 아이들한테 이런 감정이 생기다니..

귀찮은 존재,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어린아이들이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자주 봐서 그런가?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 자주 보는 꼬맹이들한테 늘 마음이 열렸던 건 아니다. 나의 의지가 있었나? 조금은.. 이 아이들을 마음에 담으려는 노력이 있긴 했었다.

내가 변했다. 2023년의 큰 변화 중 하나는 내가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경계가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들에게까지 넓어졌다는 거다. 이들을 교제와 나눔의 대상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인격적 교제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있던 어떤 한 집단이 내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왔다.

한번이 어렵지, 그 한번을 넘기고 나면 두 번, 세 번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내 마음의 경계를 깨뜨려 본 경험은 두 번, 세 번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수학의 증명공식에 의하면, 첫 번째 과정이 참이고, 그다음 과정도 참, 또 그다음 과정도 참이라면, 무한대까지 참이 된다. 그리고 그건 공식이 된다. (수학적 귀납법, 이거 맞나? ㅎㅎ) 이게, 나의 한계를 깨뜨리는 공식에도 적용될까?

이전 글에서 내 삶에 적극적으로 사람을 개입시키자고 다짐했다. 내년엔 더 다양한 관계가 예상된다. 8살 꼬맹이들과 보냈던 올해 일 년을 기억하자. 첫 번째 과정은 ‘참’으로 증명되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렇겠지?

아ㅡ 생각해보니, 북경에서 고등부 아이들을 이해했던 게 첫 번째였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북경에서의 특별했던 처음 경험을 일반화해서 공식으로 만들어 준건가?

새로운 도전은, 단순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해가는 정도가 아니다. 나에게 있던, 아직은 보잘것없고 어설픈 무언가를 발전시켜주고 그것을 공식으로 만들어준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만 가능했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다른 상황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상황, 어려움, 위기를 어떻게든 관통해보려는 발버둥이 나를 발견하게 한다. 너무 어려워서 도망가버리고 싶은 그 상황은 나의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왜냐하면, 그 시간을 통과하려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내 모습이어야만 하거든. 남의 방식을 흉내 내서는 절대 해낼 수 없거든. 그렇게 겨우 발견한 내 모습을 일반화시켜주고, 다듬어주고, 공식으로 만들어주고, 다른 곳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나만의 무기로 만들어 주는 것이 도전과 실패의 반복이다. 이게 아니면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좀 더 자신감을 가져보자.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 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그래서 못하겠다는, 그런 뒷걸음질은 그만하자. 첫 번째를 겨우 해냈고 다른 상황에서 두 번째를 해냈으면, 세 번째, 네 번째도, 그다음도 가능하다. 그렇게 나를 발견하고 다듬어가는 것 같다.

내 안의 보물을 캐내고 그것을 가꿔가는 것. 1달란트로 2달란트를 남기고, 5달란트로 10달란트를 남기고, 10달란트로 20달란트를 남긴다는 것이 이런 건가?

오늘 하루,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대하자. 더 사랑하자.
이제 땅속에 묻혀 있는 나의 달란트를 캐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