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2023

또다시 맞이하는 12월 31일이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리 없지만, 이럴 때 괜히 연말 분위기에서라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작년 12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첫 일 년을 보냈다. 올 한해는 하이데어를 가동시키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모르고 가볍게 시작했던 하이데어가 점점 무게감을 드러내었고 거기에 제대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올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멈추지만 말자!’
예상보다 더 척박했지만, 이 생각으로 꾸역꾸역 다음 스텝을 이어왔다. 호들갑스럽게 다른 스타트업들 흉내도 내보고, 무턱대고 이일저일 벌여보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허울이 좀 빠진 것 같다. 이제 겨우 우리에게 맞는 옷을 짜맞춰 입은 것 같다. 이 척박한 상황은 계속 이어지겠지. 하지만 우리만의 방법으로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외형적으로는 하이데어를 가동시킨게 큰 성취로 보이지만, 내 개인적인 삶은 그것 말고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보람, 후회, 감사 테마로 한해를 돌아보자.

보람

참 많지만, 몇가지만 적어보자.

- 주일학교 1학년 교사,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것
내가 초딩 아이들을? 그것도 1학년?
올해 가장 힘들었던 일이자 가장 뿌듯한 일이다. 이걸 통해 난 어떻게 변했을까? 수용할 수 있는 이웃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이 이야긴 바로 앞 글에서도 썼다.)

- 삼다(三多)를 꾸준히 한 것
삼다가 아니었다면 평생 읽지 않았을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지성/감성의 균형이 조금 잡힌 것 같다. 이전엔 몰랐던 종류의 기쁨과 만족감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며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전보다 더 편안해진 것 같다.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폭도 넓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삶으로 더 들어가 보고 싶다.
(올해 읽은 책: 23권. 올해 블로그에 쓴 글: 50편. 뿌듯~! ^^)

- 선택의 기준에 한 가지 추가 —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자’
어린이 부서 교사를 시작한 것도 한 사람을 위해서였고, 중국 코스타에 강사로 간 것도 혹시 나와의 만남이 필요할지도 모를 한 사람을 위해서였다. 이런 선택의 기준이 나를 변하게 했다. 한 사람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값진 일이 있을까? 여전히, 한 사람을 위해 행동하자.

- 하이데어를 어떻게든 이어가고 있는 것

후회

- 운동하지 않은 것
매년 하는 후회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게 느껴진다. 이젠 가만히 있으면 나빠지는 나이다. 현상 유지라도 하자.

- 성경 일독 안 한 것
8년째 해 오던 걸 멈춰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길게 써 보자.

성경통독을 할 때와 안 할 때의 차이점:

  • 성경 통독을 할 때:
    매일 성경을 읽고 있다. 늘 나에게 말씀이 유입되고 있다. 이런 삶에선, 말씀공급이 주일예배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사람들 만나고, 교제하고, 먹고, 마시고, 노닥거리고, 탁구치고, 기타연습하고, 이야기 나누고,,, 이 모든 게 예배다. 주일날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주일예배다. 설교 말씀은, 이미 매일 말씀이 유입되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오늘 특별히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이다. 더 은혜가 된다. 지루한 설교도 은혜가 되었다.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 없다. 그게 예배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으니. 총체적으로 은혜의 삶이었다.
  • 성경 통독을 하지 않을 때:
    내 삶에 말씀이 유입되지 않는다. 근데 말씀이 필요하긴 하다. 그걸 주일 예배 때 충족 받으려고 한다. 예배에 다른 의도가 생겨버렸다. 평소에 내가 해야 했던 것을 안 하다가 그걸 주일 예배 때 메꾸려고 한다. 자연히 포커스가 설교에 맞춰진다. ‘빵꾸난 말씀 구멍을 이번 설교에서 메꿔야 해!’ 그걸 좌우하는 사람이 목사님이 되어 버린다. 그걸 잘 메꿔주는 목사는 좋은 목사, 잘 못 메꿔주는 목사는 별로. 신앙의 주체가 바뀌었다. 신앙의 주체가 목사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었을 때: 목사를 숭배하거나, 목사를 비판하거나.
    잘 메꿔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뭔가 뿌듯하다. ‘그렇지~ 이거야!’ 하는 평가를 해버린다. 근데 그게 안 메꿔질 때가 있다. 그럴때도 설교에 평가를 해버린다. 설교가 중심이 되다 보니 다른 건 덜 중요해졌다. 너무너무 중요한 예배의 많은 것들이 덜 중요해져 버린다.
  • 성경 통독을 하지 않을 때, 하나 더:
    예전 같았으면 고민 없이 성경을 펼쳤을 시간에, ‘뭐하지?’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고 대단히 생산적이고 알찬 뭔가를 하진 않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바빠서 성경 일독을 못하겠다더니, 성경 읽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쓸데없이 페이스북 짤을 보며 날려 버린다. 어쩌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어디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 데라도 그냥 펴서 보면 될걸, 안 읽는다.

2024년엔, 억지로라도 하자.

감사

- 매번 위기 때마다 길을 열어 주신 것
6월을 기점으로 회사 돈도 떨어지고 내 돈도 떨어졌다. 우리 집에 쓸 돈도 없고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돈을 벌어오기 위해 처음으로 영업이란걸 해 봤다. 똥줄 타는 미팅을 하러 다녔고, 태연한 척 미팅을 끝내고 나와선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경험도 했다. 그러다 간신히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내고 월급날 며칠 전에 선금을 받아 겨우 급여를 내보냈다.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한두 달, 이 과정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그러면서 얼어붙은 경기를 실감했다. 하지만 매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방법으로 순간을 넘겨왔다. 그런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그런 삶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좋은 사람들 — 이거야말로 거저 얻은거다. 해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큰 축복이고 선물이다. 감사의 통로는 늘 사람이다. 사람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로 인해 내 삶은 더 풍성해진다.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된다. 24년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겠지? 여기에 더 기대하고 집중해보자!


굿바이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