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의 이랜드 생활을 마무리하며

2006.06.26 ~ 2014.03.31

지난 8년동안 서울 가산동을 매일같이 왔다 갔다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느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물렀던 적이 있었던가?
대학교 갓 졸업하고, 외워서 하는 자기소개조차 버벅거리며 제대로 못했었는데
어느새 8년차 직장인이 되어있었고
이제는 벤처 세계로 한번 뛰어들어 보려고 한다.

지난 목요일엔 부서원들이 송별회를 해 주었다.
그들이 전하는 말 속에 진심이 느껴졌고 준비한 선물에 기분이 참 좋았다.
일단은 선물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ㅎㅎ, 고민하며 준비했던 것이 느껴져 참 고마웠다.
아끼는 후배로부터
항상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은 회사를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윗 상사에게 칭찬을 드는 것보다, 팀원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 훨씬 더 기분이 좋더라.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치를 두었던 것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왔던 팀원에게 인정을 받는 느낌이었다.

좋아하는 차장님 한 분은, 커피숍에서 두 손을 잡고 앞으로의 길을 축복해주시며 기도를 해 주셨다.
그동안 도움을 받기만 했었는데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쉽다는 편지와 함께 선물을 준 동료도 있었다.
너무 이기적인거 아니냐며, 혼자 자기 길을 찾아 떠나버리는 나쁜놈이라고 막 쏟아내는 분도 계셨다.
사과를 하나 꺼내 주시며(ㅎㅎ), 나는 기억도 안나는 일을 얘기하시며 그때 미안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
많은 분들께서, 같은 곳에서 함께 일하고 싶지만 그래도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셨다.

지난 주말엔 아내와 같이 짧게 여행도 다녀왔었고,
오늘도 아내와 함께 (난생 처음)골드클래스에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산책도 했다.

지난 8년간의 모든 시간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많이 고민했고, 많이 부딪혔고, 많이 움직였다.
좀 더 단단해진 것 같고, 좀 더 깊어진 것 같고, 좀 더 커진 것 같다.
우연이라고 여겨버릴수도 있을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모여 지금의 이 모습을 만들어낸 것 같다.
아..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면, 내 삶의 어느 한 부분도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은 순간은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내 삶의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랜드의 중요한 경영이념 중 하나가 “자람"이고, 그리고 직장은 인생의 학교라고 얘기한다.
정말로 8년간의 긴 수업을 받은 느낌이고 이제 졸업을 하는 기분이다.
그동안 배웠던 것들 까먹지 말자.
그동안 이곳에서 배웠던 것들에 스스로 갖혀버리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자.
이제 진짜로 제대로 뛰어들어보자!

지금 마음을 얘기해보라면,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바로 그 기분이랄까?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혼자 여행을 떠날때,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 땅으로 향할때의 그 기분.
여행지에서 겪게 될 일에 대한 기대감 반. 두려움 반.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 참 기분좋은 설레임.
내일부터 새롭게 시작될 시간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여행때의 그것과 흡사하다.
2010년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이 여행이 3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30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길 기도했었고,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그 시간 자체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예행연습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했었다.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정말로 앞으로의 내 삶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뭔가 빈틈없는 계획과 탄탄한 기반으로 안정감(?)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삶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어보는 삶.
참 재밌을 것 같다. ^^

그동안은 “이랜드"라는 커다란 우산이 나를 받혀주었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나를 막아주는 것이 없고, 비를 직접 맞아야 한다.
이젠 생존 자체를 두고 사투를 벌여야 할 일들이 계속 생겨날수도 있다.
하지만, 우산을 걷어내니까 하늘이 보이더라는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이젠 하늘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