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젠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또, 이 찬양을 부르는데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린이 부서 예배시간, 꼬맹이들 틈 속에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마음 한켠이 따뜻해져 왔다.
어릴 때 1,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지난 수요일에 에버랜드에 갔었다. 사파리 버스를 타고 호랑이, 사자, 곰들을 봤다. 그 가엾은 동물들은 버스 창 바로 앞에까지 와 개인기를 부리며 꼬맹이들의 입에서 환호성을 불러내 주었다.
사자 암수 한 쌍씩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암수가 같이 있는 게 사이가 좋아 보인다. 6~7쌍 정도 있어 보였는데, 모두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 평화로움이 슬펐다.
원래 사자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보통 수사자 하나에 암사자 여러 마리와 새끼들이 한 무리를 이룬다. 사냥은 암사자의 몫이고 수사자는 그냥 어슬렁거릴 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담임 선생님은 할아버지였고 대머리였다. 깡마르고 키가 컸었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그날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었을까? 하필 그날 난 준비물인 원고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원고지 없이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시더니 때리시다가 발길질을 하셨다. 나는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선생님은 나를 짓밟으며 소리를 지르셨다. “원고지 가져오라고, 원고지!”
대구에 살다가 대전으로 전학을 간 나는,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반에 친한 친구가 없었다. 반 아이들은 나를 “사투리”, “촌놈"이라고 놀렸다.
책을 멀리했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이 책도 안 읽었어?“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초등학생 때 으레 읽었어야 할 동화책도 안 읽었으니 그런 말 들을 만하지.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때 한 친구는 “넌 사람에게 관심 없잖아” 라고 말했다. 사람보단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무언가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다채로운 책의 맛을 알아갔다. 다채로운 사람의 맛을 알아갔다.
한줄한줄 꼼꼼히 노트해가며 읽는다. 이럴 땐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책 한 귀퉁이에 생각이나 질문을 적어 놓으면, 책을 읽어나가다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랜만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셋이 식사를 했다. 결혼한 이후로는 늘 아내와 동행했고 자녀가 생기고 나서는 항상 손녀에게 관심이 먼저 갔다. 이렇게 엄마 아빠랑 식사한 게 몇 년 만인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하이데어 이야기가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창업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용케도 버티고 있다. 돈은 이미 바닥이 났지만 겨우 월급 날짜에 맞추어 돈벌이가 생긴다. 딱 한두 달 치 일이 생겼다가 돈이 바닥나고, 또 다음 월급날이 다가오기 며칠 전에 작은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계약금이 들어온다.
시집이면 좋겠다. 아니어도 괜찮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빨리 읽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이었잖아.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 다니엘 페낙
맞는 말이다. 원래 내 시간이 아니었다. 지하철에 잡아먹힌 시간이었는데 책이 그 시간을 도로 훔쳐왔다. 그러니 조급함은 내려두고 천천히 읽자. 말 그대로 잉여읽기다.
지하철에서 내려 환승구로 간다. 썰물 빠져나가듯 사람들이 쑤욱 지나가는데 나 한혼자만 유유자적. 이 기분도 괜찮다. 이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다. 무리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시끌벅적한 출근길,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중학교 2학년 때다. 우리 반에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뭐든지 반응이 느리고 목소리도 특이했다. 손가락 끝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래서 손톱 주변의 살이 늘 뜯겨나가 있었다. 반 친구들은 그 아이를 자주 괴롭혔다. 난 그냥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우리 반 자리 배치를 싹 바꾸셨는데, 나를 그 친구 옆자리에 앉히셨다. 내 짝이 된 것이다. 반 아이들의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옆에 있던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때의 우리 반 분위기는, 드라마에 나오는 학교폭력 장면처럼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젬베와의 만남 2009년 인도를 여행하다가 처음 젬베 소리를 들었다. 심장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갔다. 허름한 헛간에서 한 친구가 젬베를 치고 있었다. 이후의 여행 일정을 다 취소했다. 거기 눌러앉아 그 친구한테 젬베를 배웠다. 그 후 아프리카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빠져들었다. 이듬해, 아프리카 음악의 정수를 보기 위해 서아프리카 세네갈로 갔다. 거기서 길거리 뮤지션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음악을 배우는 여행을 했다.
Amadou와의 만남 2010년. Saint-Louis, 세네갈 북쪽 끝에 있는 해안마을이다. 여기서 Amadou라는 친구를 만났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요리 실력이 좋으셔서 맛있는 음식을 늘 푸짐하게 먹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억엔 아쉬운것만 남는다. 엄마가 해 주신거 말고, 삐까번쩍한 식당에 가서 먹는 음식들이 참 맛있어보였는데, 특히 돈까스, 스파게티, 피자,, 이런 서양 음식들이 그랬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그런 음식을 먹어볼 순 없었다.
그 아쉬움은 몸에 남았다.
그게 언제 드러나느냐면 뷔페에 갔을 때다. 거기 있는 음식들은 전부 다 한 번씩 먹어봐야 한다. 괜히 서양 음식들이 맛있어 보인다.
7월 중순쯤부터 개발팀에 합류한 고등학생 이야기다.
아ㅡ 자퇴를 했으니 고등학생이 아니지.
7월 초에 처음 줌으로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학교에서 개발을 배우게 되었고 코드를 짜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데, 학교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짜는 코드가 잘 짜는 코드인지 잘 모르겠단다. 실제 동작하는 것을 만들어보며 진짜로 사용되는 걸 만들어보고 싶단다. 하이데어 팀에 와서 나랑 같이 개발하며 배워보고 싶단다. 코드를 짜는 것을 넘어서, 개발하며 사는 삶을 배우고 싶단다.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 건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이게 맞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