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기짐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요리 실력이 좋으셔서 맛있는 음식을 늘 푸짐하게 먹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억엔 아쉬운것만 남는다. 엄마가 해 주신거 말고, 삐까번쩍한 식당에 가서 먹는 음식들이 참 맛있어보였는데, 특히 돈까스, 스파게티, 피자,, 이런 서양 음식들이 그랬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그런 음식을 먹어볼 순 없었다.
그 아쉬움은 몸에 남았다.

그게 언제 드러나느냐면 뷔페에 갔을 때다. 거기 있는 음식들은 전부 다 한 번씩 먹어봐야 한다. 괜히 서양 음식들이 맛있어 보인다. 피자, 스파게티, 버터 잔뜩 발린 빵들. 막상 먹어보면 별로 맛있지도 않은데, 그런 음식들을 보면 꼭 내 입에 집어넣어야 한다. 배는 부르고 생각보다 맛은 없고, 그 욕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당연히 채워지지 않지. 그건 마음의 허기짐이었으니.

2017년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갔다. 그때 우리 가족에게 큰 아픔의 사건이 있었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간 거여서 돈을 아끼지 않았었다. 꽤 비싼 호텔인 롯데호텔에 묶었었고 거기서 비싼 뷔페도 먹었다. 와~ 쫙ㅡ 깔린 고급 음식들. 지금까지 가 봤었던 뷔페랑 차원이 달랐다. 난 또 나의 식탐을 돋구는 그것들을 모조리 담아왔다. 근데 우리 딸 아이는 김만 몇 장 가져와서, 그냥 김에다가 밥을 얹고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었다. 그 김은 연어회를 싸 먹으라고 비치해둔 김이었다.

난 어이가 없었다. 이 비싼 돈을 내고 뷔페에 왔는데, 이렇게 눈 돌아갈 정도로 보암직한 음식들이 쫙 깔려 있는데.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김 만으로 배를 채워버리다니!
“지안아. 여기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다른 것도 좀 먹어봐봐”
“난 이게 제일 맛있어.”

그 대답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아ㅡ 그냥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거, 나한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되는 거구나. 나에게 있던 식탐. 이건 정말 그 음식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구나. 어릴 때 채워지지 않았던 무언가에 대한 마음의 허기짐이었구나.

지난 날의 상처는, 그것을 알고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그때 음식과 화해를 했다고 하면 웃긴 표현일까?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준 식사. 음식과 화해를 하게 해 준 식사. 허겁지겁 탐하는 식사 말고, 그냥 내가 먹고 싶은것을 만끽하며 먹으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 식사.

그것을 알려준 딸 지안이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