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를 살아왔더라도 그 삶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경험, 인생, 이야기,, 그로 인해 형성된 개개인의 모습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또래의 대화에는 그걸 뛰어넘는 공감대가 있다.
우리는 삶의 단계가 비슷하다. 유아기- 청소년기 - 청년 시절 - 신혼 - 아빠 - 학부모 - 중년 - …
이 시기를 지나고 성장해 오면서 어떻게든 나의 삶, 나의 스토리가 생긴다. 그 스토리 안에는 나만의 희로애락이 담겨있고, 후회/아픔도 있다. 하지만 후회/아픔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고1 때 이야기다.
뭔가 잘못을 해서 벌을 받아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어떤 벌을 줘야 할지 반 아이들에게 결정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회의를 했고, 그 벌로 교실 청소를 하게 했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어이없는 말씀을 하셨다.
“청소는 벌이 아니에요. 청소는 상이에요. 왜 청소를 벌로 줍니까?”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그러고 얼마 후에 칭찬받을 일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진짜로 그 친구에게 상으로 교실 청소를 하게 하셨다.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처음 투표권이 주어졌을 때,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는 것보다, 그냥 성인이 되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겼다는 것에 신기해하기만 했던 것 같다.
소중한 한 표라고 말을 하긴 하지만, 나의 한 표가 이 세상의 앞날에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선거 때마다 투표하긴 했지만 매번 헷갈렸다.
공약집을 읽어보면, 죄다 어려웠고 그 말이 그 말 같았다.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었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한 표를 아주 하찮게, 가볍게 사용해 버렸었다.
마흔 번째 생일이 막 지났다.
생일을 빌미로 오랜만에 연락해 온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한 친구랑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마흔이 되는 날이 오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었다!” ㅋ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느 한 시기를 끝마치고 다음 시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 삶 위에 새로운 삶이 얹혀져서 스펙트럼이 쭉 넓어지는 느낌이다.
난 이미 마흔이 되었지만, 17살, 20살, 26살, 30살의 장재휴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어서, 그때의 내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노트를 열고 손에 펜을 잡는 그 순간, 내 생각도 열린다.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그 생각을 쓰기 위해 노트를 펴는 것이 아니라
노트를 열 때, 그때 생각도 열리기 시작한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는, 그래서 포장할 필요가 없는,
멋있어 보이는 뭔가를 쥐어짜기 위해 힘을 줄 필요도 없고,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도 없고, 부끄러워 빼버릴 필요도 없다.
그렇게 온몸에 힘을 빼고 나면, 그제야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진짜 내 생각이 나오기 시작한다.
흰 종이에 한글자 한글자 써 내려가지는 딱 그 속도만큼만 생각도 흘러나온다.
평가 요즘 우리 회사는 평가 시즌이다. 먼저 스스로 자신의 성과에 대해 평가하면, 팀의 매니저가 한 번 더 평가를 해서, 두 가지 점수를 가지고 최종 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회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평가를 했었었다. 의미 없는 숫자놀음에 기가 차고 화가 치밀어 올랐던 사회 초년생 때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ㅋㅋ
나름대로 평가 항목과 기준을 세우고 내가 한 일에 대한 점수를 적어 넣었다.
내 점수는 78.9점.
그렇게 적어 넣어서 매니저에게 보냈는데 곧바로 회신이 왔다.
지난주 월요일 줌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추도 예배를 드렸다. 설교는 아버지가 하셨고, 아모스 5장 24절 말씀이었다. 정의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설교의 주 내용은 할아버지의 삶의 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시며, 정의로운 삶을 선택해서 그렇게 살아가셨던 할아버지의 삶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한 번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삶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을 배우며 살자는 말씀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배움이 있다. 많은 부분이 있지만, “돈”에 대한 가치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다.
지난 주일 한 고등학생 아이가 불쑥 이런 얘길 했다.
“쌤~! 노력이 나를 배신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그럴 수 있지. 근데 너 대단하다. 어떻게 이걸 벌써 깨달았어?”
노력은 종종 우리를 배신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일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 중에 나의 직접적인 노력으로 인해 얻은 부분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때론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이 얻기도 하고, 때론 열심히 했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돌아올 때도 있다.
주니어 시절, 욕심 많은 아이처럼 이 기술 저 기술을 목적 없이 마구마구 집어삼키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포켓몬 카드 수첩에 새로운 아이템 카드를 넣고, 그걸 쳐다보며 마냥 흐뭇해하는 그런 마음처럼, 새로운 기술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한번 써봤다는 것으로 우쭐해 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비즈니스 목표에 집중하고 그것을 동료들과 함께 이뤄가는 재미를 알고부터, 해결하려는 문제에 집중하고, 의미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재미에 빠져 몇 년을 보냈다.
올해 처음 접해본 것들 그러다 올해는, 다시 여러 새로운 기술들을 접하게 되었다.
살면서 넘어야 할 벽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친구와의 경쟁이나 학교 시험 등 자잘한 벽들을 마주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다.
아마 대부분 이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큰 벽은 대학 입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벽을 넘고 난다고 해서 내 삶이 순조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 후 취업의 벽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게 되고, 그 벽을 넘고 나면 그동안 잘 넘겨왔던 벽은 사소해 보이게 만드는 또 다른 큰 벽을 마주하게 된다.
매번 나타나는 그 벽을 깨부수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사회적 압박 속에서, 도장 깨기와 같은 피곤한 삶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