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줌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추도 예배를 드렸다. 설교는 아버지가 하셨고, 아모스 5장 24절 말씀이었다. 정의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설교의 주 내용은 할아버지의 삶의 한 부분에 관한 이야기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시며, 정의로운 삶을 선택해서 그렇게 살아가셨던 할아버지의 삶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한 번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삶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을 배우며 살자는 말씀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배움이 있다. 많은 부분이 있지만, “돈”에 대한 가치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그리 풍족하지 않았었다. 물론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 정도는 꽤 풍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자랐었다. 매번 겨우겨우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가며 (기적같이!!) 대학까지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는데, 와! 나한테 돈을 너무 많이 줘서 깜짝 놀랐었다!

학생 때는 아무리 돈을 벌어봐야 몇십만 원 단위였는데, 취업해서 급여를 받아보니, 몇백 단위의 돈이 통장에 찍히더라. 너무 신나서 그 돈을 그냥 다 써버렸다. 동기들은 재테크다 뭐다 해서 돈을 이리저리 쪼개서 여기 넣고 저기 넣고 하던데, 난 그냥 그 돈을 주말 4번 만에 다 써버렸다!
“오늘 내가 낼께”라고 말하고 계산대로 걸어가서 몇십만 원 나온 계산서를 보고 카드를 긁어 버리는 기분이 참 신났었다. 그렇게 4달 정도를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야근하고 한밤중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이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가면서 나도 모르게 어릴 때 교회에서 불렀던 이 찬양이 흘러나왔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위해 기뻐하리라”

아ㅡ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월급이 끊기고, 회사 짤리고, 통장에 돈은 바닥나고, 이런 상황이 이어지더라도.
그래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을까?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불렀던 이 찬양이 엄청난 고백이었구나.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이런 고백을 했었구나.

그리고, 평생 돈 없이도 풍족하게 사셨던 부모님의 삶이 생각났다.
가난한 삶으로 기꺼이, 적극적으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던 삶. 저 찬양의 가사처럼, 모든 것이 없어지더라도 주님 한 분만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는 삶.

그 삶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은, 그것을 가장 가까이서 봐 왔던 아들인 내가 여전히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나의 삶으로, 부모님의 삶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ㅡ 돈에 대한 마음을 이제 그만 빼내자!

요즘에도 어머니와 통화하면, 마지막 인사는 “돈에 욕심부리지 마라”다.
80세 노인이 60세 아들에게 여전히 “차 조심해라”라며 걱정의 잔소리(?)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우리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돈에 욕심부리지 마라”인 것 같다.

돈에 대한 욕심을 많이 내려놓은 것 같지만, 이런 건 방심할 때 바로 무너진다.
부모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전화 끊을 때마다 “돈에 욕심부리지 마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을 매번 들으며,
늘 그렇게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