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점짜리

평가

요즘 우리 회사는 평가 시즌이다. 먼저 스스로 자신의 성과에 대해 평가하면, 팀의 매니저가 한 번 더 평가를 해서, 두 가지 점수를 가지고 최종 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회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평가를 했었었다. 의미 없는 숫자놀음에 기가 차고 화가 치밀어 올랐던 사회 초년생 때가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ㅋㅋ
나름대로 평가 항목과 기준을 세우고 내가 한 일에 대한 점수를 적어 넣었다.
내 점수는 78.9점.
그렇게 적어 넣어서 매니저에게 보냈는데 곧바로 회신이 왔다.

“너 점수 이렇게 적으면 안돼. 너무 낮아”
“그래? 70점 정도면 나름 괜찮은 거 아니야?”
“어휴~ 내가 너 점수 좀 고쳐도 돼?”
“알아서 하세요~ㅎㅎ”

매니저는 몇 가지 항목을 더 만들어 채워 넣었고 점수가 조정되었다.

숫자놀음

학교 다닐 때 시험을 치고 나면 점수에 따라 대충 이런 식으로 갈렸던 것 같다.

  • 90점 밑으로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스터디 머신들.
  • 80~90을 왔다 갔다 하는 나름 괜찮은 노력파들.
  • 시험점수, 공부와 상관없이 나름의 신념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던 친구들.
  • 제일 애매한 친구들이 70점 언저리에 있던 친구들이었다.
    공부를 포기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 매번 시험 때마다 열심히 깜지 칠해가며 공부하긴 하지만 막상 채점을 해보면 틀린 것들이 속출한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니, 또 의미 없는 숫자놀음에 놀아나던 어린 시절과 그때의 친구들이 떠올라 쓴웃음이 지어진다 ㅋ

딱 70점짜리로 살자

70이란 점수는 재능이 없어도, 노력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점수인 것 같다.
그래서 난 딱 70점 정도로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목표를 70점 정도로 설정해 놓았을 때.

70이란 점수는,
자신감이 생기게 하고,
도전할 수 있게 만들고,
주춤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들고,
그래서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주고,
그러면서도 겸손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

날 조급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삶에 여유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다른 상상을 해 보는 것이 허용되고,
그것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진다.
웬만한 실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고,
뜻하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그 또한 내게 허락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상황에 순종하며 일상을 살아가게 해 준다.
이웃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그들을 통해 내 삶에 풍성함에 더해진다.

숫자놀음에, 순위놀이에 이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말자!

지안이도 아빠를 70점 정도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기억하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 능숙하게 척척 해내는 모습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리며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기억하면 좋겠다.
완벽하게 해 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 앞에서도 주춤하지 않고 시도하고 또 실패해보며 70점 정도의 수준에 겨우겨우 도달해서, 좀 부족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