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오랜만에 사무실 이야기다.

중국 회사에서 일한 지 일 년 반 정도가 되었다. 한번 이직해서 지금은 두 번째 회사다.
이번 회사에서는 회의에 참여 할 때가 많은데, 주로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설계 관련 회의다.
나는 아직 중국 친구들이 말하는 디테일한 내용까지 모두 다 알아듣지 못한다.
겨우겨우 이해해서 부족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자연스럽게 한 발 떨어진 관찰자 입장에서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때론 이런 나의 입장이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문제에 파고들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자연스럽게 퍼실레이터 역할을 하게 된다.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며 논의에 참여하는데, 회의에 참여하는 나를 관찰해보니, 이런 모습이더라.

  • 부분적인 정보가 모일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큰 그림을 구성해보려고 한다.
  • 격렬한 논의가 오갈 때는 잠깐 대화를 중단하고, 내가 이해한 부분을 다시 내 입으로 표현하며 확인해본다. 이때 다 같이 지금까지의 논의한 내용을 함께 리뷰해보는 효과가 있다.
  • (부족한 중국어 실력 때문에 ㅠㅠ) 말보단 그림 / 그림보단 코드 / 코드보단 동작하는 프로그램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 같이 눈높이가 맞춰진다.
  • 내가 회의 때 주로 하는 일은, 문제와 문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복잡한 상황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쏟아내며 문제라고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마다 난 차분히 복잡한 것들을 하나씩 뜯어서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그 부분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동료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 그 동료는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이 왜 문제가 아닌지 다른 동료들에게 설명해 보라고 하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젠 그건 문제 영역에서 빠지게 된다.
  • 그렇게 하나씩 문제 영역에서 끄집어내 보면, 마지막에 남은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더라. 여기까지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
  • 아직 진도가 나가지 않은 부분을 문제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건 그냥 걱정이다. 아직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런 건 문제가 아니라 Task라고 부르는 거라고 알려주고(안심시켜주고), 다음 작업 목록에 추가해 놓는다.
  • 하나라도 더 알아들으려고 매 순간 집중해서 듣게 되는데, 그래서 이전 회의 내용이 꽤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가끔 예전에 논의했던 문제가 또다시 논제로 등장할 때가 있는데, 난 그걸 귀신같이 찾아낸다.

“이거 지난번에도 얘기하지 않았어? 왜 같은 논의를 또 하지?
너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때 이후로 진도가 하나도 안 나간 것 같아”

이렇게 얘기하면, 진도를 나갔던 개발자가 나타나서 자신이 진행한 일을 이야기한다.
(사실, 난 그 개발자가 무엇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 ㅎㅎ)

“지난번 논의 후, 뭔가 진도가 나갔으면, 문제가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아직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당연히 해결되지 않았겠지. 내 말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는데 달라진 상황을 받아들여 문제를 재구성해봐야 한다는 말이야.” “우리가 매일 일하는 만큼, 문제정의도 매번 바뀌어야 하는 거야”

진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