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안에서의 삶

장재휴
지난 수요일에 에버랜드에 갔었다. 사파리 버스를 타고 호랑이, 사자, 곰들을 봤다. 그 가엾은 동물들은 버스 창 바로 앞에까지 와 개인기를 부리며 꼬맹이들의 입에서 환호성을 불러내 주었다. 사자 암수 한 쌍씩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암수가 같이 있는 게 사이가 좋아 보인다. 6~7쌍 정도 있어 보였는데, 모두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 평화로움이 슬펐다. 원래 사자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보통 수사자 하나에 암사자 여러 마리와 새끼들이 한 무리를 이룬다. 사냥은 암사자의 몫이고 수사자는 그냥 어슬렁거릴 뿐이다.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장재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담임 선생님은 할아버지였고 대머리였다. 깡마르고 키가 컸었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그날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었을까? 하필 그날 난 준비물인 원고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원고지 없이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시더니 때리시다가 발길질을 하셨다. 나는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선생님은 나를 짓밟으며 소리를 지르셨다. “원고지 가져오라고, 원고지!” 대구에 살다가 대전으로 전학을 간 나는,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반에 친한 친구가 없었다. 반 아이들은 나를 “사투리”, “촌놈"이라고 놀렸다.

아버지의 뒷모습

장재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버지는 앞서 걷는 사람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엄마 손을 잡고 옆으로 늘어져서 걸었고 아버지는 서너 발 앞에 있었다. 걸음걸이도 빨랐다. 아버지는 지난달에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이제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신다. 세월이 많이 지났구나. 아버지는 경주 관광공사에서 노조 지부장을 하셨다. 앞장서서 운동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지금 시대에 노동 운동을 한다는 건 목숨을 바치는 거구나. 어차피 목숨을 바칠 거라면 하나님께 바치자.’ 바로 사표를 쓰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나중에야 알았다.

책을 대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

장재휴
책을 멀리했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이 책도 안 읽었어?“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초등학생 때 으레 읽었어야 할 동화책도 안 읽었으니 그런 말 들을 만하지.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때 한 친구는 “넌 사람에게 관심 없잖아” 라고 말했다. 사람보단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무언가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다채로운 책의 맛을 알아갔다. 다채로운 사람의 맛을 알아갔다. 한줄한줄 꼼꼼히 노트해가며 읽는다. 이럴 땐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책 한 귀퉁이에 생각이나 질문을 적어 놓으면, 책을 읽어나가다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성공

장재휴
오랜만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셋이 식사를 했다. 결혼한 이후로는 늘 아내와 동행했고 자녀가 생기고 나서는 항상 손녀에게 관심이 먼저 갔다. 이렇게 엄마 아빠랑 식사한 게 몇 년 만인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하이데어 이야기가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창업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용케도 버티고 있다. 돈은 이미 바닥이 났지만 겨우 월급 날짜에 맞추어 돈벌이가 생긴다. 딱 한두 달 치 일이 생겼다가 돈이 바닥나고, 또 다음 월급날이 다가오기 며칠 전에 작은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계약금이 들어온다.

느리게 사는 방법: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니기

장재휴
시집이면 좋겠다. 아니어도 괜찮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빨리 읽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이었잖아.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 다니엘 페낙 맞는 말이다. 원래 내 시간이 아니었다. 지하철에 잡아먹힌 시간이었는데 책이 그 시간을 도로 훔쳐왔다. 그러니 조급함은 내려두고 천천히 읽자. 말 그대로 잉여읽기다. 지하철에서 내려 환승구로 간다. 썰물 빠져나가듯 사람들이 쑤욱 지나가는데 나 한혼자만 유유자적. 이 기분도 괜찮다. 이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다. 무리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시끌벅적한 출근길,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책리뷰]그리스인 조르바

장재휴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009 저자 정보 니코스 카잔차키스. 1883년 크레타에서 태어났다. 내가 1982년생이니 나와 99살 차이다. 당시 크레타는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다. 카잔차키스는 기독교인 박해와 독립전쟁을 겪으며, 그리고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며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켰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여행은 그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유와 여행, 뭔가 어울린다. 베르그송과 니체 그리고 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1917년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를 만난다.

[책리뷰]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장재휴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한문화, 2018. 저자정보 1948년 출생. 전 세계에 글쓰기 붐을 일으켰다. 25년간 이어온 선(禪) 체험과 글쓰기를 접목시켜서 혁명적이고 강력한 글쓰기 방법을 소개했다. 『글 쓰며 사는 삶』, 『인생을 쓰는 법』, 『구언으로서의 글쓰기』, 『버리는 글쓰기』 등을 지었다. 내용요약 글 쓰는 노하우에 대한 글이다. 내면의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그것을 끌어내는 쓰기를 권하는데, 제목 그대로다.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소감 헷갈릴 때,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까? 이것에 대한 나의 방법은 “처음 생각을 떠올려보자"이다.

나의 인생책 - 『뿌리』

장재휴
알렉스 헤일리, 『뿌리』, 열린책들 내용 『뿌리』의 주인공 “쿤타킨테"는 1750년에 서아프리카 감비아에서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아주 건강하고 늠름한 소년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17세 쯤 되던 어느 날, 흑인 사냥꾼들에게 잡혀 미국으로 끌려가게 된다. 끌려가는 과정은 죽음을 통과하는 듯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미국에 도착한 이후에는 더한 고통이 이어졌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프리카로 돌아가려는 희망을 잃지 않았던 쿤타킨테는, 한 백인 주인에게 팔려가 손과 발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리는 그날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하고 잡히고, 또 탈출하고 또 잡히고….

[책리뷰]빌뱅이 언덕

장재휴
권정생, 『빌뱅이 언덕』, 창비, 2012 저자 정보 권정생. 1937~2007.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빌뱅이 언덕 작은 흙집에서 살았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얻은 병마와 싸우면서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의 횡포를 비판한 사상가이자 전쟁을 반대하고 통일을 염원한 평화주의자, 교회의 잘못을 꾸짖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걱정하였고,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