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빌뱅이 언덕

권정생, 『빌뱅이 언덕』, 창비, 2012

저자 정보

권정생. 1937~2007.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빌뱅이 언덕 작은 흙집에서 살았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얻은 병마와 싸우면서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의 횡포를 비판한 사상가이자 전쟁을 반대하고 통일을 염원한 평화주의자, 교회의 잘못을 꾸짖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쟁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걱정하였고,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이를 키운 부모라면 한번은 들어보았을 책인 「강아지똥」을 지었다. 「몽실 언니」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사과나무 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먹구렁이 기차」, 「깜둥 바가지 아줌마」 등 많은 어린이책과,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을 펴냈다.

내용 요약

작가가 살아오면서 쓴 여러 글을 묶어서 낸 책이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말에 태어나 해방, 한국전쟁, 새마을운동 등 한국사를 관통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가장 가난한 삶을 살아오면서 그때의 이야기를 글로 써냈다. 그래서 슬프고 먹먹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절망에서 그치지 않는다. 희망을 얘기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진정한 사람다움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연에 대해, 신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감

권정생 선생님 같은 분이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삶을 살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그런 삶/생각을 글로 남겨 주셔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너무 감사하다.
빠르게 술술 읽힐 거라 생각했는데 빨리 읽을수가 없었다. 한편씩 읽을 때마다 생각에 잠겼다.
소박한 삶의 이야기 중간에 그의 신념이 나타난다.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삶이다. 그래서 겸허해진다. 담백한 그의 메세지가 강력하게 다가온다.

  • 「공부하는 삶」을 읽으며 든 생각:
    진짜 공부를 하게 되면, 엄청나게 성장한다. 좀 나아지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왜냐하면, 공부는 단순히 나의 실력을 늘리는 게 아니라 숨겨져 있는 보물(진리)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물을 하나하나 발견해 갈 때마다 내 안에 보물이 쌓여갈 테고, 그렇게 하는 성장은 조금씩 나아지는 수준이 아니다. 완전 변신하는 수준이다.

  • 「읽기의 말들」을 읽으며 든 생각:
    근데, 그 공부는 나를 점점 가난하게 만든다. 더 낮아지게 만든다. 돈/명예/권력 이런 거랑은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것을 향해 있지 않거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삶을 봐도 그렇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 인정(주목)받지 못했다. 죽고 나서야 겨우 그들이 발견한 보물이 드러나고, 나중에서야 사람들이 그 이름을 기억한다.
    (「읽기의 말들」에 이런 내용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희안하게 「읽기의 말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빌뱅이 언덕」을 읽으며 든 생각:
    그렇게 진짜 ‘공부하는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부하는 삶」에 ‘빛을 운반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권정생 선생님은 숨어있는 빛(진리)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에게까지 운반해 주셨다.

나에게 도전한다.
자ㅡ 그래도 공부를 할 텐가…?
그래서 공부를 소명이라 하나보다.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스스로 자신의 산문집을 내지 않았다. 이 책도 그가 생전에 쓴 글들을 모아서 펴낸 책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문제의식을 다루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는 그런 책보다 동화, 산문, 시 등을 지었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권의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17)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스스로 터득해 가는 자유로운 교육이다. 학습은 곧 자습이어야 하며 주입시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 (230)

이렇게 말한 것 처럼, 자연 속에서 가난한 삶을 살며 스스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대안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사람다운 모습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화를 써 가셨을까?
작가의 마음속에 담겨있는 빛/진리를 세상에 운반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동화)“를 택하신 것 같다.
내가 저자라면.. 잘 모르겠다. 그냥 저자의 심정을 상상해 볼 뿐이다.

공명하는 글 또는 책

저자는 가난한 삶을 긍정한다. 아니, 지향한다. 모든 존재가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난한 삶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것이 진정 축복의 길이라 얘기한다. 팔복이 떠올랐다

마태복음 5:3~12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반짝이는 구절

  •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은 훈시나 설교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 속의 인간보다 잘 보존된 자연 속의 인간이 훨씬 인간답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권의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17)
  • 그러면서 그들은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빛깔로 세상을 밝혀 주고 있다.(18)
  • 공존은 성스럽다. 이웃 사랑은 남의 것을 빼앗지만 않으면 된다 (18)
  • 정신 장애자가 아닌 인간은 이젠 이 지구상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다 미쳐 버렸는데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누구에게 배운단 말인가?
  • 길 잃은 양처럼 떠나간 청년을 생각하니 이 넓은 기도원엔 예수님이 안 계신 것 같았다. (36)
  • 결국 하느님의 섭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은 약하지 않은가? (43)
  • 나는 그때부터 나사로와 입장을 함께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기로 했다. …(중략)… 나는 거지 나사로를 알고부터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했다.(45)
  •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가장 인간스럽게 사는 것이다 (46)
  • 예수가 베드로에게 물은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 죽음에서 이긴 하느님의 아들이 어째서 그토록 간곡히 사랑을 구했을까? …(중략)… 예수는 인간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47)
  • 나의 신앙은 이렇게 사람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족하다. 사람을 낚아 그를 사랑하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길이 된다. (47)
  • 돈은 돈만 벌지 않고 악을 낳고 퍼뜨리는 악마다. 나는 그래서 그 돈에 복종했고 내 조그만 양심을 속이게 되었다. ..(중략)… 나도 악마들의 세상에 길들여진 것이다.(60)
  • 아무리 훌륭한 일도 정신을 잃고 맹목적으로 끌려가면 모두 악마로 둔갑해 버린다.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61)
  • 세상이란 또 이렇기도 했다. 돈은 돈을 낳고 그 돈이 쌓이면 악을 낳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61) (그래서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시나?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선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난한 것은 아닐까? 가난 =>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
  • 이 세상의 모든 교육은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좀 더 편리하고 풍요하게 살기 위한 교육이 되어 버렸다. (67) …(중략)… 공부는 오직 편하게 살기 위한 수단이다 (68) …(중략)… 그러니 지식이란 살아가기 위한 무기일 수밖에 없다.(69) 그러고 보니 결국 교육은 힘을 기르기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279)
  • 그러니 제일 먼저 반항을 하고 떠나가 버린 머슴은 머슴 사회에서는 선구자며 혁명가였다. 혁명가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되고 공정치 못한 일이면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바로 고쳐 나가는 사람이다. 개인의 사소한 일이나 사회와 국가의 일 모두가 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공부하는 마지막 목표다. (72)
  • 혹시나 10대의 어린 나이에 좌절을 겪는 청소년이 있다면 경쟁 사회에서 벗어나 가난한 인생을 살도록 권하고 싶다. …(중략)…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푸른 하늘 밑에서 여덟 시간 일하고 이웃과 더불어 가난하게 사는 것이다. (74)
  • 그러나 나에겐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하느님이 부과해 준 소중한 내 인생이 마련되어 있었다. (82)
  • 책은 읽고 나서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책 속에서 무언가 찾아내어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그게 당연한 것이며 그래야만 책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중략)… 100퍼센트 일치하지 않더라도 어느 한 부분은 실생활에서 느끼고 삶에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105)
  • 꼴찌한테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자유라는 것이다 (122)
  • 가난한 사람에게도 우주는 그만큼 너그럽다. 작은 것으로, 느리게 꼴찌로 뒤처져 살아도 자유로운 삶이 있다. 자유로운 꼴찌는 그만큼 떳떳하다. (123)
  • 결국 자연 속에서 살아야만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161)
  • 예수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렇게 눈물겹도록 힘겹게 살았다. 눈먼 거지의 빛이 되고 절름발이와 앉은뱅이와 난쟁이의 친구가 되었다. 세리와 창녀와 간질병 환자와 귀신 들린 자와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웃에게 따돌림받은 이들의 따뜻한 친구가 된 예수, 그가 우리의 구세주인 것이다 (167)
  • 슬플 때 함께 슬픈 노래 부르고 기쁠 때 함께 기쁜 노래 부르면, 그것이 찬송이 되고 기도가 되고 예배가 되는 것이다. 구하기 전에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든 걸 주셨다. (168)
  • 거기서 땀 흘려 일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들의 몫이다. 더 이상 무엇을 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살 만큼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다. (168)
  • 신을 찾는 길은 나를 찾는 길이며 신의 응답은 나의 의지를 확인하는 체험인 것이다. (173)
  • 그러나 기쁜 일에만 관심을 둔다면 슬픔을 당한 이웃의 고통은 갑절이나 더 늘어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린이날 부모님과 함께 놀이터로 극장으루 구경을 다닐 때, 그늘에서 구경만 하는 아이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어머니가 되고, 자식이 달아주는 카네이션꽃이 자랑스럽게 여겨지거든 슬픔을 당한 이웃의 어머니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184)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가난한 마음으로 서로를 믿고 살 수 있을까? (189)
  •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는 사람을 믿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189)
  • 밥은 세끼 먹고 나면 다시 배가 고파지지만 책은 한 번 읽으면 영원히 가슴에 남는다 (196)
  • 정의롭고 씩씩하면서도 따뜻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이면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을지 모른다. (200)
  • 인생에서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200)
  • 다시 말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좀 더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다. (201)
  • 시험 점수 1등을 하고도 배부른 돼지밖에 되지 못하는 공부를 목숨 걸고 하는 것은 모두가 미쳤기 때문이다. (201)
  • 다시는 하느님을 이용해선 안 된다. 성서는 불의와의 타협에 쓰이는 병법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어떤 신분이나 지위보다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참모습을 볼 줄 알자. 그래서 가난한 세상을 만들어야만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221)
  •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 그대로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어른들의 세계가 바르고 정직하면 아이들도 정직할 것이다. …(중략)… 그래서 아이들의 문제는 곧 어른들의 문제로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228)
  •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스스로 터득해 가는 자유로운 교육이다. 학습은 곧 자습이어야 하며 주입시켜서는 절대로 안 된다. (230)
  • 그러니까 이 세상은 어느 누구라도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의 임무를 지니고 일하게 되어 있다. 절대자라는 신마저도 혼자 힘으로는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고 모두의 것이다.(231)
  • 가장 귀한 것은 남을 속이지 않고 자신도 속이지 않는 것이다. (234)
  • 그래서 모두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가난을 지켜야 한다. 가난만이 평화와 행복을 기약한다. 가난이란 바로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다. (241)
  • 인간의 아름다움은 노동에 있다. 놀고 먹는 사람만큼 추한 것은 없다. 노동은 가난이 무엇이고 고통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한다. 가난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인간은 행복을 얻지 못한다. (262)
  • 스스로 심고 가꾸어 거둬들인 열매를 먹는 기쁨은 가장 축복받은 인간만의 행복이다. (263)
  • ‘삶이 괴로울수록 우리 아이들에게나마 나의 실패한 인생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다.(280)
  • “복순아, 가난할수록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착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아무도 못 빼앗아 간단다. 우리 못 먹고 못 입어도 꽃 한 송이 참새 한 마리도 끝까지 사랑하자꾸나” (282)
  • 사랑 사랑 하다 보니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사실까지 덮어 버리고 양가죽을 뒤집어쓴 이리 같은 사기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겸손은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알량하고 비굴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복종만이 신앙의 도리로 알고 맹종하다 보니, 이젠 마귀의 명령에도 굽신대는 절대적인 착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285)
  • 다만 저는 잃어버린 진짜 하느님을 찾고 싶습니다. 진짜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마귀에게까지 복종하는 절대 복종에서 해방되고 싶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요 할 수 있는 떳떳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286)
  • 김 목사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바로 이런 하느님입니다. 버림받아 실패하는 하느님, 얼마나 멋있는 하느님입니까? (289)
  •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을 지닌 사람은 절대 남의 자리보다 높아지려 하지 않습니다. (296)
  • 김 목사님, 가난한 삶이란 곧 떳떳한 삶일 것입니다. (303)
  • 예수가 이루어 놓은 삶의 정상은 바로 가난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303)
  •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혼자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과의 공동 작업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05)
  •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잘사는 사람들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섭섭하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힘으로도 사랑하는 예수님을 불쌍한 사람들 곁에서 빼앗아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314)
  • 그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더워졌다. 그를 앞에 놓고 심각한 인생철학 같은 망상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실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다. (323)
  • 창섭이는 어쩌면 가장 무거운 소명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난 천사인지 모른다. (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