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새벽이다. 오늘도 1부 예배를 드리고 어린이 부서로 간다. 약간의 압박이 있다. 압박이 있으면서도 살짝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 꼬맹이들이 예배당에 들어오는 걸 보면 반갑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환하게 웃게 된다.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하다. 아이들한테 이런 감정이 생기다니..
귀찮은 존재,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어린아이들이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자주 봐서 그런가?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 자주 보는 꼬맹이들한테 늘 마음이 열렸던 건 아니다. 나의 의지가 있었나? 조금은.
오늘, 한국에 들어온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북경에서의 시간을 다시 회상해본다.
돌아보니 중국에 있으며 아래 3가지를 배운 것 같다.
생존법 사람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괜히 연말 분위기에, 지난 시간을 돌아볼 겸 각각에 대해 한편씩 글을 써 볼까 한다.
‘재미있으면 쭉 살고, 재미없으면 돌아가지 머’
처음에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중국 생활이 7년이나 이어질 줄이야…
2015년 12월에 중국에 왔다. 아내가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주재원 임기가 3년이니 재미없으면 임기만 딱 끝내고 돌아오면 될 테고, 재미있으면 그냥 내가 돈을 벌면서 거기서 쭉 살면 되겠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보시기에 좋았단다.
창조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나님은 실패했다. 자신의 피조물에게 반역 당했다. 어쩌면 예정된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그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면 사랑밖에 못 하도록 해야지,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으니 실패가 보장된 길이다. 선악과도 그렇다. 뭐든지 마음대로 먹으라 해 놓고 딱 하날 먹지 말라니 원 참. 제 뜻대로 해도 좋은 사람은 자유롭게 그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과일을 따 먹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판을 흔쾌히 짜고 그 안으로 기꺼이 침투하신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젠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또, 이 찬양을 부르는데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린이 부서 예배시간, 꼬맹이들 틈 속에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마음 한켠이 따뜻해져 왔다.
어릴 때 1,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지난 수요일에 에버랜드에 갔었다. 사파리 버스를 타고 호랑이, 사자, 곰들을 봤다. 그 가엾은 동물들은 버스 창 바로 앞에까지 와 개인기를 부리며 꼬맹이들의 입에서 환호성을 불러내 주었다.
사자 암수 한 쌍씩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암수가 같이 있는 게 사이가 좋아 보인다. 6~7쌍 정도 있어 보였는데, 모두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그 평화로움이 슬펐다.
원래 사자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보통 수사자 하나에 암사자 여러 마리와 새끼들이 한 무리를 이룬다. 사냥은 암사자의 몫이고 수사자는 그냥 어슬렁거릴 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담임 선생님은 할아버지였고 대머리였다. 깡마르고 키가 컸었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그날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었을까? 하필 그날 난 준비물인 원고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원고지 없이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시더니 때리시다가 발길질을 하셨다. 나는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선생님은 나를 짓밟으며 소리를 지르셨다. “원고지 가져오라고, 원고지!”
대구에 살다가 대전으로 전학을 간 나는,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반에 친한 친구가 없었다. 반 아이들은 나를 “사투리”, “촌놈"이라고 놀렸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버지는 앞서 걷는 사람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엄마 손을 잡고 옆으로 늘어져서 걸었고 아버지는 서너 발 앞에 있었다. 걸음걸이도 빨랐다. 작년 10월 아버지는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이제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신다. 세월이 많이 지났구나.
아버지는 경주 관광공사에서 노조 지부장을 하셨다. 앞장서서 운동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지금 시대에 노동 운동을 한다는 건 목숨을 바치는 거구나. 어차피 목숨을 바칠 거라면 하나님께 바치자.’
바로 사표를 쓰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책을 멀리했었다. 아내에게 “어떻게 이 책도 안 읽었어?“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초등학생 때 으레 읽었어야 할 동화책도 안 읽었으니 그런 말 들을 만하지.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때 한 친구는 “넌 사람에게 관심 없잖아” 라고 말했다. 사람보단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무언가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다채로운 책의 맛을 알아갔다. 다채로운 사람의 맛을 알아갔다.
한줄한줄 꼼꼼히 노트해가며 읽는다. 이럴 땐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책 한 귀퉁이에 생각이나 질문을 적어 놓으면, 책을 읽어나가다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랜만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셋이 식사를 했다. 결혼한 이후로는 늘 아내와 동행했고 자녀가 생기고 나서는 항상 손녀에게 관심이 먼저 갔다. 이렇게 엄마 아빠랑 식사한 게 몇 년 만인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하이데어 이야기가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창업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용케도 버티고 있다. 돈은 이미 바닥이 났지만 겨우 월급 날짜에 맞추어 돈벌이가 생긴다. 딱 한두 달 치 일이 생겼다가 돈이 바닥나고, 또 다음 월급날이 다가오기 며칠 전에 작은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계약금이 들어온다.
시집이면 좋겠다. 아니어도 괜찮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빨리 읽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이었잖아.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 다니엘 페낙
맞는 말이다. 원래 내 시간이 아니었다. 지하철에 잡아먹힌 시간이었는데 책이 그 시간을 도로 훔쳐왔다. 그러니 조급함은 내려두고 천천히 읽자. 말 그대로 잉여읽기다.
지하철에서 내려 환승구로 간다. 썰물 빠져나가듯 사람들이 쑤욱 지나가는데 나 한혼자만 유유자적. 이 기분도 괜찮다. 이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다. 무리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시끌벅적한 출근길,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