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컴플렉스

어젯밤, 지안이를 재우면서 기도를 하는데, 지안이가 이렇게 기도 제목을 얘기한다.
“내일 아파서 학교 안 가게 해 주세요”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떨리나 보다. 아파서 학교에 안 가게 되면, 발표를 안 하고 넘어가게 될 텐데. 그렇게 그 상황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도 그랬다.
나도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사람들 앞에 나가서 말하는 거였다.
어쩔수 없이 앞에 나가야 할 때면,
“이번 수련회 어땠어?” 와 같은 아주 간단한 질문 앞에서도 버벅거리며 바보처럼 웅얼거리다 들어왔고, 매번 “아ㅡ 왜 이렇게 말했지? 이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라며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들어왔었다.
앞에만 나가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냥 바보가 된다.
초중고등학교 쭉 그랬었고,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별 프로젝트를 할 때도 앞에서 발표하는 것만 피할 수 있다면 다른 걸 다 도맡아 했었다.

그렇게 도망만 다니다가, 입사 1년 차 때 피할 수 없는 기회(?)가 왔다.
입사한 지 1년이 되었을 때, 1년 뒤에 들어온 후배 신입사원들 앞에서 1시간 동안 강의를 해야 했었다. 누군가에겐 별일 아닐 수 있으나, 나에겐 정말 너무너무너무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더이상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하기 싫으면 그냥 배 째고 안 해도 되는 학생이 아니었다. 못 할 것 같으면 팀장님 찾아가 “전 그런 건 못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얘기하던가, 아니면 군소리 말고 해야 했다.
난, 1시간 강의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오프닝 멘트부터 농담, 그 농담에 예상되는 반응과 그 반응에 대한 나의 대응까지 여러 케이스들에 대한 대본을 다 써보고 그 대사를 다 외워버렸었다. 밤마다 집 옆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혼자 돌면서 대사를 중얼중얼 외우며 연습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1시간짜리 강의를 달달 외워서 후배들 앞에서 강의를, 아니 연기를 했었다.

두 번째 고비.
2007년 중국에 IT 개발센터를 세웠고, 중국인 친구들을 첫 직원으로 뽑았는데, 거기에 2주 동안 기술 교육을 하러 가야 했다. 당연히 그 자리는 내가 갈 자리가 아니었다. 원래 팀 선배가 가야 했었는데, 다른 중요한 일과 겹쳐서 중국 출장을 못 가게 되었고, 중국에서는 “그냥 장재휴라도 보내줘~“라고 얘기했단다.
아ㅡ 왜 이런 일이…
1시간 강의야 그냥 달달 외워서 하면 됐었지만, 2주 강의를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잔뜩 쫄아있는 나에게, 당시 북경개발센터 센터장으로 계셨던 신재웅 선배님이 이런 얘기를 해 주셨다.

“강의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뭔지 아니?
바로 텔레파시야.
그 텔레파시는 어디서 나올까?
말하는 사람의 진실함에서 나오는 거야.
진실되게 자기 얘기를 하면 거기서 텔레파시가 청자에게 전달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성공적인 강의가 될 거야.”

그 말에 힘을 얻었다.
그렇게 두 번째 고비를 넘겼다.

29살때 교회 청년부에서 임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맡은 역할은 매주 예배 후 앞에 나가 광고를 하는 거였다. 예배가 끝나면 앞에 나가 1새로 온 사람 환영하고, 2중요한 소식 이야기하고, 그런 얘기정도 하고 내려오면 그만이었는데,
아ㅡ 그 자리가 그렇게 무서웠었다.
내가 잘 하는 거, 통째로 외우기.
난 고작 3분 남짓한 광고 멘트를 매번 대본을 써서 달달 외워서 앞에 나갔었고,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연습한 걸 그대로 연기했었다. 일 년 동안 매주 그렇게 했었다.

자발적으로 발표 자리에 나섰던 첫 번째는, 2014년에 있었던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GDG Korea DevFair 2014였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Go 언어를 처음 도입 했었는데, 그때 당시 Go 언어는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언어여서 자료도 부족하고, 사용해본 사람은 극소수였다. 혼자 하기 외로워서 Go 커뮤니티를 기웃거려봤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하는 발표 내용을 들어보니 대부분 샘플코드 돌려보는 수준이었다.
“난, 실제 환경에 적용해서 런칭까지 해봤는데!”
저 정도 발표는 나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해 겨울 열렸던 Google 개발자 컨퍼런스에 “Introduction to Go"라는 제목으로 스피커 신청을 했다. 여전히 떨렸지만, 우리나라에서 나만큼 Go 언어를 제대로 사용해 본 사람은 없을 거라는 근자감이 나를 발표 자리로 이끌었다. 역시나 난,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며 발표 준비를 했었다.
발표 당일, 행사장에 간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발표 무대에 노트북, 또는 발표 스크립트를 놓는 단상(?) 같은 게 없었다. TED 강연같이, 뒤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고 그 앞 텅 빈 공간에 마이크만 잡고 서서 발표해야 하는, 그런 무대를 만들어놓은 거였다.
센스없는 사람들. 개발자 컨퍼런스 무대를 그렇게 만들어 놓다니;;;;
내 순서가 되어 무대로 올라갔고. 준비된 오프닝 멘트를 시작한 나에겐 발표 스크립트는 더이상 필요가 없었다. 연습을 정말 너무 많이 해서 그냥 입에서 줄줄 나왔다. 질문한 분들도 꽤 있었는데, 그것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내가 모르면, 우리나라에 그걸 아는 사람은 없을꺼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근자감으로 발표를 잘 마무리했고, 그것을 계기로 책도 쓰게 되었다.

그래도 발표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살짝 밀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볼 기회가 있었다.
2015년, Dave Cheney라고 하는, Go 커뮤니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개발자가 한국에 왔었고, 그때 맞춰서 한국에선 Go 밋업 행사를 꽤 크게 준비를 했었다. 난, 동경하던 Dave Cheney와 조금이라도 말을 섞어 보고 싶었고, 그러려면 그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그가 나오는 행사에 나도 스피커로 신청했고, OOP in Go 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었다.
내가 발표를 했던 목적은 단 한 가지, Dave Cheney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것. 그가 내 발표에 관심을 두길 바라면서 일부러 발표 슬라이드도 영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준비한 것이 있었는데, Dave Cheney의 발표를 미리 예습하는 거였다. 그가 하는 발표를 주제로 대화의 썰을 풀어가는 게 제일 자연스러울 텐데, 나의 영어 실력으로 그의 발표를 한번에 알아듣는 건 불가능. 유튜브에서 같은 주제로 발표했던 그의 영상을 찾아 반복해서 보며 그의 발표를 미리 예습해 갔었다.
근데, 그 날 Dave Cheney의 발표는 충격이었다. 그는 발표를 너무 못 했다. 그는 앞에서 말하는거에 너무 서툰 사람이었다. 미리 써놓은 스크립트를 들고 나가서, 사람들 한번 쳐다보지 않고, 그냥 고개 푹 처박고 대본만 보며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더라. 게다가, 유튜브에서 봤든 그 영상이랑, 정말 토시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하더라.
아ㅡ 무슨 발표를 저렇게 해…
근데 신기한 게, 그 발표는 아주 좋은 발표였다. 내용이 아주 좋았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발표에서 중요한 건 스킬이 아니란 걸 Dave Cheney의 발표를 보며 깨달았다.

그래, 그냥 내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잘 전달하면 되는구나.

2018년 북경 한인교회에서 우간다에 아웃리치를 갔었고, 아웃리치를 갔다 와서 전 교인 앞에서 선교 보고 발표를 해야 했었다. 그때 내 마음은 단 한가지였다.
“모든 성도 분들이 함께 했다는 마음이 들도록 잘 전달하자!”
중국의 한인 사회 경기가 그리 좋지 않던 그 시절, 많은 분들이 조금씩 후원을 해 주셨다. 다들 어려우실 텐데, 예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손을 모아 주셨고, 많은 분의 후원으로 우간다 아웃리치를 갔다 올 수 있었다. 그 아웃리치를 갔다 온 후 나의 마음은,
“이번 선교는 우리 교회 전체가 다 같이 한 거다. 아웃리치팀은 온 교회가 참여하는 선교에서 직접 우간다에 다녀오는 역할을 맡은 것뿐이다. 교회의 모든 성도님이 모두 우간다 아웃리치 팀이었고, 우간다 직접 갔었던 우리는 우간다에서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의무가 있다. 함께 선교했다는 마음이 들도록 잘 전달하자.”
앞에 나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아서 선교 보고를 했고, 우리의 그 마음이 성도 분들께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전달하면 되는구나.

발표하는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많이 해보면 좀 나아질까?
2020년 가을, 문화센터에서 12주 동안 “책읽어드립니다” 강연을 했었다. 당시 설민석씨의 “책읽어드립니다"를 즐겨 봤었는데, 딱 그 컨셉으로, 사람들에게 매주 한 권씩 책 이야기를 풀어 해 주는 거였다.
이걸 한 목적은, 단 하나. “매주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떠들다 보면 좀 더 편안하게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빵구내지 않고, 아무리 준비를 못 해도 도망가지 않고, 망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쪽팔려가며 망하자라고 다짐했고. 어쨌든 한 번도 빼먹지 않고 12주동안 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좀 나아졌나? 잘 모르겠다. ㅋ
그 대신, 책을 파헤치며 읽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면 여전히 떨린다.
요즘에도, 20명 남짓 모이는 고등부 아이들 앞에 설 때도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간다.
대중 앞에 서는 그 자리가 여전히 무섭고, 긴장된다.
하지만, 앞에 나가서 전달해야 할 메세지가 있기에, 그 긴장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간다.
“해야 할 말을 잘 전달하고 내려오자.”
그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앞으로 나간다.

아빠는 앞에서 말할 때 안 떨려?”
“아빠도 엄청 떨려. 그 떨리는 마음 그대로 안고 앞에 나가는 거야”

지안이가 그 벽을 쉽게 뛰어넘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수십 년이 걸렸으니까.
지금쯤 학교에서 발표하고 있겠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그대로 끌어안고, 그 시간을 통과해내길 응원해본다.
두려움 같은 거 전혀 없이 막 도전하는 그런 당찬 모습보다, 두려움을 끌어안고 가슴 떨리는 긴장감으로 그 시간을 통과해 낼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길 응원한다.

두려움을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
그게 진짜 강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