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해내는 비법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는 것을 해내는 것이다.

전문적인 기술이라 하기엔 좀 잡스러운(?) 느낌이 있긴 하지만,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르는 이 능력(?)에 대해 궁금해졌고, 이것을 진지하게 파헤쳐보고 싶어졌다.

경험들

일단 나의 경험에 대한 썰을 먼저 풀어본다.

오스트리아(독일어)에서 억울한 벌금 환불받기, 2007년

2007년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서 벌금을 내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그건 단순한 의사소통 문제였고, 내가 부당한 벌금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벌금을 돌려받으러 갔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영어는 전혀 못 하고 독일어밖에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우긴 했지만, 1부터 10까지 숫자 세는 것조차 까먹은, 완전 백지상태였다.

결국 내가 부당하게 내었던 벌금을 다시 돌려받았다!

중국 친구들에게 프로그래밍 강의, 2007년

2007년 겨울, 중국 북경에 개발센터를 세우고 첫 신입 직원들이 들어왔다.
나의 역할은 그들에게 2주 동안 프로그래밍 강의를 하고 오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중국어 실력은 안녕하세요(你好)정도 할 줄 알았고, 먼저 와 있던 선배에게 신호등(红绿灯), 오른쪽(右拐), 왼쪽(左拐) 딱 이 세 단만 배워서 택시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수준이었다. 직진(直走)이라는 말을 몰라서 여러 번 택시 기사를 당황하게 했었다(나는 당황하지 않았음 ㅋㅋ)

나의 강의를 통역하던 조선족 친구는 IT 관련 내용을 통역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루 만에 관둬버렸고, 부랴부랴 교육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IT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프로그래밍 강의를 통역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교육생들이 직접 강의를 준비해서 하도록 하고 서로 질문을 주고받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그 친구들의 표정, 말투, 액센트, 뉘앙스, 몸짓 등을 보고 그들이 이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눈치껏 판단해야 했다.

어쨌건 2주간 교육을 잘 마쳤고, 이후 이들과 꽤 큰 프로젝트도 같이 했다.

그 친구들은 쭉ㅡ 남아서 회사의 기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세네갈(프랑스어)에서 2주간 여행하기, 2010년

2010년, 서아프리카의 감비아(서아프리카의 유일한 영어권 국가)를 목적지로 정하고 여행을 떠났다.
감비아로는 비행기를 타고 바로 갈 수가 없어, 먼저 세네갈에 내려 거기서 육로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세네갈에 내린 첫날, 세네갈의 매력에 빠져 버렸고, 감비아로 가지 않고 그냥 세네갈에 눌러앉았다.
세네갈에 한동안 머물다가, 원래의 목적지 감비아로 넘어가서 방황하다가, 다시 세네갈로 돌아와 1주를 보냈다.
결국은, 세네갈(1주) - 감비아(1주) - 세네갈(1주) 이런 일정이 되었….
하지만 문제는, 세네갈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나라였고, 난 프랑스어는 정말 1도 몰랐다는 것.

그곳에서 숨어있는 뮤지션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젬베를 배우는 여행을 했었다.
그때의 에피소드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때의 여행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아래 링크를 ㅎㅎ

페루, 볼리비아(스페인어) 신혼여행, 2011년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지는, 세계 최고의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는 페루와 볼리비아였다.
마추픽추, 티티카카 호수, 우유니 소금사막.
그것을 보러 갔었다.
물론 관광지만 찍고 온다면 영어만으로도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그런 여행은 재미없잖아?? ㅎㅎ
현지 생활권으로 들어가 지내기도 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스페인어 환경으로 들어가 여행을 했었다.

에피소드 1)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서고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니 스페인어로 머라 머라~ 한참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는데, 버스에 사람이 탄 채로 배를 타면 위험하니까, 버스를 먼저 배에 태워 보내고, 사람들은 다른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한대. 그래서 일단 내려야 해”
아내가 신기해하며, “아니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어?“라고 말했다.

그러게, 난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을까?

에피소드 2)

페루에서 아내가 고산병 증세를 보였는데,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으면 좋다고 해서, 그것을 구하러 일단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라, 시장/마트는 모두 문을 닫았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뒷정리를 하는 로컬 식당을 발견했고, 곧장 식당 주방으로 들어가 주방 아줌마와 흥정해서 토마토, 오이, 등등을 사 왔다.
당연히 그 아주머니는 페루 현지어밖에 모르셨고, 나와는 대화가 될 리가 없었지….

어쨌든 신선한 과일/채소를 사 와서 아내에게 건내 줄 수 있었다.

2016년부터 시작된 중국 생활

중국에 대한 준비 전혀 없이, 갑자기 중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살고 있다.
오자마자 집과 관련된 각종 문제들(정수기, 전등, 갑자기 울리는 화재 경보등, 인터넷연결, 등등)을 해결하고
비자 문제, 보험 문제, 병원, 납세 문제, 택배 통관 문제, 아이 학교 문제, 4번의 이사,, 갖가지 처리들을 다 해내야 했다.
중국어를 모르는 상황에서…

이 생활은 여전히 진행중 ㅎㅎ

난 이걸 어떻게 해내는 걸까?

처음에는 “다들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
예전에는, “그냥 하면 돼~~ 그냥 부딪혀 보는 거야!!“라고 약간 뽕(?)이 들어간 말만 하고 다녔는데,
정말 난 이걸 어떻게 해내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만났을 때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또는 경험의 흐름을 분석해 보았다.

핵심: 나를 도와줄 사람 찾아서 내 편으로 만들기

그냥 무턱대고 들이대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도와 달라고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과 교감을 하고,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해야 한다.

여행지에 가서 그냥 신나고 재미나는 경험을 할때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 처리를 해야 할 때(예를 들면, 관공서 같은 곳)의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목적은 같다.

먼저,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관공서 편

일단 약간의 인사말 정도는 할 줄 안다고 가정하였다.
요즘엔 좋은 번역앱(papago)들도 많아서, 번역기의 도움을 받으면 어렵게나마 나의 의사를 전달 할 수 있다.

나를 도와줄 사람 찾기

1단계) 가장 한가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이 여러 명이라면?

  • 1순위: 나에게 뭔가를 얻어가야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예를 들면, 뭔가를 판매하는 사람들이나, 광고지(?) 같은 걸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나, 설문조사 같은 걸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 2순위: 나를 도와줘야 할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
    (예: 안내데스크 담당자, 도우미)
    이들은 대부분 할 일이 없어 심심해한다. 그래서 물어봐 주면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가끔은 불친절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ㅋ
  • 3순위: 몇몇 사람과 교감을 해 보고 결정
    • 낯선 이방인인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 나에게 흥미를 표하는 사람
    • 어느 나라건, 아주머니들이 인심이 후하시더라. 그분들에게 다가가라.

나에게 마음을 연 사람을 찾았으면, 그 사람이 나를 다음 장소(목적을 달성 활 확률이 좀 더 높은 곳)로 안내를 해 줄 것이다.

2단계) [1단계]에서 만난 사람이 안내해 준 다음 장소로 간다.

하지만, 대부분 처음에는 잘못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정말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 까지 [1단계]-[2단계]를 반복한다.

이런 방식을 반복하며, 나를 진짜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때
  1. 용기를 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안돼! 그냥 돌아가”
    이때 당황하면 안 된다. 대부분 귀찮거나 잘 모를 때 그냥 돌아가라고 한다.
    인내심을 갖고 다른 사람을 찾아가 [1단계]-[2단계]를 반복하자.
  2. 여러 사람을 찾아 반복해서 물어보다 보면 누군가가 나타난다.
    그 사람이 진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3. 여러 담당자가 같은 이유로 안 된다고 하고, 도움을 줄 만한 다른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정말 안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만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도 중요 ㅎㅎ
  4. 근데, 여러 담당자마다 말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다. 좋은 신호다.
    이런 경우는 명확한 규정이 없을 확률이 높다.
    접근한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인 대답을 준 사람을 찾아가 다시 요청한다.
    약간 치사하긴 하지만, 그들 사이에 혼란을 만들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이 사람은 이렇게 얘기하던데? 저 사람이 될 거라고 했는데?”
    명확한 규정 없이 그냥 해 오던 관례로만 처리해왔다면, 그들은 자신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다.
    ‘어? 이제보니 저 동료는 다르게 일하고 있었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자.
    자ㅡ 고지가 눈앞이다. 조금만 더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5. 최후의 수단이다. 윗사람을 끌어내자
    약간의 소란을 피워서 윗사람(진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더 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오도록 한다.
    윗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윗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자ㅡ 이런 상황 속에서 윗사람이 나타났다.
실무를 보는 담당자들이 자신들이 일해왔던 방식에 확신을 잃은 상태라면 윗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윗사람은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야 한다.
윗사람이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를 하도록 하자.

윗사람을 만나면, 세상 착한 표정으로 나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윗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권한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건 사람의 본능이다.)
‘너희들은 못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어! 자ㅡ 봐봐~ 나 이런 사람이야~’ 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 욕구를 나를 향해 긍정적으로 분출하도록 하자.

여행지 편

여행지 편은 좀 더 쉽다.

(언어든, 시설이든, 여행가이드 든) 모든 것이 갖춰진 곳으로 여행을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갖춰진 환경을 활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문제는, 내가 활용할 만한 뭔가가 없는 척박한(?) 곳으로 여행을 할 때다.

난 여행을 할 때, 인터넷을 통해 얻든 정보는 10% 정도만 참고한다. 물론 나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미국과 유럽의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면, 인터넷의 정보는 현지의 생생함을 절대 담아내지 못한다.
인터넷을 통해 접한 이야기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경험일 뿐. 일반화할 수 있는 공식이 아니다.

요즘에는 여러 여행 서비스 들이 현지인과 연계하여 다양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깃발 든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보다야 풍성하겠지만, 어쨌건 서비스 업체가 짜 놓은 프레임 안에서 해야 하는 수동적인 여행이다.

옛날, 허술한 지도 하나 들고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는 순례자와 같은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어쩌면 그들에겐 나의 경험이 용기를 내게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위에서 얘기한 [관공서 편]을 습득했다면, 여행지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재미있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용해 갈 수 있다.

아래는, 여행지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현지 친구를 만드는 몇가지 방법이다.

여행지에서 가장 쉽게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삐끼들이다.
이들은 나에게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 말하자면, 내가 이들보다 약간 상위(?)에 있는 구도다.
이 구도를 잘 이용하면,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그들과 친구가 되면서도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역에 머무는 내내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정말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다.

동네에 놀고 있는 꼬마 아이들도 좋다.
공놀이하고 있다면, 같이 공을 주고받으며 놀다가 슬쩍 물어보면 된다.
“근데 너넨 밥 어디서 먹어??”

어떤 여행객은 이런 현지인과 친해지기 위해 리코더를 한 묶음씩 가지고 다니더라.
꼬마 아이들에게 리코더를 알려주고 그것을 선물로 준다.
그리곤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 끝

물론 여행지에서도 [관공서 편]에서 얘기했던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뭔가를 환불해야 할 상황이라던가, 예약 상황을 변경해야 한다던가, 국경을 넘어가면서 쓸데없는 절차에 걸려서 곤욕을 치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차분히 앞에서 말한 스킬을 써먹자

난 왜 쓸데없이 이런걸 분석하고 있나?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내가 특별히 잘 못 하는 것도 있다.

‘내가 잘하는 그것을 왜 잘하게 되었는지를 알면,
그 방법을, 내가 잘 못 하는 부분에 적용해서 시도해 본다면,
잘 못 하는 그것을 좀 더 잘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라는 아주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에서…ㅎㅎ

요즘 시도해보고 있는, 나만의 학습 방법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