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헤어지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헤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여러 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게 헤어짐이다.
헤어짐의 순간은 여전히 어색하다.
좀 더 세련되고 매너있게, 멋있는 마무리 멘트도 날려가며 폼나게 헤어지고 싶은데, 너무 어색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잘 헤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헤어지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고 어색한 것인데, 어색한 순간을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겠어?
어색하고 서툰 그 모습 그대로 헤어지는 게 가장 잘 헤어지는게 아닐까?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가는 거.
잘 헤어지고 싶어서 뭔가를 연출하는 것 보다, 어색한 그 순간에 충실 하는 게 잘 헤어지는 거 같았다.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용기였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보고싶다고 하는 거, 감사함을 표현하고 아쉬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더라.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고1 때 어느 헤어짐의 장면이 생각났다.

1997년 4월. 우리 반에 교생선생님이 오셨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교생선생님과 함께 보내는 한 달은 들뜨고 신나는 시간이다. 꼰대 담임선생님이 아니라 누나같은 대학생 쌤이랑 그냥 한 교실에 있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근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반은 교생 선생님이랑 사이가 안 좋았다. 그 깊은 골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아마 그 교생선생님도 고등학생을 대하는 게 서툴었나 보다.
심지어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친구가 수업시간에 엎어져 자고 있었고 교생선생님이 일어나라고 했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 씨발”이러면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서 다시 엎어져 자는 거였다. 아ㅡ 저건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교생선생님이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 한 달을 왜 이렇게 보내야 했을까? 교생선생님과의 깊은 골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까먹었고, 쓸데없이 각을 세우며 보냈던 지난 한달이 너무 이상했다. 이대로 헤어질 수 없었다.
우리는 화해를 해야 했었다. 아니, 이 이상하고 어색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했었다.

선생님이 떠나던 전날.
야간자습 시간, 한 친구가 선생님을 교실로 모셔왔다. 우리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책을 쳐다보며 자습을 하는 척(?)을 하고 있었고, 그때 한 친구가 그 자세로 책에 얼굴을 파묻고 노래를 시작했다. (자면서 욕을 했던 그 친구다)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속에
서로 말 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음악속에 묻혀
지내온 수많은 나날들이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 됐네”

한두명씩 그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떠나가야 할 시간
아쉬움을 남긴채
돌아서지만
시간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겠지
우리 그때까지 아쉽지만
기다려 봐요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꺼야
함께했던 시간은
이젠 추억으로 남기고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015B의 “이젠안녕”을 다 같이 불렀다.

선생님도 이렇게 헤어질 수 없었던지, 반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써 오셨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도, 선생님도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했다.
너무 서툰 모습으로 보냈었던 한달. 그치만 우리의 진심은 오가고 있었나보다. 이제서야 진심을 확인했는데, 맘껏 그 마음을 표현할 기회도 없이 헤어져야 했다. 그래서 그 아쉬움이 더 컸었다.
고작 대학생이었던, 아직 어렸었던 그때의 교생선생님. 지금은 분명 40대 후반의 좋은 선생님이 되셔서 어딘가에서 여전히 고등학생들과 함께하고 계실 것 같다.

문득 생각난,
솔직하고 용기를 내었던 헤어짐의 기억이다.

이렇게 25년 전의 어느 헤어짐의 장면을 회상하고 있을 때, 고등부 아이들이 집에 찾아왔다. 지난 수련회 때 아이들 앞에서 눈물 흘리며 불렀던 “온맘다해” 찬양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진 케이크와 롤링페이퍼를 들고 아이들이 한밤중에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코로나 때문에, 오늘은 조용히 집에서 북경에서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는데, 너무 보고 싶었던 아이들이 찾아와 주었다. 코로나를 뚫고 아이들이 고등부를 대표해서 와 주었다.

이 아이들도 용기를 냈구나.
난, 여전히 서툰 모습으로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언제부턴가 이 아이들의 진심이 보이더라. 겉으로는 세상 심각하게 늘 무뚝뚝한 모습인 것 같지만, 이들의 속마음은 그렇지가 않구나.. 그러면서 이 아이들이 생각보다 어른스럽고 속이 꽉 찬 아이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쓴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는데, 우리들의 모습은 서툴렀을지 몰라도, 그 시간동안 진심이 오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북경생활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