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오리진

이 책은, “지구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얼핏보면 철학적인 질문 같은데, 과학자 루이스 다트넬은 이 질문을 과학적인 의미로 받는다. 오래전부터 활발히 움직여왔던 지구를 지질학 관점으로 설명하고, 그것이 지금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한다.

지구 저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 그 여파로 만들어지는 금속들.
맨틀/판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대륙의 모습.
해류와 대기의 정교한 움직임. 그것이 만들어내는 지구 대기의 대순환.

어휴~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을리가 없지 ㅡ,.ㅡ;;
이전에 읽었던 역사책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큰 범위의 역사다. 진짜 말 그대로 지구의 역사.

인류의 출현, 문명의 탄생을 판의 활동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질학 설명에 중간에 힘이 좀 빠졌었는데, 2/3 지점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다시 확 빨려 들어갔다. 분명 재미없는 내용인데, 열심히 머리 굴려가며/상상해가며/끄적거려가며 읽어나가다 보니 나름 재미가 있었고, 그러다 쑥 빨려 들어갔다.

그리스의 독특한 산악지형과 민주주의.
먼 옛날 해저 지형을 따라 나타나는 미국사람들의 투표 패턴.
영국의 석탄 매립지와 노동당 지지자들.
몽골 초원에 살고 있던 유목민족들을 이동하게 했던 지구의 움직임, 그 여파로 쇠퇴해가는 로마제국.
산맥 지형과 기독교 종교의 분포.
대항해시대, 해류와 바람의 패턴을 발견하고 뱃길을 찾아갔던 이들(난 그냥 배타고 앞으로 쭉 가면 되는건지 알았는데,, 물길이 그런 게 아니었구나 ㅎㅎ). 특히, 해류/바람과 사투를 벌이던 대항해시대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사피엔스》에서 자본주의의 핵심을 신용(미래의 돈을 지금 당겨 쓰는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던 때 약소국이었던 네덜란드가 상인들이 쌓아왔던 “신용"을 기반으로 강대국으로 갑자기 떠오르는 이야기를 한다. 왜 하필 네덜란드였을까? 여전히 제왕들이 통치하던 시절, 어째서 거긴 이미 신용대출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었는데, 그것에 대한 답을 《오리진》이 해주고 있었다. 이 역시도 자연의 산물이었구나! 바다와 습지에 농사를 지어야 하는 불리한 자연환경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먼바다로 나가야 했던 그들의 어려움 속에서 “신용” 사회가 만들어졌다. 이 역시도 자연의 산물.

가장 지루하게 읽었던, ‘[6장] 금속은 어떻게 인류 사회를 바꾸었는가’ 부분에서 오히려 많은 인싸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책 내용이 머릿속에서 나 개인의 고민거리와 얽히고설켰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들이 이어졌다. 지구의 역사와 내일 사무실에서 벌어질 일에 비슷한 점이 있을리가 없잖아. 근데 희한하게 내 삶과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읽은 후,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한가지 프레임(관점)이 생겼다.
내 안의 세상 vs. 내 바깥의 세상
이걸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 한 사람은 이 세상 전체만큼이나 소중하다
  • 한 사람의 내면은 이 세상 전체만큼이나 거대하다
  • 한 사람의 잠재력은 이 세상 전체만큼이나 무궁무진하다
  • 한 사람의 모습은 이 세상 전체만큼이나 다양한다
  • 그리고, 나 개인의 삶은 이 세상 전체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래서 역사를 점점 더 알게 될수록, 세상을 보는 나만의 관점도 생겨나고, 나 자신을 보는 관점도 만들어진다. 긴 역사의 흐름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긴 역사의 흐름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내 삶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오리진》을 읽을 때도, 나 개인의 삶과 연관이 지어졌다.
이 세상 전체의 거대한 역사가, 오늘의 나에게 메세지를 줄 수 있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은, 과거 어느 특별한 시점/특별한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들이고, 그 영향으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

나 개인의 삶도 그렇겠지?
과거 어느 특별한 시점/특별한 조건 속에서 만들어졌던 어떤 모습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겠지?
나의 지난 41년이 통째로 작용해서, 지금의 내 모습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의 지난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앞으로의 모든 순간도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