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성인의 성장

장재휴
주님의 교회 청년 주일(성년식) 예배를 드리며 5월. 수줍게 피어있던 여린 이파리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짙은 초록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연둣빛이 예쁘다. 오랜만에 본 스무 살 친구들의 모습이 이랬다. 오늘 예배때 한 성년식 행사로 작년 고3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열아홉 땐 입 꾹 다물고 무게만 잡고 있던 아이들이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능글능글해졌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낯간지러운 말도 한다. 예뻐지고 멋있어지고 말끔해졌다. 자신을 가꾸는 법도 배워간다.

굿바이 2024

장재휴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노트를 꺼냈다. 하루하루 많은 일이 일어나고 이 생각 저 생각이 휙휙 지나가고 있는데 글감은 말라간다. 글감은 가만히 있으면 나오지 않는다. 캐내야 한다. 글감을 퍼내는 도구는 노트와 펜이다. 신기하네. 노트와 펜을 꺼내 ‘새벽에 잠이 깼다. 배가 아프다. 먹는 걸 조심해야겠다.’ 이 첫 문장을 쓰고 나니 글감이 흘러나온다. 다행이네. 아예 꽉 막히진 않았구나. 노트를 뒤적이며 예전에 썼던 글을 봤다. 그땐 그저 휘갈기고 말았는데 다시 보니 맘에 든다. 옮겨보자. 타인의 시선은 생각보다 덜 중요하고 나의 시선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가슴 쫄깃한 불안함, 반가운 친구

장재휴
# 버스킹을 하루 앞두고 오후에 소연샘한테 일대일 레슨을 받으러 갔다. 불안했나 보다. 새로운 것을 앞두고 드는 불안한 마음.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가슴이 쫄깃해 온다. 그래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이 감정과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이 녀석, 또 찾아왔네. 오히려 반갑다. 난 무슨 마음으로 버스킹을 한다고 했을까? 찬양 인도자 최세현 목사님도 오신다고 하고, 드러머 국지원 전도사님도 오신다고 하고. 음악으로 난다긴다하는 사람도 많이 지나갈 텐데. 난 무슨 생각으로 한다고 했을까?

새로운 리듬

장재휴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버킷리스트, 버스킹. 진짜로 한다. 첫 번째 연습 때 소연샘이 보사노바 리듬을 알려주었는데 이제 몸에 좀 익었다. 첨엔 도통 안 돼서 종이에 박자를 그려놓고 따라 해야 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복했다. 잘 되나 싶으면 손이 어긋난다. 좀 익숙해져서 노래에 젖어 들려고 하니 또 박자가 꼬인다. 그러다 점점 몸에 익어갔고 조금씩 내 안에 스며들었다. 리듬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노래를 부르려고 하면 박자가 흐트러진다. 노래와 리듬과 몸이 하나가 되어야 그 안에 들어가 즐길 수 있다.

함께 자라기

장재휴
책 노트를 만들었다. 지금까진 이 생각 저 생각 다 핸드폰에 적었는데 책 읽고 드는 생각은 노트에 적기로 했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노트에 옮겨적고 거기에 내 생각을 보탠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삼다(三多)’ 끝나고 책을 천천히 읽어보자고 마음먹었던 터라 오히려 좋다. 같은 글인데도 내 손으로 옮겨적은 글씨는 나와 더 가깝다. 좋은 지식은 이렇게 훔치는 거다. 나의 책 노트를 보더니 지안이가 글 잘 쓰는 팁을 알려준다. 학교에서 매일 배움 노트를 쓰는데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이란다.

나답게 살기

장재휴
“나 멋있어 보이지? 너도 나처럼 멋있게 살 수 있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나처럼 살라는 말은 나를 닮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처럼, 너 자신의 삶을 살라는 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조르바를 닮아서, 나답게 살자. 나도 29살 때 참 막막했던 것 같다.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나를 보면 초라하고, 또래 친구들은 펄펄 날아다니고. 쟤네들은 뭘 했길래 저 나이에 저걸 이뤄냈지? 찌질한 내 모습과 비교가 되는데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작은 마음

장재휴
뜨거운 마음. 이건 식을 수 있다. 지속하기 어렵다. 나를 뜨겁게 만든 그것이 사라지면 식어버리겠지. 뜨거운 마음에 한 결정은 지속하기 어렵다. 확신에 찬 마음. 우리가 무언가를 확신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잡기도 어려운데. 잘 몰라서 확신하는 것일 수 있다. 오해일수도 있다. 우리는 큰 불확실함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가능성을 겨우 볼 뿐이다. 확신이 든다면 의심해보자. 다른 사람의 말. 이 역시 믿기 어렵다. 누군가의 말에 끌린다면, 그의 말을 따라 움직이고 싶다면. 그도 나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자.

불안한 세상을 가르치자

장재휴
어제 오후에 그리고 저녁에 두번의 만남을 가졌다. 나까지 포함해서, 어제 만난 세명의 공통점 — 코로나때 직장을 잃었다. 지난주 어머니 평전을 쓰며, 지금 ’전태일평전‘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소설 ’한강‘을 떠올리며, 그리고 나(우리)의 삶을 보며 든 생각: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던 시대는 없었다. 전쟁때 태어난 부모님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를 살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조선이 망하는 걸 보았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다. 그 이전 세대도 마찬가지였을 듯.

AI와 함께 살아가기

장재휴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상이 빨라졌다. 아이폰이 나오면서 모바일 세상이 시작됐다. 좀 지나자 너도나도 클라우드 얘기를 꺼낸다. 아무데나 ‘빅데이터’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1년 전 ChatGPT가 나왔다(정확히는 13개월 전). 열기가 사그러드나 싶더니 생성형AI 열풍을 몰고 왔다. IT와 관련이 없는 사장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왜 이리 호들갑이야? 변화는 늘 있었다. 돌을 갈아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도 다른 도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여파로 세상은 변해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굿바이 2023

장재휴
또다시 맞이하는 12월 31일이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리 없지만, 이럴 때 괜히 연말 분위기에서라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작년 12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첫 일 년을 보냈다. 올 한해는 하이데어를 가동시키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모르고 가볍게 시작했던 하이데어가 점점 무게감을 드러내었고 거기에 제대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올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멈추지만 말자!’ 예상보다 더 척박했지만, 이 생각으로 꾸역꾸역 다음 스텝을 이어왔다. 호들갑스럽게 다른 스타트업들 흉내도 내보고, 무턱대고 이일저일 벌여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