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교회 청년 주일(성년식) 예배를 드리며
5월. 수줍게 피어있던 여린 이파리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짙은 초록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연둣빛이 예쁘다. 오랜만에 본 스무 살 친구들의 모습이 이랬다. 오늘 예배때 한 성년식 행사로 작년 고3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열아홉 땐 입 꾹 다물고 무게만 잡고 있던 아이들이 내가 알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능글능글해졌다.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낯간지러운 말도 한다. 예뻐지고 멋있어지고 말끔해졌다. 자신을 가꾸는 법도 배워간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노트를 꺼냈다. 하루하루 많은 일이 일어나고 이 생각 저 생각이 휙휙 지나가고 있는데 글감은 말라간다. 글감은 가만히 있으면 나오지 않는다. 캐내야 한다. 글감을 퍼내는 도구는 노트와 펜이다.
신기하네. 노트와 펜을 꺼내
‘새벽에 잠이 깼다. 배가 아프다. 먹는 걸 조심해야겠다.’
이 첫 문장을 쓰고 나니 글감이 흘러나온다. 다행이네. 아예 꽉 막히진 않았구나.
노트를 뒤적이며 예전에 썼던 글을 봤다. 그땐 그저 휘갈기고 말았는데 다시 보니 맘에 든다. 옮겨보자.
타인의 시선은 생각보다 덜 중요하고 나의 시선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 버스킹을 하루 앞두고
오후에 소연샘한테 일대일 레슨을 받으러 갔다. 불안했나 보다.
새로운 것을 앞두고 드는 불안한 마음.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가슴이 쫄깃해 온다. 그래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이 감정과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이 녀석, 또 찾아왔네. 오히려 반갑다.
난 무슨 마음으로 버스킹을 한다고 했을까? 찬양 인도자 최세현 목사님도 오신다고 하고, 드러머 국지원 전도사님도 오신다고 하고. 음악으로 난다긴다하는 사람도 많이 지나갈 텐데. 난 무슨 생각으로 한다고 했을까?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버킷리스트, 버스킹. 진짜로 한다.
첫 번째 연습 때 소연샘이 보사노바 리듬을 알려주었는데 이제 몸에 좀 익었다. 첨엔 도통 안 돼서 종이에 박자를 그려놓고 따라 해야 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복했다. 잘 되나 싶으면 손이 어긋난다. 좀 익숙해져서 노래에 젖어 들려고 하니 또 박자가 꼬인다. 그러다 점점 몸에 익어갔고 조금씩 내 안에 스며들었다.
리듬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노래를 부르려고 하면 박자가 흐트러진다. 노래와 리듬과 몸이 하나가 되어야 그 안에 들어가 즐길 수 있다.
책 노트를 만들었다. 지금까진 이 생각 저 생각 다 핸드폰에 적었는데 책 읽고 드는 생각은 노트에 적기로 했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노트에 옮겨적고 거기에 내 생각을 보탠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삼다(三多)’ 끝나고 책을 천천히 읽어보자고 마음먹었던 터라 오히려 좋다. 같은 글인데도 내 손으로 옮겨적은 글씨는 나와 더 가깝다. 좋은 지식은 이렇게 훔치는 거다.
나의 책 노트를 보더니 지안이가 글 잘 쓰는 팁을 알려준다. 학교에서 매일 배움 노트를 쓰는데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이란다.
“나 멋있어 보이지? 너도 나처럼 멋있게 살 수 있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나처럼 살라는 말은 나를 닮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처럼, 너 자신의 삶을 살라는 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조르바를 닮아서, 나답게 살자.
나도 29살 때 참 막막했던 것 같다.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나를 보면 초라하고, 또래 친구들은 펄펄 날아다니고. 쟤네들은 뭘 했길래 저 나이에 저걸 이뤄냈지? 찌질한 내 모습과 비교가 되는데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뜨거운 마음.
이건 식을 수 있다. 지속하기 어렵다. 나를 뜨겁게 만든 그것이 사라지면 식어버리겠지. 뜨거운 마음에 한 결정은 지속하기 어렵다.
확신에 찬 마음.
우리가 무언가를 확신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잡기도 어려운데. 잘 몰라서 확신하는 것일 수 있다. 오해일수도 있다. 우리는 큰 불확실함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가능성을 겨우 볼 뿐이다. 확신이 든다면 의심해보자.
다른 사람의 말.
이 역시 믿기 어렵다. 누군가의 말에 끌린다면, 그의 말을 따라 움직이고 싶다면. 그도 나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자.
어제 오후에 그리고 저녁에 두번의 만남을 가졌다. 나까지 포함해서, 어제 만난 세명의 공통점 — 코로나때 직장을 잃었다.
지난주 어머니 평전을 쓰며, 지금 ’전태일평전‘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소설 ’한강‘을 떠올리며, 그리고 나(우리)의 삶을 보며 든 생각: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던 시대는 없었다. 전쟁때 태어난 부모님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를 살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조선이 망하는 걸 보았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다. 그 이전 세대도 마찬가지였을 듯.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상이 빨라졌다. 아이폰이 나오면서 모바일 세상이 시작됐다. 좀 지나자 너도나도 클라우드 얘기를 꺼낸다. 아무데나 ‘빅데이터’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1년 전 ChatGPT가 나왔다(정확히는 13개월 전). 열기가 사그러드나 싶더니 생성형AI 열풍을 몰고 왔다. IT와 관련이 없는 사장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왜 이리 호들갑이야?
변화는 늘 있었다. 돌을 갈아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도 다른 도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여파로 세상은 변해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다시 맞이하는 12월 31일이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리 없지만, 이럴 때 괜히 연말 분위기에서라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작년 12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첫 일 년을 보냈다. 올 한해는 하이데어를 가동시키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모르고 가볍게 시작했던 하이데어가 점점 무게감을 드러내었고 거기에 제대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올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멈추지만 말자!’
예상보다 더 척박했지만, 이 생각으로 꾸역꾸역 다음 스텝을 이어왔다. 호들갑스럽게 다른 스타트업들 흉내도 내보고, 무턱대고 이일저일 벌여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