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본 그들은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커피 마시는 거 좋아하고, 수다 떠는 거 좋아하고, 애들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운동 좋아하고, 뉴스의 가십거리들 얘기하며 시간 보내고~ 나랑 다를 게 없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두 가지였다.
좋은 습관 글쓰기 그런 사람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화려한 스킬로 남들은 손도 못 대는 문제를 순식간에 해치워 버릴 거라 상상하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신념.
“사람은 누구나 천재다.”
세상이 아는 천재는, 내 안의 천재를 밖으로 드러낸 것일뿐.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천재가 나의 선생이 되어, 내 안의 나에게 배우며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 중 하나는 “글쓰기”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에 글자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나도 몰랐던 나를 끄집어내는 행위다.
내 안의 나와 벗하며, 학습하며, 대화하며 살아가기.
평생 학생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평생 학생으로 살아가게 해 주는 마음가짐
나는 잘 모른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질 수 있다 새로운 일을 할 때 뿐만 아니라, 아주 익숙한 걸 할때도 “평생 학생”의 마음가짐은 큰 도움이 된다.
일단, 재밌다.
매일 새로운 오늘을 살기!
어젯밤, 지안이를 재우면서 기도를 하는데, 지안이가 이렇게 기도 제목을 얘기한다.
“내일 아파서 학교 안 가게 해 주세요”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떨리나 보다. 아파서 학교에 안 가게 되면, 발표를 안 하고 넘어가게 될 텐데. 그렇게 그 상황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도 그랬다.
나도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사람들 앞에 나가서 말하는 거였다.
어쩔수 없이 앞에 나가야 할 때면,
“이번 수련회 어땠어?” 와 같은 아주 간단한 질문 앞에서도 버벅거리며 바보처럼 웅얼거리다 들어왔고, 매번 “아ㅡ 왜 이렇게 말했지?
어떤 소식이 좋은 소식일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소식? 나쁜 영향을 주는 소식?
그건 언제,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위기는 기회다’ 라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 직원들 등골 뽑아먹을 때 자주 하는 말인 것 같아서,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다. ㅋ
(악덕 회사들이 좋은 말의 이미지를 다 망쳐놨음ㅋ)
실제로, 위기 또는 실패의 순간을 딛고 일어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내 삶이 바뀐 몇 번의 포인트가 있다.
오랫동안 한 분야를 경험(또는 공부)하면 세상을 그 방식으로 보려고 하는 프레임이 생긴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있다는 것은 좋은 거다.
이 세상은 너무너무 복잡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프레임이 없다면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헤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의 문제는, 아주 다양한 모습의 세상을 하나의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못 보거나 왜곡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럴땐 여러 개의 프레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2개 이상의 프레임이 있을 때 좀 더 균형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을 물었을 때,
첫 번째 나오는 대답은 내 안에서 나오는 고민이 아닐 때가 많다.
사업, 취업, 이사, 진로,,,
이런 것들은 대부분 상황이 주는 것이어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상황에 유리한 선택을 하거나, 그냥 흘러가는 데로 결정되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고민은 내가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상황에 의해 해결되길 바란다.
“그다음 고민은?”
“그럼 그다음 고민은?”
이렇게 물어보다 보면 네 번째, 다섯 번째에 가서야 나의 고민이 나온다.
흐지부지 간만 보는 삶.
잘되든 못되든 그것은 나한테 안 좋은 것이다.
간만 보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잘 풀려도 문제, 안 풀려도 문제다.
잘 풀릴 때.
나의 내면을 마주하고 그걸 돌아볼 기회를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아도. 사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삶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내면은 점점 더 가려져서 나중엔 잘 들춰지지도 않는다.
잘 안 풀릴 때.
간 만 봤으면서, 제대로 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건 안된다”고 단정하게 된다.
오랫동안 한 분야를 경험(또는 공부)하면 세상을 그 방식으로 보려고 하는 프레임이 생긴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있다는 것은 좋은 거다.
이 세상은 너무너무 복잡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프레임이 없다면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헤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의 문제는, 아주 다양한 모습의 세상을 하나의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못 보거나 왜곡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럴땐 여러 개의 프레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2개 이상의 프레임이 있을 때 좀 더 균형이 생기지 않을까?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우리 삶의 축소판 같다.
성경을 읽는다고 매번 엄청난 은혜와 깊은 묵상이 있는것은 아니다.
아주 가끔, 내 심장을 꽝 울리는 말씀을 읽고 새 힘이 뿡뿡 솟아오를때도 있지만, 그건 정말로 아주 가끔이다.
대부분은 지루하기 그지없고, 그래서 꾸역꾸역 읽는다.
하지만 그렇게 꾸역꾸역 읽어나간 성경이 천천히 내 안에 자리잡혀가는걸 보게 된다.
꾸역꾸역 읽어 나갔던 그 말씀이 없었으면, 황홀한 기쁨에 빠져드는 이벤트도 없었겠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대부분 지루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