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안영회님이 “아기발걸음(Baby Step)“을 얘기 했을 때는 ‘그냥 좋은 말이겠거니…’ 생각했었다. 일주일 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 안에서 4년을 보냈지만 그게 내 삶에 체화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2020년 XP 책을 다시 읽고 눈이 번쩍 떠졌다. 내 삶의 지침서로 받아들이고 진짜 이렇게 살아보려고 했다.
그때부터 내 삶의 주기를 일주일로 두고, 일주일 마다 변화를 만들어보려고 했었다.
처음으로 기타 연습을 시작했고, 아프리카 여행 추억팔이 용으로만 가지고 있던 젬베를 들고 교회 찬양팀에 들어가 다른 세션들이랑 맞춰보기 시작했다.
	
	
	
	
	
		허무해지지 않을 행복이 있을까?
(전도서 2장을 읽고)
행복의 방향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을 때, 내가 없어져도 그 행복은 다른 사람 안에서 여전히 남아있다.
원래 목적이 그거였으니, 내가 가진 게 사라져도 상관없다. 나로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것으로 이미 보상을 받았다. 그것이 곧 나의 기쁨.
어떻게 다른 사람의 행복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을까?
2020년 초 회사가 없어졌다. 충격이 있었으나 거기서 걸어나올 수 있었던 건, 회사를 유지하는 것이 거기서 일하는 목적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는 사무실을 나의 세상으로 정의하고, 나의 세상(사무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목적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알았었나?”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랑 대화하다가, 고민을 토로하는 그에게 한 말이다.
맞다.
그때는, 어른이 된 우리가 맞이할 세상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이 꽤 쌓였고 30대 초반에 회사도 세워, 한때 올해의 스타트업 top 10에 꼽히기도 했었다. 지금은 대기업에서 수십명을 이끄는 부서장이다. 그런데도 그는 불안을 느끼며 뭔가 더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느끼더라.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책으로 시작하면 되냐고 나한테 묻기도 하고.
	
	
	
	
	
		오늘의 수고를 내일 보상받으려고 할 때. 막상 내일이 되어 어제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수고와 보상의 시간 간격이 클수록 허무함은 커진다.
수고에 대한 보상을 그때그때 받지 못하고 그걸 미래로 미뤄둘수록, 보상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수고에 대한 본전 생각도 커진다.
막상 보상을 받을 때가 되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에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원했던 그게 이거였어?”
원했던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듯.
“지금까지 뭘 한 거지?
	
	
	
	
	
		4차 산업 혁명.
이젠 별로 새롭지도 않은 말이다.
이것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이렇다.
“늘 있어왔던 변화의 속도가 엄청 빨라진 세상. 얼마나?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변화 무쌍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게 된다.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까?
‘무엇이 나에게 더 유리한가?‘를 따져보고, 더 유리한 상황을 선택하겠지?
그러면 될까?
미래를 예측해보고 거기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 그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이 전 세상에서나 통했던 방식. 혁명은 세상이 뒤바뀌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 거다.
	
	
	
	
	
		토론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이상적인 토론의 마지막 장면은, 양 끝단에서 대립하고 있던 의견의 중간 지점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다.
즉, 내 생각도 바뀌고 상대방의 생각도 바뀌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
토론 후 가장 큰 혜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토론을 통해 생각이 바뀐 사람이다.
원래는 A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닫고, B로 생각이 바뀐 사람.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고, 그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이다.
	
	
	
	
	
		혁신은 대단히 획기적인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게 아니다.
익숙하게 하던 일/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보고, 표현해보고, 이야기해보면 빈틈이 보인다.
그 빈틈을 메꾸려는 행동이 “혁신” 이다.
여기에 필요한 건, “추상화(abstraction)” 능력.
한발 떨어져 큰그림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어떻게 연습 할 수 있을까?
“변하지 않는 것은 뭘까? 변하는 것은 뭘까?”
늘 이 질문을 해 보는거다.
변하지 않는 것을 중심에 놓고, 변하는 것을 변수 자리에 놓아보자.
변수 자리에 다양한 상황을 넣어보다보면 추상화 된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못하는 것만 골라서 하기”
자만심에 빠질때는 남과 비교해서 내가 잘한다고 느낄때다. 자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남보다 못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러면 당연히 별볼일 없는 결과가 나올테고, 자만하고 싶어도 자만할수가 없다.
어쩌다 좋은 결과가 나와도, 그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다. 왜냐면, 난 원래 그걸 못하는 사람이거든. 내 능력이 아닌, 순전히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자만이 아니라 감사하게 된다.
그러다 그게 익숙해진다면? 남들보다 더 잘하게 되었다면? 그럼 그걸 그만할때가 온거다.
	
	
	
	
	
		일주일 리듬 이건 이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일주일 주기로 살아가기. 일주일 전과 달라지기.
일주일은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는 건 아님 ㅋ
(어떻게 그래? 집중하고 있는 몇몇 부분에서만 ㅋ)
2년의 리듬 이것도 언젠가 글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필요한 시간. 2년.
이건 자기 분야에서 꽤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발견한 거다.
학교 다닐 때 기계적으로 했던 거 다 빼고, 회사에서 억지로 했던 거 다 빼고.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본 그들은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커피 마시는 거 좋아하고, 수다 떠는 거 좋아하고, 애들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운동 좋아하고, 뉴스의 가십거리들 얘기하며 시간 보내고~ 나랑 다를 게 없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두 가지였다.
좋은 습관 글쓰기 그런 사람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화려한 스킬로 남들은 손도 못 대는 문제를 순식간에 해치워 버릴 거라 상상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