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버킷리스트, 버스킹. 진짜로 한다.
첫 번째 연습 때 소연샘이 보사노바 리듬을 알려주었는데 이제 몸에 좀 익었다. 첨엔 도통 안 돼서 종이에 박자를 그려놓고 따라 해야 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복했다. 잘 되나 싶으면 손이 어긋난다. 좀 익숙해져서 노래에 젖어 들려고 하니 또 박자가 꼬인다. 그러다 점점 몸에 익어갔고 조금씩 내 안에 스며들었다.
리듬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 노래를 부르려고 하면 박자가 흐트러진다. 노래와 리듬과 몸이 하나가 되어야 그 안에 들어가 즐길 수 있다.
책 노트를 만들었다. 지금까진 이 생각 저 생각 다 핸드폰에 적었는데 책 읽고 드는 생각은 노트에 적기로 했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노트에 옮겨적고 거기에 내 생각을 보탠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삼다(三多)’ 끝나고 책을 천천히 읽어보자고 마음먹었던 터라 오히려 좋다. 같은 글인데도 내 손으로 옮겨적은 글씨는 나와 더 가깝다. 좋은 지식은 이렇게 훔치는 거다.
나의 책 노트를 보더니 지안이가 글 잘 쓰는 팁을 알려준다. 학교에서 매일 배움 노트를 쓰는데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이란다.
“나 멋있어 보이지? 너도 나처럼 멋있게 살 수 있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왔을까?
나처럼 살라는 말은 나를 닮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처럼, 너 자신의 삶을 살라는 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조르바를 닮아서, 나답게 살자.
나도 29살 때 참 막막했던 것 같다.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나를 보면 초라하고, 또래 친구들은 펄펄 날아다니고. 쟤네들은 뭘 했길래 저 나이에 저걸 이뤄냈지? 찌질한 내 모습과 비교가 되는데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 청소년부 교사 엠티
상수동에서 좀 일찍 퇴근해서 강화도로 갔다. 신덕수양관에 도착하니 한쪽에서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린다. 저기구나. 불판 위엔 이미 고기가 올라가 있다. 양손에 콩나물과 상추쌈, 계란 한판을 들고 나타난 나를 다들 반겨준다. 조금씩 챙겨온 재료로 테이블이 풍성해졌다. 장작불의 연기를 머금은 고기로 우리는 마음까지 풍성해졌다. 거기에 계란찜, 콩나물 무침, 볶음밥, 비빔면이 더해진다.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건 역시 밥상이다.
이젠 불멍의 시간. 타오르는 불을 보며 둘러 앉았다. 불 위로 날리는 잿가루(?
“아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지안이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묻는다.
알지. 당연히 알지.
해마다 4월 16일이면 지안이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이야기 했었다.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 바깥에 있었는데, 지안이가 전화해서 먼저 4월 16일을 이야기 한다.
“지안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고 있구나. 앞으로도 잊지말자”
“응~”
기억은 과거가 아니다. 미래다.
기억은 내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는 미래로 이어진다. 그래서 기억은 살아있다. 없어지지 않고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
기억의 힘을 믿는다.
# 꽃
봄이 오는게 보인다. 아침 옷차림도 가볍다. 먼저 꽃을 피운 나무도 있고 어떤건 아직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다. 벌써 연두색 이파리를 보이는 성급한 애들도 있네. 일찍 꽃 피운 녀석은 봄 소식을 일찍 알려준다. 늦은 친구는 이 봄을 길게 끌어주겠지. 둘 다 좋다. 자기 꽃은 때가 되면 다 드러날테니까.
온 세상이 예쁘다.
꽃을 좋아하면 나이든 거라던데. 그렇다 치자 ㅋ
# 대화
우리 삶이 계속해서 깊고 넓어질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대화다. 나의 조각난 생각은 대화를 통해 이어진다.
Lord of the Dance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이 찬양을 처음 보았을 때, 약간 충격이 있었다.
좀 이상했다. 그때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사도 뭔가 파격적이고 부르다 보면 빠져드는 듯한 멜로디.
이 찬양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찬미예수] 뒤적이다 혼자 발견한 것 같다. 난 이 찬양이 좋았다. 혼자 5절까지 부르며 등줄기가 찌르르~~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걸 전율이라 그러지. 요즘 애들은 ‘소오~~름’ 이라 그러나?
보수적인 교회에서 듣던 예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춤이라니! 1절 가사는 그렇다 치자.
뜨거운 마음.
이건 식을 수 있다. 지속하기 어렵다. 나를 뜨겁게 만든 그것이 사라지면 식어버리겠지. 뜨거운 마음에 한 결정은 지속하기 어렵다.
확신에 찬 마음.
우리가 무언가를 확신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잡기도 어려운데. 잘 몰라서 확신하는 것일 수 있다. 오해일수도 있다. 우리는 큰 불확실함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가능성을 겨우 볼 뿐이다. 확신이 든다면 의심해보자.
다른 사람의 말.
이 역시 믿기 어렵다. 누군가의 말에 끌린다면, 그의 말을 따라 움직이고 싶다면. 그도 나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자.
어제 오후에 그리고 저녁에 두번의 만남을 가졌다. 나까지 포함해서, 어제 만난 세명의 공통점 — 코로나때 직장을 잃었다.
지난주 어머니 평전을 쓰며, 지금 ’전태일평전‘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소설 ’한강‘을 떠올리며, 그리고 나(우리)의 삶을 보며 든 생각: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던 시대는 없었다. 전쟁때 태어난 부모님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를 살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조선이 망하는 걸 보았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다. 그 이전 세대도 마찬가지였을 듯.
대곡역에서 출발하는 서해선. 텅빈 지하철이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자리 쟁탈전, 위치선정이 중요하다. 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간발의 차로 다른 사람이 앉았다. 얼른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미 늦었다! 다른 사람이 막 앉아버렸다. 아침부터 참 정신없다. 아ㅡ 맞다! 오늘 내 생일이지.
지난 삼다 독회때 보미님 글이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편안하게 말하더라. 나의 장례식에 올 조문객에게 들려줄 글을 쓰고 그때를 위한 음악을 선곡하고. 나의 존재를 죽음이 어찌할 수 없다는 강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