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헤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여러 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게 헤어짐이다.
헤어짐의 순간은 여전히 어색하다.
좀 더 세련되고 매너있게, 멋있는 마무리 멘트도 날려가며 폼나게 헤어지고 싶은데, 너무 어색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잘 헤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헤어지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고 어색한 것인데, 어색한 순간을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겠어?
어색하고 서툰 그 모습 그대로 헤어지는 게 가장 잘 헤어지는게 아닐까?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가는 거.
이 책은, 1960년 즈음부터 1980년까지 20여 년의 긴 이야기를 쓴 책이다.
《아리랑》, 《태백산맥》에 이어 조정래의 또 하나의 대작이다.
저 두 개의 소설과 비교되는 점은,
《한강》에선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이기보다, 이야기의 줄기를 만들어가는 건 시대의 흐름이었고(그래서 제목을 ‘한강’으로 지었나?), 주인공들은 휙휙 뒤바뀌는 시대를 끈질기게 살아갈 뿐이었다.
교과서에서 한 줄짜리 사건으로 쓱 보고 지나갔던 일들이 실제 그때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이 세상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명 한 명의 삶이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저께 한국으로 갈 짐을 보냈다.
총 16박스가 나왔다.
16박스. 그걸 듣고 누가 이렇게 얘기한다.
“캠핑처럼 이사하시네요.”
맞다. 캠핑처럼.
한때 여행에 한창 목말라서 여기저기 배낭 메고 막 돌아다녔었는데
2010년 아프리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그만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 들었던 마음이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여행지를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일상이 여행지였다.
급하게 짐을 보냈더니, 미처 보내지 못한 짐들이 보인다.
‘아ㅡ 꽤 많네? 이걸 어떻게 가져가지?’
미련이다.
짐 보낼 때 생각나지 않았던 그건, 내 소유가 아니다.
“선택과 집중”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식상해질 정도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너도나도 또 이 식상한 단어를 꺼내면서 *딴짓금지*를 강요한다. 이쯤 되면 괜한 반발심까지 든다. ㅋ
선택에 대해 1안이냐? 2안이냐?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해보지 않은 두 갈래길 중 하나를 고르는 건 도박에 가깝다.
결정을 요구받은 그는 엄청 고민하는 척, 고민 코스프레 ㅋ 후에 하나를 결정한다. 그리곤 그 길을 밀어붙힌다. 당연히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2018년 우간다 아웃리치 팀에 합류했는데, 대부분이 대학생, 고등학생들이었다. 대학생들은 갑자기 합류한 나를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다가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자고 정하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내 호칭은 “장쌤” 이 되었다.
처음으로 선생님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그 호칭에 괜히 심각했었다. ㅋ
내가 왜 선생이지? 그들은 나보다 모든 부분에서 더 나아 보이는데. 내가 뭘 가르쳐줄 수 있다고…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붙인 호칭에 나만 쓸데없이 진지했었다 ㅋ
난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 호칭이 부담스러웠다.
2016년 안영회님이 “아기발걸음(Baby Step)“을 얘기 했을 때는 ‘그냥 좋은 말이겠거니…’ 생각했었다. 일주일 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 안에서 4년을 보냈지만 그게 내 삶에 체화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2020년 XP 책을 다시 읽고 눈이 번쩍 떠졌다. 내 삶의 지침서로 받아들이고 진짜 이렇게 살아보려고 했다.
그때부터 내 삶의 주기를 일주일로 두고, 일주일 마다 변화를 만들어보려고 했었다.
처음으로 기타 연습을 시작했고, 아프리카 여행 추억팔이 용으로만 가지고 있던 젬베를 들고 교회 찬양팀에 들어가 다른 세션들이랑 맞춰보기 시작했다.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알았었나?”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랑 대화하다가, 고민을 토로하는 그에게 한 말이다.
맞다.
그때는, 어른이 된 우리가 맞이할 세상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이 꽤 쌓였고 30대 초반에 회사도 세워, 한때 올해의 스타트업 top 10에 꼽히기도 했었다. 지금은 대기업에서 수십명을 이끄는 부서장이다. 그런데도 그는 불안을 느끼며 뭔가 더 공부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느끼더라. 프로그래밍을 공부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책으로 시작하면 되냐고 나한테 묻기도 하고.
오늘의 수고를 내일 보상받으려고 할 때. 막상 내일이 되어 어제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하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수고와 보상의 시간 간격이 클수록 허무함은 커진다.
수고에 대한 보상을 그때그때 받지 못하고 그걸 미래로 미뤄둘수록, 보상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수고에 대한 본전 생각도 커진다.
막상 보상을 받을 때가 되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에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원했던 그게 이거였어?”
원했던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듯.
“지금까지 뭘 한 거지?
4차 산업 혁명.
이젠 별로 새롭지도 않은 말이다.
이것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이렇다.
“늘 있어왔던 변화의 속도가 엄청 빨라진 세상. 얼마나?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변화 무쌍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이게 된다.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까?
‘무엇이 나에게 더 유리한가?‘를 따져보고, 더 유리한 상황을 선택하겠지?
그러면 될까?
미래를 예측해보고 거기에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 그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이 전 세상에서나 통했던 방식. 혁명은 세상이 뒤바뀌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 거다.
토론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이상적인 토론의 마지막 장면은, 양 끝단에서 대립하고 있던 의견의 중간 지점에서 결론이 나는 것이다.
즉, 내 생각도 바뀌고 상대방의 생각도 바뀌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
토론 후 가장 큰 혜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토론을 통해 생각이 바뀐 사람이다.
원래는 A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닫고, B로 생각이 바뀐 사람.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고, 그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