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부 교사 엠티
상수동에서 좀 일찍 퇴근해서 강화도로 갔다. 신덕수양관에 도착하니 한쪽에서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린다. 저기구나. 불판 위엔 이미 고기가 올라가 있다. 양손에 콩나물과 상추쌈, 계란 한판을 들고 나타난 나를 다들 반겨준다. 조금씩 챙겨온 재료로 테이블이 풍성해졌다. 장작불의 연기를 머금은 고기로 우리는 마음까지 풍성해졌다. 거기에 계란찜, 콩나물 무침, 볶음밥, 비빔면이 더해진다.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건 역시 밥상이다.
이젠 불멍의 시간. 타오르는 불을 보며 둘러 앉았다. 불 위로 날리는 잿가루(?
“아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지안이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묻는다.
알지. 당연히 알지.
해마다 4월 16일이면 지안이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이야기 했었다.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 바깥에 있었는데, 지안이가 전화해서 먼저 4월 16일을 이야기 한다.
“지안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고 있구나. 앞으로도 잊지말자”
“응~”
기억은 과거가 아니다. 미래다.
기억은 내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는 미래로 이어진다. 그래서 기억은 살아있다. 없어지지 않고 세상에 여전히 존재한다.
기억의 힘을 믿는다.
# 꽃
봄이 오는게 보인다. 아침 옷차림도 가볍다. 먼저 꽃을 피운 나무도 있고 어떤건 아직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다. 벌써 연두색 이파리를 보이는 성급한 애들도 있네. 일찍 꽃 피운 녀석은 봄 소식을 일찍 알려준다. 늦은 친구는 이 봄을 길게 끌어주겠지. 둘 다 좋다. 자기 꽃은 때가 되면 다 드러날테니까.
온 세상이 예쁘다.
꽃을 좋아하면 나이든 거라던데. 그렇다 치자 ㅋ
# 대화
우리 삶이 계속해서 깊고 넓어질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대화다. 나의 조각난 생각은 대화를 통해 이어진다.
Lord of the Dance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이 찬양을 처음 보았을 때, 약간 충격이 있었다.
좀 이상했다. 그때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사도 뭔가 파격적이고 부르다 보면 빠져드는 듯한 멜로디.
이 찬양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찬미예수] 뒤적이다 혼자 발견한 것 같다. 난 이 찬양이 좋았다. 혼자 5절까지 부르며 등줄기가 찌르르~~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 걸 전율이라 그러지. 요즘 애들은 ‘소오~~름’ 이라 그러나?
보수적인 교회에서 듣던 예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춤이라니! 1절 가사는 그렇다 치자.
뜨거운 마음.
이건 식을 수 있다. 지속하기 어렵다. 나를 뜨겁게 만든 그것이 사라지면 식어버리겠지. 뜨거운 마음에 한 결정은 지속하기 어렵다.
확신에 찬 마음.
우리가 무언가를 확신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잡기도 어려운데. 잘 몰라서 확신하는 것일 수 있다. 오해일수도 있다. 우리는 큰 불확실함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가능성을 겨우 볼 뿐이다. 확신이 든다면 의심해보자.
다른 사람의 말.
이 역시 믿기 어렵다. 누군가의 말에 끌린다면, 그의 말을 따라 움직이고 싶다면. 그도 나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자.
어제 오후에 그리고 저녁에 두번의 만남을 가졌다. 나까지 포함해서, 어제 만난 세명의 공통점 — 코로나때 직장을 잃었다.
지난주 어머니 평전을 쓰며, 지금 ’전태일평전‘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소설 ’한강‘을 떠올리며, 그리고 나(우리)의 삶을 보며 든 생각: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던 시대는 없었다. 전쟁때 태어난 부모님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일제시대를 살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고, 조선이 망하는 걸 보았던 그 이전 세대도 그랬다. 그 이전 세대도 마찬가지였을 듯.
대곡역에서 출발하는 서해선. 텅빈 지하철이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자리 쟁탈전, 위치선정이 중요하다. 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간발의 차로 다른 사람이 앉았다. 얼른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미 늦었다! 다른 사람이 막 앉아버렸다. 아침부터 참 정신없다. 아ㅡ 맞다! 오늘 내 생일이지.
지난 삼다 독회때 보미님 글이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편안하게 말하더라. 나의 장례식에 올 조문객에게 들려줄 글을 쓰고 그때를 위한 음악을 선곡하고. 나의 존재를 죽음이 어찌할 수 없다는 강함이 느껴졌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상이 빨라졌다. 아이폰이 나오면서 모바일 세상이 시작됐다. 좀 지나자 너도나도 클라우드 얘기를 꺼낸다. 아무데나 ‘빅데이터’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1년 전 ChatGPT가 나왔다(정확히는 13개월 전). 열기가 사그러드나 싶더니 생성형AI 열풍을 몰고 왔다. IT와 관련이 없는 사장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다. 왜 이리 호들갑이야?
변화는 늘 있었다. 돌을 갈아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도 다른 도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여파로 세상은 변해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출생 일제시대 말, 경북 의성에 살던 신재식은 결혼하고 만주로 갔다. 그곳에서 첫째 아들을 낳은 후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해방 후 아내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통에 담아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재익은 고향 마을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뱃속에는 아기가 자라고 있는데 남편은 풍토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신재식. 남편을 먼저 보내고 딸과 함께 남겨진 박재익. 두 사람은 새 가정을 이루었다. 1954년 가을에 다섯 번째 아이 순자가 태어났다.
또다시 맞이하는 12월 31일이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을리 없지만, 이럴 때 괜히 연말 분위기에서라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작년 12월에 한국에 들어와서 첫 일 년을 보냈다. 올 한해는 하이데어를 가동시키는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일이 이렇게 커질지 모르고 가볍게 시작했던 하이데어가 점점 무게감을 드러내었고 거기에 제대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올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멈추지만 말자!’
예상보다 더 척박했지만, 이 생각으로 꾸역꾸역 다음 스텝을 이어왔다. 호들갑스럽게 다른 스타트업들 흉내도 내보고, 무턱대고 이일저일 벌여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