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세상이 뒤바뀌는 시기

장재휴
AI로 인한 변화에 대해 비교적 차분하게 얘기한 듯 (대부분 무슨 판타지 같은 얘기 아니면, 엄청난 공포감 조성. 이런 자극적인 얘기들이 많더라) 난 4차 산업혁명을, “늘 있어왔던 세상의 변화가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으로 정의했었다. 그걸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변화의 속도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르다는 것. 기술이 변함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지는 건 늘 있어왔던 일이다. 이제는 우편배달부, 신문 배달, 이런 일은 없어졌고. 좀 더 앞 시대를 생각해보면 지게꾼, 인력거 끄는 사람, 장돌뱅이, 이런 직업도 사라졌다.

부자 되지 않기

장재휴
지안이가 한창 바느질에 재미 들였을 때가 있었다. 바늘구멍에 실을 끼워 넣어야 할 때마다 나한테 와서 도와달라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했던 얘기: “지안아 이 바늘구멍에 낙타가 들어갈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낙타가 이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게 더 어렵대. 부자, 그거 별로 좋은 거 아니야~” 이 얘기를 정말 수도 없이 많이 해서, 내가 바늘 얘기 꺼낼 때마다 지겹다는 표정이다. 어느 날, “아빠, 내 친구 OO는 엄청 부자던데, 걔는 천국 못 가?

2022년 돌아보기

장재휴
얼마 전 12월. 7년의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에서 이삿짐을 받아 일산 집에서 새로 세팅을 쭉 했고, 지안이는 한국 학교 2학년으로 전학을 시켰다. 하이데어 한국 사무실로 출근하며 팀 분위기도 달라졌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더니.. 어느덧 12월 31일이더라. 2022년 막바지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그런 거 다 건너뛰어 버리고, 아직 2022년이 안 끝났는데, 나 혼자 그냥 새해를 시작해 버린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12월이 되면 의식적으로라도 시간을 내어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한해를 돌아봐야 할 시점에 그냥 다음 스텝을 시작해버렸다.

잘 헤어지기

장재휴
나이가 들어가면서 헤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여러 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게 헤어짐이다. 헤어짐의 순간은 여전히 어색하다. 좀 더 세련되고 매너있게, 멋있는 마무리 멘트도 날려가며 폼나게 헤어지고 싶은데, 너무 어색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잘 헤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헤어지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고 어색한 것인데, 어색한 순간을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겠어? 어색하고 서툰 그 모습 그대로 헤어지는 게 가장 잘 헤어지는게 아닐까?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가는 거.

오랜만에 책 리뷰 - 《한강》

장재휴
이 책은, 1960년 즈음부터 1980년까지 20여 년의 긴 이야기를 쓴 책이다. 《아리랑》, 《태백산맥》에 이어 조정래의 또 하나의 대작이다. 저 두 개의 소설과 비교되는 점은, 《한강》에선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이기보다, 이야기의 줄기를 만들어가는 건 시대의 흐름이었고(그래서 제목을 ‘한강’으로 지었나?), 주인공들은 휙휙 뒤바뀌는 시대를 끈질기게 살아갈 뿐이었다. 교과서에서 한 줄짜리 사건으로 쓱 보고 지나갔던 일들이 실제 그때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이 세상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명 한 명의 삶이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다.

또다시,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장재휴
그저께 한국으로 갈 짐을 보냈다. 총 16박스가 나왔다. 16박스. 그걸 듣고 누가 이렇게 얘기한다. “캠핑처럼 이사하시네요.” 맞다. 캠핑처럼. 한때 여행에 한창 목말라서 여기저기 배낭 메고 막 돌아다녔었는데 2010년 아프리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그만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 들었던 마음이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여행지를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일상이 여행지였다. 급하게 짐을 보냈더니, 미처 보내지 못한 짐들이 보인다. ‘아ㅡ 꽤 많네? 이걸 어떻게 가져가지?’ 미련이다. 짐 보낼 때 생각나지 않았던 그건, 내 소유가 아니다.

추수감사절

장재휴
2020년 회사가 없어지고, 중국에서 버티기로 했던 동료가 한 명 더 있었다. 그 친구도 살길을 찾아 북경을 떠나 상해로 가야 했을 때, 이런 얘길 했었다. “이 세상을 강한 멘탈 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만만치가 않을 거야.” 그러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했다. “나도 멘탈이 꽤 강한 편인데, 그 멘탈을 믿고 살기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난 진작에 못 버티고 무너졌을 거야. 내 삶을 진짜로 지키고 싶으면, 멘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야 해.” 그 후 여기서 3년을 더 보냈다.

'선택과 집중'하지 않기

장재휴
“선택과 집중”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식상해질 정도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너도나도 또 이 식상한 단어를 꺼내면서 *딴짓금지*를 강요한다. 이쯤 되면 괜한 반발심까지 든다. ㅋ 선택에 대해 1안이냐? 2안이냐?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해보지 않은 두 갈래길 중 하나를 고르는 건 도박에 가깝다. 결정을 요구받은 그는 엄청 고민하는 척, 고민 코스프레 ㅋ 후에 하나를 결정한다. 그리곤 그 길을 밀어붙힌다. 당연히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함께 아파하기. 기도하기.

장재휴
어제 아침 교회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뒤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고등부 아이들을 보는데,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었을 텐데… 지금 내가 뭘 해야 할까…? 고등부 선생님으로써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었다. 그건,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그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 이 아이들도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접했을 그 충격적인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텐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그것을 가르쳐야 했다.

나의 선생님

장재휴
2018년 우간다 아웃리치 팀에 합류했는데, 대부분이 대학생, 고등학생들이었다. 대학생들은 갑자기 합류한 나를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다가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자고 정하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내 호칭은 “장쌤” 이 되었다. 처음으로 선생님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그 호칭에 괜히 심각했었다. ㅋ 내가 왜 선생이지? 그들은 나보다 모든 부분에서 더 나아 보이는데. 내가 뭘 가르쳐줄 수 있다고…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붙인 호칭에 나만 쓸데없이 진지했었다 ㅋ 난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그 호칭이 부담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