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을 세우는 기준은 현재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상해본다. 그리고 예상되는 미래를 준비한다.
다양한 미래가 예상되면 플랜A, 플랜B를 준비한다. 예상되는 미래가 2개 이상일때는? 플랜C, 플랜D, 플랜E,,,를 준비해야겠지.
전략이 먹히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다양함은 우리의 플랜을 넘어선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대비할수도 없다. 반응할 뿐이다.
하지만 미래는 한번에 짠ㅡ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도 전조현상이 있듯, 미래도 전조현상이 있다. 동물들이 그 전조현상을 알아채고 바로 반응하듯, 우리도 동물처럼 전조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하고 거기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여러 일로 허덕이는 한주였다.
사실, 난 월요일날 이걸 인지했었다.
지난 주간회의때, 이번주 해야할 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ㅡ 일주일의 일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을만큼 불투명한 상태구나.
일단 수요일까지 할일만 정하고 수요일 오후에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었다.(그것도 사실 모호하긴 했었음)
일주일을 예측 못하는 주간이라니.. 이번주는 통제 안되는 일이 빵빵 터질꺼라고 예상을 했었어야 했다. 그리고 난 매일마다 통제 안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어야 했다. 근데 나도 그냥 별 신경 안쓰고 내 할일만 열심히 하며 보냈다.
여기저기 ChatGPT 얘기로 떠들썩하다.
늘 그렇듯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그걸로 바뀔 미래를 점쳐보느라 바쁘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나의 관심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개발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까?”
1인 개발자로, 하이데어를 혼자서 개발하고 있는데.
상당 부분의 일은 단순작업의 반복이다.
많은 부분을 자동화해 놓았지만, 그래도 단순코딩은 여전히 많다. 그런 걸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ChatGPT를 내 부사수처럼, 외주 개발자처럼, 함께 짝코딩하는 동료처럼, 부담 없이 아무거나 질문할 수 있는 전문가처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AI로 인한 변화에 대해 비교적 차분하게 얘기한 듯
(대부분 무슨 판타지 같은 얘기 아니면, 엄청난 공포감 조성. 이런 자극적인 얘기들이 많더라)
난 4차 산업혁명을, “늘 있어왔던 세상의 변화가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으로 정의했었다.
그걸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변화의 속도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르다는 것.
기술이 변함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지는 건 늘 있어왔던 일이다. 이제는 우편배달부, 신문 배달, 이런 일은 없어졌고. 좀 더 앞 시대를 생각해보면 지게꾼, 인력거 끄는 사람, 장돌뱅이, 이런 직업도 사라졌다.
지안이가 한창 바느질에 재미 들였을 때가 있었다.
바늘구멍에 실을 끼워 넣어야 할 때마다 나한테 와서 도와달라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했던 얘기:
“지안아 이 바늘구멍에 낙타가 들어갈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낙타가 이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게 더 어렵대. 부자, 그거 별로 좋은 거 아니야~”
이 얘기를 정말 수도 없이 많이 해서, 내가 바늘 얘기 꺼낼 때마다 지겹다는 표정이다.
어느 날,
“아빠, 내 친구 OO는 엄청 부자던데, 걔는 천국 못 가?
얼마 전 12월. 7년의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에서 이삿짐을 받아 일산 집에서 새로 세팅을 쭉 했고, 지안이는 한국 학교 2학년으로 전학을 시켰다. 하이데어 한국 사무실로 출근하며 팀 분위기도 달라졌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더니..
어느덧 12월 31일이더라.
2022년 막바지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그런 거 다 건너뛰어 버리고, 아직 2022년이 안 끝났는데, 나 혼자 그냥 새해를 시작해 버린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12월이 되면 의식적으로라도 시간을 내어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한해를 돌아봐야 할 시점에 그냥 다음 스텝을 시작해버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헤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여러 번 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게 헤어짐이다.
헤어짐의 순간은 여전히 어색하다.
좀 더 세련되고 매너있게, 멋있는 마무리 멘트도 날려가며 폼나게 헤어지고 싶은데, 너무 어색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잘 헤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헤어지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고 어색한 것인데, 어색한 순간을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보낼 수 있겠어?
어색하고 서툰 그 모습 그대로 헤어지는 게 가장 잘 헤어지는게 아닐까?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가는 거.
이 책은, 1960년 즈음부터 1980년까지 20여 년의 긴 이야기를 쓴 책이다.
《아리랑》, 《태백산맥》에 이어 조정래의 또 하나의 대작이다.
저 두 개의 소설과 비교되는 점은,
《한강》에선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이기보다, 이야기의 줄기를 만들어가는 건 시대의 흐름이었고(그래서 제목을 ‘한강’으로 지었나?), 주인공들은 휙휙 뒤바뀌는 시대를 끈질기게 살아갈 뿐이었다.
교과서에서 한 줄짜리 사건으로 쓱 보고 지나갔던 일들이 실제 그때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이 세상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명 한 명의 삶이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저께 한국으로 갈 짐을 보냈다.
총 16박스가 나왔다.
16박스. 그걸 듣고 누가 이렇게 얘기한다.
“캠핑처럼 이사하시네요.”
맞다. 캠핑처럼.
한때 여행에 한창 목말라서 여기저기 배낭 메고 막 돌아다녔었는데
2010년 아프리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그만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 들었던 마음이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여행지를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일상이 여행지였다.
급하게 짐을 보냈더니, 미처 보내지 못한 짐들이 보인다.
‘아ㅡ 꽤 많네? 이걸 어떻게 가져가지?’
미련이다.
짐 보낼 때 생각나지 않았던 그건, 내 소유가 아니다.
2020년 회사가 없어지고, 중국에서 버티기로 했던 동료가 한 명 더 있었다.
그 친구도 살길을 찾아 북경을 떠나 상해로 가야 했을 때, 이런 얘길 했었다.
“이 세상을 강한 멘탈 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만만치가 않을 거야.”
그러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했다.
“나도 멘탈이 꽤 강한 편인데, 그 멘탈을 믿고 살기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난 진작에 못 버티고 무너졌을 거야.
내 삶을 진짜로 지키고 싶으면, 멘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야 해.”
그 후 여기서 3년을 더 보냈다.